영어강사는 '과연 그럴까' 생각합니다
“영어 해석은 되는데 이해가 안 돼요.”
독해 수업을 하다 보면 학생들이 가장 힘들어하는 고민 중 하나다. 모르는 단어도, 문장 구조도 빠삭한데 정작 무슨 말인지 몰라 더 답답하다. 같은 줄에 도돌이표가 달린 듯 다시 읽고, 줄만 겹쳐 긋다 한숨 쉬기 일쑤다. 사실 해석은 되는데 이해가 안 된다는 말은 앞뒤가 맞지 않다. 내용을 이해하고 설명하는 게 해석이다. 잔인하게 들릴지 모르지만 애초에 해석이 안 되는 것이다.
단어가 생각지도 못한 뜻을 갖고 있다면, 파악한 문장 구조가 잘못되었다면 차라리 나은 편이다. 몰랐던 단어 뜻은 알면 되고, 제대로 된 문장 구조로 이해하면 된다. 글이 너무 어려워서 도저히 이해가 안 되는 것이라면 그나마 괜찮다. 본인 수준을 봤을 때 엄청 어려운 글도 아니고, 단어랑 구조를 아는데도 무엇을 읽고 있는지 모르는 게 진짜 문제다.
“같은 내용을 한글로 적어 놓으면 이해할 수 있어요?”
이 질문에 자신 있게 그렇다고 대답하는 학생을 본 적이 없다. 문제는 영어가 아니라는 점을 학생들도 넌지시 알고 있다. 영어가 외국어니까, 어려우니까 핑계 삼는 게 더 편할 뿐이다. 나도 그랬고, 학생들도 그렇다. 한글로 적혀 있어도 내용의 흐름, 즉 맥락을 잡지 못한다. 맥락맹이 된 이유는 무엇일까.
스마트폰이 나오면서 문화를 소비하는 방식이 예전과 확연히 달라졌다. 2017년에 미국 초등학생 80%가 아날로그시계를 못 읽는다는 기사를 봤다. 스마트폰과 태블릿 PC가 익숙한 아이들은 굳이 아날로그시계를 읽어야 할 필요성을 느끼지 않는다. 무심코 컴퓨터 타자 속도가 적어도 400은 넘는다는 나의 말에 10대들이 경악했던 기억이 난다. 그들은 컴퓨터보다 스마트폰 키보드를 더 자주, 빨리 두드린다. 글보다 영상에 머무르는 시간이 압도적으로 길고, 글을 보더라도 짧은 글에 최적화된 SNS를 이용한다. 긴 글은 어떨까. 빽빽한 글을 세 줄 이상 읽다 보면 금세 지겨워져 누군가 써 놨을 ‘세 줄 요약’으로 숭덩 건너뛴다. 당신도 예외가 아닐 것이다. 댓글을 읽으면서 역으로 내용을 추측하는 경우도 허다하다. 누구의 잘못이라는 게 아니다. 누구나 시대의 변화에 자연스레 흘러간다.
학생들에게 말할 때도 내 나름의 해석을 들려주며 혼내는 게 아니라고 분명히 말한다. 다만 그걸 변명삼아 노력은 싫은데 결과는 좋았으면 하는, 헛된 요행을 바라지는 말라고 반드시 덧붙인다. 맥락맹을 벗어나려면 독해력 자체를 높여야 한다. 글을 많이, 전략적으로 따져가며 읽어야 한다. 영어 지문을 단숨에 해석하는 건 그다음이다. 책 자체가 어색한 사람은 책과 먼저 친해져야 한다. 처음에는 주인공을 따라가다 보면 이야기가 끝나 있는 비교적 어렵지 않은 소설을 개인적으로 추천한다. 어떻게든 긴 글을 읽어내는 횟수를 늘려야 한다. 책을 이미 꽤 읽지만 흐름이 파악되지 않는 사람이라면 자신이 어떤 책을 보는지, 어떻게 책을 읽는지 의심해보아야 한다. 한 방면에만 치우쳐 책을 읽고 있을 확률이 높다. 책을 두루 읽고 있다면 논리적으로 글을 소화하고 있는지 스스로에게 물어야 한다. 구체적인 독서법은 차차 다룰 것이다.
맥락의 다른 이름은 공감이라 생각한다. 맥락맹이 늘어나는 (정확히 말하자면 더 쉽게 드러나는) 시대를 살고 있다는 것은 공감의 폭이 좁아지는 세대를 우리가 자처하고 있는 게 아닐까. 학생들에게 종종 팩트 폭격기처럼 쓴소리를 하지만, 내 말이 나를 더 가격할 때가 많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