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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허튼 May 09. 2019

남들 말에 휩쓸리는 내가 싫어요

서툰 사람들의 짙은 대화




여튼(가명) : 남들 말에 쉽게 휩쓸리는 나 자신이 참 싫어.


허튼 : 남 얘기를 들었을 때 쉽게 동의하게 된다는 거야? 아니면 네 의견이 다르더라도 남들 눈치 때문에 참는 거야?


여튼 : 둘 다. 내 의견과 상관없이 잘 동조되는 것 같아.


허튼 : 잘 동화되는 네 모습이 불편해? 스스로가 사라지는 느낌이 들어?


여튼 : 응. 남 눈치를 너무 많이 봐서 그런지 몰라도 나 자신만의 색깔이 없는 느낌이 들어.


허튼 : 무슨 말인지 이해 가. 내가 잘 모를수록, 많은 사람이 한 목소리를 낼수록 남들 말에 쉽게 고개를 끄덕이게 되는 것 같아. 확신을 가지기엔 내 전문성이 의심되고, 대다수가 그렇다고 하니 맞나 보다 생각해버리는 게 편하고. 적지 않은 사람들이 그렇게 생각하니까 나도 그래야 할 것 같은 느낌이 들 때가 있거든. 남들 말의 옳고 그름을 떠나서, 소속과 소외의 경계에서 어렵지 않게 소속을 택하고 싶은 욕구가 드는 것 같아. 소속의 반대말은 소외라고 착각하니까.


여튼 : 맞아. 일일이 그 사람의 주장이 맞는지 근거를 찾기는 귀찮고, 주류에서 벗어나고 싶지도 않고.


허튼 : 그렇지. 잘못됐다고 치부하기엔 힘든 것 같아. 이것저것 따지는 예민한 사람으로 비치기도 싫은 마당에, 적당히 믿어버리자고 믿는 게 정신적으로 덜 시끄러운 부분이 있지. 오히려 더 괴로운 쪽은 상대방 얘기가 틀렸다는 확신도 있고, 네 나름대로 의견이 있음에도 참아버리는 거 아니야?


여튼 : 맞아. 대세에 편승하는 게 편할 때도 있지만, 나랑 맞지 않을 때 괴로워. 사회생활이 다 그런 건지, 내 성향이 유별난 건지 모르겠어. 막 불의를 못 참겠다는 건 아닌데, 그냥 소소한 거라도 내 이야기를 선뜻 내놓기가 힘들더라고.


허튼 : 그렇구나. 개인이 가진 성향과 사회가 풍기는 분위기를 따로 떼어 놓고 보기 힘들겠지. 모두의 얘기에 허용적인 사회 분위기 속에서 제 뜻을 제 뜻대로 표현하고, 때로는 관철하는 뚝심 있는 성향을 가진 개인이 있다면 분명 얘기가 달라질 거야. 하지만 현실은 어느 하나 쪽은 삐걱거리게 마련이고, 둘 다 폐쇄적인 경우가 많은 것 같아. 사소한 얘기조차 꺼내기 버겁다면, 상대가 내 얘기를 제대로 들어줄까 하는 의심 뿐만 아니라 어렵게 꺼낸 얘기가 거부당할까 하는 불안 때문이지 않을까? 그런 경험이 잦았다면 학습된 무력감도 있을 테고.


여튼 : 음, 아무래도 그렇지. 무시할까 봐 두려운 것도 있는데 언제부턴가 내 발언권을 내가 차단해버려. 그렇다고 남의 발언은 차단하진 못하고, 싫으면서도 분별없이 따르게 되는 경우도 있어. 무심코 던진 말 한마디에도 무작정 흔들리는 내가 너무 싫더라.


허튼 : 너그럽게 포용할 줄 아는 사람 구색을 맞추려고 아등바등 사는 게 견디기 힘든 것 같아. 그런 이미지가 싫진 않지만, 자연스럽게 그런 사람이 되는 게 아니라 미움받는 사람이 되지 않기 위해 불편함을 감수하게 되니까 더 불편한 거지.


여튼 : 응, 좋은 사람 이미지 물론 좋지만, 내 중심을 잃는 느낌이 들어.


허튼 : 네 주장이 받아들여졌다고 가정했을 때, 그 주장에 따른 결과를 감당하기 싫어서 애초에 얘기를 꺼내지않는 것일 수도 있어. 남들에게 선택권을 넘기니까 남들은 그걸 배려라고 여기겠지만, 네 마음 어딘가에는 결과에 대한 회피와 더불어 불확실한 결과를 떠안지 않아도 된다는 안도감이 있을 수도 모른다는 생각이 드네. 나도 예전에 그런 식의 허울 좋은 배려를 많이 했거든. 그 당시엔 그게 정말 순수 호의라고만 생각했고, 그렇게 받아들여지길 원했지만.


여튼 : 정말 그런 것 같아. 내 얘기가 맞을 수도 있지만, 틀렸을 때 상황은 상상만 해도 아찔해. 그래서인지 남 눈치껏 행동하면 적어도 그 사람의 선택이니 내 책임은 덜 수 있다는 안일함이 있던 것 같다. 돌아보니 뜨끔하게 되네.


허튼 : 너무 안 좋게만 생각할 건 아닌 게 이런 사람들은 상황에 대한 공감이 빠르고, 기본적으로 경청을 잘하잖아. 남의 말을 듣지 않는다면 휩쓸릴 일도 없겠지. 다수의 의견을 고려한다면 그만큼 그 사람들의 주장에 귀 기울인다는 뜻이고, 타인의 입장에서 생각하니까 공감능력도 뛰어난 편이지. 그게 소통의 시작이라고 본다면, 너는 사람과의 첫 단추는 꽤 잘 꿰고 있는 것 아닐까.


여튼 : 난 그저 개성 없는 인간이 될까 불편했는데 그렇게 볼 수도 있겠네. 그래도 남 얘기를 수용하고 싶지만은 않아. 넌 어떤 마음가짐으로 다른 사람 말을 들어?


허튼 : 남의 말은무게는 거의 없지만 부피가 큰 풍선이다. 이렇게 생각하는 편이야. 부피가 커진다고 내 세상이 비좁아진다고 생각하면 억울하잖아. 내 밀도와 무게는 오롯이 내가 정한다는 식이지. 손 놓아버리면 얼마 안 있어 시야에 벗어나고 마는 풍선 같은 남들의 말에 내가 너무 휘청거리지는 말자고 매번 다짐해. 남의 말이 내 인생에 도움이 된다면 그건 조언이 되고, 도움이 안 되면 간섭이라고 생각하잖아. 결과적으로 나쁘게 작용했다면 괜한 간섭 때문에 내가 어쩔 수 없이 휩쓸려 버렸다고 표현하는 것 같거든. 풍선에 잡을지 말지, 잡았더라도 터뜨려버릴지 말지는 결국 내가 결정하는 거야. 터지지 않더라도 저절로 바람이 빠지는 게 풍선이야. 소실되는 부피그만큼의 효력이 남의 말이 나에게 미치는 영향이라고 봐. 하루에도 몇 번이고 흔들리지. 형형색색 고와 보이는 풍선이 눈앞에 두둥실 아른거리면 사람은 잡고 싶어 지니까. 흔들리는 내 마음까지 미워하지는 않아. 나는 떠오르는 풍선에 시선을 둘 줄 알고, 그래서 세상이 더 다채롭다고 생각하는 사람이니까, 그걸로 됐다고 위로해버려. 남에게 흩어지는 내 말 역시 풍선에 지나지 않음을 항상 기억하려고 노력해. 그러면 내 마음대로 상대를 조종하려는 고집과, 무시하고 지나가는 상대를 향한 서운함에서 조금은 해방될 수 있거든.


여튼 : 응, 위로가 된다. 남이 보는 나만 생각했지, 정작 내가 보는 세상을 생각해 본 적은 없는 것 같아. 명쾌하지 않아도 유쾌할 수 있는 삶의 태도라고 본다. 난 일단 네가 던진 풍선을 잡아 볼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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