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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뉴슈가 Dec 09. 2020

짱구는 스무 살

“누나” 


친구들과 소위 ‘연하남’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다 보면 이 호칭에 대한 호불호가 갈리곤 한다. 좋다는 친구도 싫다는 친구도 있었고, 어떤 친구는 누나 소리만 하던 애가 이름을 부르는 게 좋다고 했다. 그렇다면 나는? 나는 원래 별 생각이 없었다. 나보다 어린 친구들과 연애를 한 적이 없기도 했고, 언어에서 위계가 생기는 걸 안 좋아해서 나를 누나나 언니라고 부르는 사람이 있으면 그냥 이름을 부르라고 하는 편이니까. 그런데 나에게 이 망할 누나 소리에 단단히 질려버리게 만든 사람이 하나 있다. 내 친구는 그가 어른 버전의 짱구 같다고 했으니 그를 짱구라고 칭하겠다. 


짱구를 만난 건 일명 동네 친구 사귀기 어플, 틴더였다. 다른 대부분의 유저들이 그러하듯 난 동네 친구를 사귈 목적으로 틴더에 가입하지 않았다. 틴더를 설치하는 건 언제나 술을 먹었을 때다. 이미 충분한 동네 친구들과 만나 앵무새처럼 외롭다고 심심하다고 울어 대다 보면 어느새 나도 모르게 앱스토어에 들어가게 된다. 그렇다고 틴더에서 만족스러운 아웃풋을 얻은 적은 없다. 단지 알고리즘의 축복을 받아 천생연분을 만난 유니콘 같은 친구들을 보며 기대를 품어보는 거지. 희망찬 마음과 술기운을 연료 삼아 열심히 프로필들을 살펴보았다. 그러다 꽤 귀여워 보이는 프로필을 발견했다. 어두운 피부와 긴 눈매가 마음에 들었다. ‘yes’ 방향으로 손가락을 넘겼더니 매칭이 됐다! 그렇게 짱구와 대화를 시작하게 됐다. 


틴더에서 하는 대화가 늘 그러하듯 밥은 먹었는지 일은 뭘 하는지에 대한 채팅은 딱히 재미있지 않았다. 무엇보다 그의 화법이 날 너무 답답하게 했다. 짱구는 절대 본론을 먼저 꺼내는 법이 없었고 항상 “누나”하고 말을 꺼내고 내가 “ㅇㅇ” 이렇게 답을 해야만 말을 꺼냈다. 그러던 어느 날이었다. 


“누나” 

“왜?” 

“나 할 말이 있어” 


뭔데 무게를 잡는 걸까. 좀 말을 한 번에 하면 안 되는 걸까. 


“나 좀 변태인데 괜찮아요?”


그 새삼스러움에 나는 손가락으로 ㅋㅋㅋㅋㅋㅋㅋ를 치면서 육성으로 웃을 수밖에 없었다. 아니, 틴더에서 굳이? 하지만 짱구의 이어지는 말은 그의 충격 고백을 뒷받침하기에 충분했다.


“누나” 

“ㅇㅇ” 

“내 자지 사진 볼래요?” 


인정. 정말 변태가 맞았구나. 보통 같았으면 꺼져, 하고 차단을 하고 말 텐데 나는 그날 너무나 심심했다. 계속되는 재택근무로 동료들과 나누는 대화가 너무 그리웠고 기대하던 행사들이나 친구들과의 약속은 줄줄이 불발됐다. 그래, 내가 짱구의 사진을 보겠다고 한 건 코로나 19 때문이다! 


“그래 마음대로 해 그런데 네가 원하는 반응은 해줄 수 없을 거야ㅋㅋㅋ” 


카톡창에 쌓이는 서른여 개의 사진과 동영상을 보고 나는 적잖은 시각적 충격을 받았다. 짱구는 자신의 컬렉션에 큰 애정을 가진 것처럼 보였다. 이 영상은 어떤 영상이야, 여기엔 이것도 나와, 하면서 도슨트처럼 하나하나 설명을 해주는 짱구의 눈이 반짝반짝 빛나는 게 여기까지 느껴졌다. 복잡한 마음을 안고 어떤 반응을 해줄까 하다가 너무나 착한 나는 그를 칭찬하기로 했다. 


“와 정말 많이 찍었다 너 정말 부지런하구나 자기애가 넘쳐 보여!”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내가 보겠다고 한 거지만 사진들을 보는 게 유쾌하지 않기도 했고, 대화를 지속하는 게 그에게 만족감을 줄 것 같아 짜증이 나기도 했지만 그 어떤 감정도 나의 심심함을 막을 수는 없었다. 심심함은 호기심으로 이어졌다. 얘는 도대체 어떤 사람일까? 인터뷰를 하는 마음으로 대화를 이어나갔다. 인터뷰이는 날 몹시 귀찮게 했다. 갑자기 상황극을 하자고 제안을 하더니 내가 알겠다고도 안 했는데 삼류 야설 같은 내용을 보내질 않나, 자신의 성기의 상태를 실시간으로 보고하질 않나, 누나 야동 좋아해? 누나 이런 거 해봤어? 라며 유치한 성적 질문을 해대지 않나. 나는 측은한 마음에 성교육 선생님처럼 그를 다정하게 대했다. 너의 글은 나뿐 아니라 다른 여자들도 흥분시키지 않는단다, 너 정말 건강하구나, 네가 생각하는 것만큼 그건 대단한 게 아니란다, 내 사진은 절대 못 보내준단다. 


금방 흥미를 잃을 거라는 예상과 달리 짱구는 나에게 끈질기게 연락을 해왔고 그러면서 그에 대한 몇 가지 사실을 알게 되었다. 하나, 그는 섹스를 해본 적이 없다. 둘, 그는 자신의 살색 사진이 가득한 트위터 계정이 있다. 그 피드엔 짱구의 ‘노예’를 자칭하며 서로 음담패설을 주고받는 익명의 삼십 대 여성도 있었다. 자꾸만 자자고 졸라대는 짱구에게 너는 파트너도 있지 않냐고 물어보자 그 분과는 아직 어색한 사이라 친해지면 만날 거랜다. 게임 커플의 성인 버전이 이런 걸까. 


예견된 결말이지만 결국 짱구의 프로필은 차단함으로 들어갔다. 누나 - 왜 - 섹스하자 - 싫다 나중에 좋아하는 사람이랑 해라 - 누나를 좋아한다 - 왜냐 - 누나는 예쁘고 내 이야기를 잘 들어준다 - ㅋㅋㅋㅋ - 누나 안에서 순환되는 대화에 지쳐 먼저 미안하다고 연락을 하지 않겠다고 한 건 짱구였다. 3주 뒤에 새로운 영상과 함께 섹스를 하자는 카톡이 왔다. 나는 이거 신고감이라고 다른 사람에게는 이러지 말라고 하고 차단을 통보했다. 


덕분에 재미있는 술자리 안주가 생겼지만 나는 사실 그를 걱정한다. 잘 살고 있을까, 짱구의 첫 섹스는 멀쩡할까, 또 누구한테 이러면 그 사람은 어떡하지... 그러다 보면 모든 게 미워진다. 망할 내 호기심, 망할 코로나 19, 그에게 이상한 성관념을 심어준 망할 미디어. 하지만 불쌍한 한 영혼을 구원하기 위해 내 소중한 2.0 시력을 손상시킬 순 없었다. 나는 할 만큼 했다. 그날 이후로 나는 그의 카톡 프로필에 있던 팝송을 듣지 못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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