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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허혜영 Aug 24. 2022

인생은 과감한 모험?

내 인생 최초의 사과 먹방은 여섯 살 무렵의 어느 늦가을이었다.

늦은 밤, 공중전화 박스에 들어가 씻지도 않은 사과를 두 손에 꼭 쥐고 어찌나 맛있게 먹었던지. 생각만 해도 입안에 침이 고일 정도로 아삭하고 달콤했던 사과의 맛과는 달리 현실은 무척 썼지만 말이다.     



    

세 살 터울의 자매들만 있던 집에 어느 날 막내 동생이 태어났다. 엄마만 바라보는 고만고만한 아이들이 줄줄이다 보니 엄마아빠는 나를 한동안 이모 집에 맡기기로 결정하셨다. 그렇게 나는 딸의 출산을 보러 오셨던 외할머니의 손에 이끌려 서울 사는 큰 이모 집으로 향했다.

지하철이 없던 시절이라 버스를 두 번이나 갈아타고 한참을 가야 했지만, 좁은 동네에서만 살던 내 작은 세상에 서울은 신세계였다. 무엇보다 이모집 근처에서 본 육교는 단연코 여섯 살 인생을 살면서 본 최고의 신문물이었다. 

‘세상에나, 하늘 위로 붕 떠있는 다리라니!’ 

그렇게 멋지고 재미난 다리는 처음이었다. 몇 번이고 그 멋진 다리에서 놀고 싶었지만 육교가 대수롭지 않는 할머니는 직진만 할 뿐이었다. 그렇게 할머니 손에 이끌려 이모집으로 가는 내내 뒤를 돌아보며 어찌나 아쉬워했던가.     



“인생은 과감한 모험이든가, 아니면 아무것도 아니다.”라고 했던 헬렌 켈러의 조언을 나는 그 어린 나이에 깨달았던 걸까. 내내 ‘어떻게 하면 육교에서 놀 수 있을까’ 생각했던 나는, 바로 다음날 장사하는 이모가 소홀한 틈을 타 겁도 없이 낯선 길을 탐험하듯 찾아 나섰다. 시장 주위를 돌고 돌다 드디어 육교와 마주한 순간 어린 마음에도 그렇게 반가울 수가 없었다.


마음껏, 욕심껏 육교를 올라가고 내려가기를 수없이 반복하다 보니 어느새 하늘은 어둑해져 있었다. 아쉽지만 이제는 정말 집으로 돌아가야 할 시간이라는 것을 깨닫고는 더 어두워지기 전에 이모네 가게를 향해 걸었다. 그런데 이상했다. 아무리 돌고 돌아도 내가 아는 이모네 가게는 보이질 않았다. “히잉~” 울먹이며 왔던 길을 얼마나 찾아 헤맸던가. 육교에서의 놀이가 생애 처음으로 맞이한 ‘환희’의 순간이었다면, 이모집을 찾아나서는 길은 처음으로 느끼는 ‘절망’의 시간들이었다.      


울면서 거리를 배회하는데 길가 리어카에서 사과를 팔던 할아버지가 갑자기 나를 붙드셨다. 내 손에 커다란 사과를 하나 쥐어주며 바로 옆의 공중전화 박스에서 먹고 있으라고 하셨다. 낯선 할아버지라 무서우면서도 너무 배고프고 추웠던 탓에 어느 순간 나는 사과를 야무지게 손에 쥐고 먹는 데 열중을 했다. 살면서 그때만큼 맛있는 사과는 이후에도 먹어보지 못했던 것 같다.



그 후로 얼마나 시간이 흘렀을까. 이모와 외할머니가 사색이 되셔서 나를 소리쳐 부르셨다. 맛있게 사과를 먹던 아이는 어디 가고, 이모를 보는 순간 눈물부터 났다. 이제는 집에 갈 수 있다는 안도감이었을 것이다.

그런데 이모 손에 집으로 가면서 어찌나 무섭게 야단을 치던지. 난 그저 놀다 온 것뿐인데, 무섭고 서러웠던 기억이 난다. 

내가 이모나 할머니 입장이었다면 정말 하늘이 노래졌을 것 같다. 하루 만에 아이가 감쪽같이 사라져버리다니 얼마나 기가 찼을까. 나중에 엄마를 통해 이 사건에 대해 들었을 때, 내가 없어진 걸 안 건 늦은 오후였다고 한다. 할머니는 이모가 나를 보는 줄 알았고, 이모는 할머니가 나를 데리고 있는 줄 아셨던 것이다. 시장 곳곳 동네를 헤매고 다닐 때, 리어커에서 사과를 팔던 할아버지가 어떤 어린애 하나가 울면서 이 앞을 지나갔다고 말해주셨단다. 그 애 보면 꼭 좀 붙들어놓고 있어 달라고 신신당부를 하셨다고.     




지금 생각해보면 나는 호기심과 탐험심이 생각보다 풍부했던 아이였던 듯싶다. 종종 경찰 아저씨가 우는 나를 엎고 달래며 나를 찾는 가족들에게 몇 번이고 인계해 주었던 기억이 어렴풋이 난다. 그랬던 내가 이제는 겁이 많은 어른이 된 것일까. 항상 선택의 기로에 서면 익숙한 것, 위험하지 않은 것, 좋아하지 않는 것에는 일절 관심을 두지 않는 나를 발견하곤 한다.

살면서 한번쯤은 도전하듯 다른 문을 여는 용기도 필요하지 않나 싶다. 뜻밖의 환희와 행복이 우리를 기다리고 있을지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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