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김혜령 Jan 05. 2021

신년 소회

빠꾸가 불가한 2021년을 맞이하며

아 얼마 전에 배우자가 생겼다. 

배우자가 생긴 다음 날엔 성탄절이었고 그리고 며칠 지나지 않아 새해가 밝았다.


몇 달 전에, 그러니까 작년에 내가 사랑하던 개가 있었는데 여섯 살 난 그 녀석이 까닭 없이 죽고 나서

우리 가족은 많은 방황을 했다. 방황 끝에 새로운 개 두 마리가 우리 가족으로 들어왔고 

더불어 내게는 배우자라는 식솔이 하나 생겼다. 


나는 무언가에 의미를 두면 과도하게 눈물을 흘리거나 

과도하게 실망하거나 과도하게 기대하거나 믿어버리는 경향이 있는 성가신 인간이다. 

의미를 둔 것에 지나치게 집착한 탓에 마음의 출혈이 빈번한 편이다. 


나이가 먹을수록 응고의 속도는 나름 빨라졌다고 생각하지만 

아무튼간에 그런 모든 소모전을 뒷수습해야 하는 것이 

이제 내게는 확실히 버거운 일이라고 느낀다. 


그래서 작년 봄 이후로, 그러니까 망고가 죽은 이후로는 

무엇에도 큰 의미를 두지 않기로 나도 모르게 결심한 것 같다. 

'그래! 결심해버리자!' 하는 과정 없이 그렇게 되었다.


그런 까닭에 이번 새해에는 작년보다 더 잘해보겠다는 것도 딱히 없고

새해 첫날에는 꼭 떡국을 먹어야겠다는 생각도 없었고

그저 로또나 한 장 사다가 맞춰본 일이 새해에 한 전부이다.

그럼에도 좀 섭섭한 마음이 들어 오늘 설거지를 하면서 곰곰 생각해보았는데 

떠오르는 다짐이 하나 있다.


2021에 달성하고 싶은 일은 딱 한 가지, 그것은 작년보다 덜 울기.

혼인신고서를 내며 구청에서 생각한 저 한 가지 다짐만이 새해에 유효하다.


종이 한 장을 냄과 동시에 나에게는 새로이 책임질 배우자가 생겼고 추후에 벌어질

무궁무진한 고난 그리고 과업들이 생겼다. 


고작 한 장인데 빠꾸도 없는 그 종이는 나에게 작년보다는 울지 말아야 한다고 말한 것 같다.

혼자 있을 때 우는 일만은 금물이라고.


이제는 마음대로 슬퍼할 수 없고 아플 수 없는 처지가 되었으니

아무쪼록 열심히 노력해볼 생각이다. 작년보다 덜 울기 위해서.





 

작가의 이전글 1월 2일, 볼링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