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꾸만 무너지는 이유가 있다.

나를 설명할 수 없었던 시간들

『82년생 김지영』이라는 소설의 제목처럼, 김지영과 비슷한 생애를 살아온 나는 81년생 해라이다. 외할머니는 네 딸을 낳고도 아들을 봐야 한다는 집안의 강요로 몸을 혹사하셨고, 다섯째 딸을 낳고 끝내 돌아가셨다 그 슬픔은 엄마의 몸과 마음으로 이어졌고, 그런 엄마는 시어머니의 구박에도 두 딸을 낳아 꿋꿋하게 잘 키워내겠다고 다짐하셨다.


그런 집에서, 나는 장녀로 자랐다. 늘 ‘아들이었어야 할 자리’에 있던 나는 자연스레 더 열심히 살아야 했다. 아마 외가로부터 대물림된 슬픔과 책임감이 내 삶의 바닥에 깔려 있었을 것이다. 나는 남성의 영역이라 여겨졌던 대기업의 해외 영업부에서 하이힐을 신고 뛰었고, 유리천장을 부수기 위해 악착같이 일했다. 하지만 유리천장은 쉽게 부서지지 않았다. 오히려 그보다 더 단단했던 결혼생활의 벽 앞에서 나는 결국 모든 걸 내려놓고, 여성학을 공부하겠다는 결심 하나로 유학길에 올랐다.


나는 구조를 이해하고 싶었다. 내가 왜 그토록 힘들었는지, 왜 나를 설명할 수 없었는지, 왜 그렇게 버티는 삶을 살아야만 했는지. 그래서 ‘여성’이라는 키워드를 중심으로 내 삶을 새롭게 바라보고 싶었다. 나를 억눌러 온 사회적 규범, 성별 역할, 보이지 않는 기대를 언어로 정리하고 싶었다. 그렇게 유학을 떠났고, 분명 많은 것을 알게 되었다. 그러나 마음속에 있던 오래된 물음들은 여전히 그 자리에 남아 있었다.


왜 이렇게 열심히 살았는데도 여전히 불안할까? 야망이 큰 것 같으면서도 왜 중요한 순간이 오면 뒷걸음치게 될까? 독립성을 누구보다 소중히 여기는 내가 왜 그렇게 빨리 결혼을 꿈꿨을까? 나는 왜 이렇게 독립적이면서도 동시에 의존적일까? 이 모든 게 모순이라면, 나는 모순 그 자체일까? 그렇다면, 왜 이렇게 괴로운 걸까? 죽을 듯이 조여 오는 이 가슴은 언제쯤 풀어질 수 있을까?


정말 오랫동안, 이 물음들 속에서 길을 잃었다. 공부해서 설명하려 했지만, 설명되지 않는 나였다. 알아내려 했지만, 자꾸만 어긋나는 내 마음이었다. 그것은 논리나 지식으로는 다가갈 수 없는, 훨씬 더 오래된 무엇이었다.


그리고 그때, 나는 처음으로 진짜 질문을 하게 되었다.

‘이 마음은 도대체 어디서부터 무너진 걸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