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왜 이렇게 힘들까...

못됀 성격 때문인가?

엄마는 나에게 “참 못됐다”라는 말을 자주 했다. 엄마의 감정 분풀이를 끝까지 들어주지 못하고, 매번 바른말을 했기 때문이리라. 자신의 삶을 연민하는 엄마가 가여우면서도, 나는 이해할 수 없었다. “그렇게 서러워서 못한 게 많으면, 지금이라도 열심히 해서 하고 싶은 걸 해.” 정확히 기억나진 않지만, 아마도 엄마의 한풀이에 이렇게 받아쳤을 것이다. 내 기억 속 엄마는 늘 전화기를 붙잡고 울고 있었다. 흘러나오는 이야기들은 엄마 없이 자란 시절의 외로움, 시댁의 모진 말들, 그리고 자기를 향한 억울함이었다. 그런 엄마의 등을 바라보며 자란 나는, 뭐든지 알아서 하는 아이가 되어 갔다.


매년 반장을 도맡아 하면서 학교에서는 선생님이 “그 반은 해라가 부담임이지”라고 말할 만큼 책임감 있는 아이였다. 네 살 어린 여동생을 돌보는 것도, 학원을 알아보는 것도, 선생님의 수업 방식이 마음에 들지 않으면 혼자 학원을 옮기는 것도 모두 내 몫이었다. 엄마가 다른 엄마들에게 자랑하듯 말하던 한마디는 “우리 딸한테는 공부하라고 한 적이 없어요. 다 지가 알아서 한다니까”였다. 엄마의 연민을 먹고, 나는 너무 빨리 철든 아이가 되어 갔다.


너무 일찍 철이 들어서였을까. 나는 자라면서 늘 가슴이 멍든 것처럼 아팠다. 시험을 칠 때는 너무 졸아서 그런가 싶었고, 반장 12년의 무게 탓인가 싶기도 했다. 겉으로 보기엔 멀쩡한 모범생이었지만, 껍질을 벗기면 멍투성이인 사과 같았다. 엄마 말대로 내가 정말 ‘못됀 성격’이라서 그런 걸까? 어쩌면 내 성격이 문제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마음속 깊은 곳에 자리를 잡기 시작했다.


무엇이든 제대로 하지 않으면 불안했다. 시험을 잘 보고 싶어서 며칠씩 박카스를 마시며 밤을 새우고, 예민함은 극에 달했다. 마음에 들지 않는 것이 있으면, 그걸 해결할 때까지 끙끙 앓았다. 그런 나를 보며 ‘나는 왜 이렇게 하나도 못 넘기고 끙끙대는 걸까, 이게 바로 못됀 성격인가 보다’라고 생각했다. 고등학생 때는 화장실 한 칸 안에서 웅크리고 앉아 겨우 숨을 쉬던 기억도 있다. 주변의 아이들은 나보다 훨씬 편안해 보였다. 실체 없는 이 감정을 어디에도 털어놓을 수 없었다. 무언가가 나를 움켜쥐고 있는데, 그걸 설명할 언어가 없었다.


사람들이 말하던 인생의 꽃이라는 대학생이 되자, 오히려 불안은 더 커졌다. 학교라는 울타리가 사라지니, 아무것도 하지 않으면 내가 증발할 것 같았다. 학업에 대한 부담은 줄었지만, 그 대신 나는 수많은 활동을 끌어모았다. 사람들은 나를 성실하고 활기찬 학생이라 했지만, 사실 나는 그저 불안했다. 결혼을 하고 가정을 꾸려도 그 불안은 사라지지 않았다. 상황이 달라졌을 뿐, 내가 느끼는 감정은 바뀌지 않았다. 다만 생활을 해야 하니까, 그 불안을 다루는 방식이 조금 더 세련되고, 타인에게 숨기는 법만 늘어났을 뿐이었다.


그때부터 점점 이런 질문이 머릿속을 떠나지 않았다. 도대체 뭐가 문제인 걸까? 아니면 정말 아무 문제도 없는데, 내가 스스로 괜한 걱정을 만들어내는 걸까? 나는 왜 이렇게 힘들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