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렇게 오랫동안 여러번 할 줄 몰랐습니다.
내 첫 전시 입봉작은 2010년 내셔널지오그래픽 Life & Nature 이다.
이 때만 해도 내가 내셔널지오그래픽 이름으로 이런 저런 전시를 일곱번이나 하게 될 줄은 몰랐다.
첫 전시를 누가 들어도 알만한 전시로 시작할 수 있었다는건 참 운이 좋았다고 생각한다.
이 때만 해도 나는 전시 전문가가 아니었기에 어린아이 걸음마 배우듯 하나하나 업무를 배워나갔다.
사실 일 이란게 다 거기서 거기라 공연 하던 짬으로 전시를 하는게 많이 다르지는 않다고 하지만 그럼에도 세세한 부분에 있어 미묘하게 다른 그 부분에서 실수하지 않고 놓치지 않는 것이 중요한 부분이었다. 그래서 공연 처음 시작하던 때 처럼 전부 다 직접 챙기고 확인하고 외주사가 진행하고 있는 일들에 대해서도 마치 내가 직접 진행하는 듯 확인하고 체크하며 진행했다.
대부분 콘서트들이 길지 않은 시간에 끝나다보니 전시회의 41회차 라는 기간이 정말 긴 것인 줄 알았다.
그런데 이건 정말 전시를 몰랐기에 무식하게 덤빌 수 있었던 것이라는 걸 이 전시 이 후에 알게 되었다.
그럼에도 나는 참 운이 좋은 사람이라 생각한다. 첫 전시가 내셔널지오그래픽이라는 그야말로 네임드 컨텐츠였기 때문이다. 호불호야 있을 수 있겠지만 "무슨 전시 하세요?" 라고 물어보는 사람에게 "내셔널지오그래픽 사진전이요." 라고 대답했을때 "그게 뭐에요?" 라는 질문을 들은 적은 단 한번도 없었다. 정확하게는 모를 수 있어도 최소한 이름이라도 들어본 대충 뭔지 알것 같은 컨텐츠를 한다는 건 "이게 뭐고 그래서 좋은거에요" 라는 설명을 반으로 줄여주는 멋진 일이었다.
다만 그렇게 유명한 컨텐츠이다보다 대부분 잡지나 온라인으로 본 사진들일텐데 그걸 굳이 돈 내고 시간 내서 예술의전당까지 보러 오게 만드는 것은 또 다른 문제였다.
이 전시의 가장 중요한 핵심은 바로 이 부분이었다. 당신이 이미 봤을 수 있지만 그러나 '전시장에서 보는 것은 또 다른 사진일 것이다' 를 전달하는 것!
그래서 사진을 출력이 아닌 인화(진짜로 예전 필름 사진 뽑듯 젤라틴 실버프린트로 한 인화)하고 액자도 어떤 것으로 할 것인지 엄청 고민하고 신경써서 고르게 되었다. 일반 액자보다 무려 4배 이상 하는 디아섹을 선택한 것도 그 때문이다.
전시는 영어로 Exhibition 이기도 하지만 Show 로도 불리우고 Vidual Arts로도 불린다.
그만큼 보여지는 것이 중요한 문화 예술 장르이기도 하다. 눈으로 보는것이 전시의 전부이기에 보이는 것 모두에 큰 신경을 썼다. 이 전의 대형 전시들에서는 볼 수 없었던 각 관의 대표 카피라든지 전시 시작을 알리는 문장과 엔딩 멘트 그리고 로비의 포토존 등 지금은 전시에서 당연한 요소들 중 당시엔 별로 반영하지 않는 것들을 대거 반영하여 전시회를 개최하게 되었다.
당시 나는 전시업계 특히 사진전 쪽에서는 듣보잡, 존재감 무, 저 사람 누구? 정도의 존재였다. 계속 전시를 하던 사람도 아니었을 뿐더러 전공자도 아니었기 때문이다.
지금 생각하보면 그랬기에 더 과감한 도전을 해 볼 수 있었던 것 같다.
결론적으로 저 전시는 내 첫 전시이자 대흥행을 이끌어낸 전시이다.
흥행사업하는 사람으로서 흥행에 성공한 컨텐츠가 바로 나를 설명한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첫 내셔널지오그래픽 전시를 생각하면 늘 뿌듯하고 자랑스럽다.
다만..그래서 내가 이 전시를 십 년 동안 이렇게 여러번이나 할 거라고는 이 때는 생각하지 못했다는 것이 지금 생각해보면 꽤 재밌다.
To be continu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