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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그늘의 끝 Oct 27. 2022

크리스마스와 반짝이는 스파클링



크리스마스가 언제지? 산타할아버지가 이번에도 선물 주시겠지? 그런 소리를 늘어 놓고 간 아이 덕분에 소란스럽고 웃음과 울음이 가득할 내일의 크리스마스를 그려본다. 12월 동안 나는 무엇으로 또 얼마나 설레고 많이 웃게 될까? 미소 띤 내 앞에 있을 아이들의 모습을 그려본다. 막 따른 잔에 풍성한 기포가 생기고 터진다. 반짝이는 그 모습은 눈 내리는 겨울 오르골을 닮기도 했고, 크리스마스 장식들로 화려한 겨울 밤 풍경을 떠올리게도 한다. 한 달 남짓 남은 크리스마스가 성큼 다가온 것만 같다. 코를 가져다 대니 잘 익은 진한 복숭아 향이 먼저 올라오고, 잔잔한 흰 꽃 내음이 단단하게 그 뒤를 받친다. 기분 좋은 탄산감이 입 안에서 터진다. 설레는 기분이다.



어린 시절 우리 집은 크리스마스라고 장식이나 이벤트가 큰 분위기는 아니었다. 엄마랑 반짝이 색종이로 만든 하트 가랜더와 집 어느 켠에 일년 내내 있던 리스, 그 주변으로 작은 알 전구가 반짝이는 수수한 크리스마스 풍경. 선물도 특별할 것 없이 소박한 학용품이나 인형을 포장지로 둘러 크게 '산타할아버지가'라고 쓰여 있었다. 그 글씨가 너무도 엄마 글씨체였다는 걸 초등학교 고학년이 되어서야 깨달았다. 그 전까지는 산타할아버지를 철썩 같이 믿었기 때문에 매 크리스마스 시즌이면 ‘산타는 없다’파 친구들과 말싸움을 하곤 했다. 집에 돌아와서도 분이 풀리지 않았던 나는 엄마를 붙들고 하소연 하며 “엄마, 산타할아버지 있지? 맞지?” 확인했었다. 그때 우리 엄마는 어떻게 웃음을 참았는지 모르겠다. 어느 날은 선물 준비를 잊어 아빠가 퇴근 길에 급하게 사오신 색연필이 든 검은 비닐봉지가 그대로 현관문에 걸려 있기도 했고, 색종이에 '메리크리스마스'를 한 글자씩 써 붙인 천 원짜리 지폐와 오백 원짜리 동전 몇 개가 중문 앞에 흩뿌려져 있었던 날도 있었다. 대단한 선물도 아니었고 어쩌면 아쉬웠을 법도 한데 나와 동생은 그때나 지금이나 그 추억이 너무 좋다. 그저 작은 장식만으로도 크리스마스라는 날의 정서를 따뜻하게 즐겼고, 선물이 무엇인지 보다 크리스마스 전날까지의 며칠간 설레는 기분과 눈앞의 선물을 보고 쿵쾅거리던 마음이 좋았다. 선물이 비단 검은 비닐봉지에 든 학용품일지라도 산타할아버지의 선물을 나도 받았다는 기쁨과 안도 같은 게 있기도 했다. '나 올해도 나쁘지 않게 보냈나봐'라고 생각했던 것 같다. 다니던 유치원에서 산타가 직접 호명하고 선물 전달하는 이벤트가 있었는데 늦게 호명되는 바람에 안 줄지도 모른다고 생각이 들어 엄청 울었던 기억이 있다. 그날의 사진엔 화려하게 포장된 선물상사를 들고 산타(분장을 한 사람)에게 안겨 울 듯 말듯한 표정으로 찍혀있다. 얼마나 울었는지 눈이 벌게진 채로. 그만큼 나는 산타를 믿었다.


나 역시 큰 트리나 엄청난 선물을 준비하진 않지만 아이들이 떠올렸을 때 설레고 따뜻했고 많이 웃었던 날로 추억하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12월을 보내고 크리스마스를 준비한다. 아이들은 함께 꾸민 소박한 장식들에 즐거워했고, 산타를 위한 간식을 준비하며 설레어 했다.

작년엔 걱정 반 기대 반이었던 조악한 인형뽑기 기계에 환호했고, 두 아이는 거기에 달라붙어 울고 웃으며 하루 종일을 보냈다. 이모가 보내 온 오르골이 하루 종일 돌아가며 따뜻한 캐롤송을 불렀다. 아이 입에서 나오는 ‘산타할아버지가~’로 시작하는 그날의 모든 말들은 흥이 넘쳤고 세상 벅찼다. 무엇보다 아이의 활짝 웃는 얼굴이 반짝이는 알 전구처럼 환했다.



돌아보니 추운 겨울 크리스마스를 준비하는 시간들에 오히려 내가 많이 기대어 위로 받았던 것 같다. 설레고 기뻤던 어린 날의 기억 위로, 엄마로 맞이한 크리스마스가 추운 겨울을 견디는 따뜻하고 부드러운 추억으로 또 쌓여간다. 지난 겨울 내내 나는 아이만을 생각했는데, 엄마로 사는 일은 참으로 요상하다. 누군가를 사랑하는 일은 이렇게나 신비롭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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