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 & 영화 <조제, 호랑이 그리고 물고기들>
오늘 여러분과 이야기하고 싶은 책, 그리고 영화는 바로 다나베 세이코 작가와 이누도 잇신 감독의 작품인 <조제와 호랑이, 그리고 물고기들>입니다.
장애인 조제와 대학생 츠네오의 사랑과 이별을 다룬 두 작품은 도망치는 인간관계, 그리고 그 중에서도 희노애락애오욕의 최고조를 보여주는 인간관계인 남녀의 만남과 헤어짐을 통해서 우리가 살면서 미워서, 지쳐서, 부담스러워서, 혹은 힘들고 귀찮아서 도망쳤던 모든 것들, 그리고 그렇게, 그런 마음으로 나에게서 도망쳤던 누군가의 뒷모습을 바라봐야 했던 시간들에 대한 자그마한 위로를 건네는 이야기입니다.
다나베 세이코 작가의 <조제와 호랑이 그리고 물고기들>은 일본에서는 2003년도에, 그리고 우리나라에서는 2004년에 출간된 약 30페이지 분량의 단편 소설입니다. 다나베 세이코 작가는 1928년 일본 오사카에서 태어나 소설가, 수필가, 번역가로 활동했고 2019년에 작고하셨어요.
이누도 잇신 감독은 이 소설을 읽고 바로 영화로 만들어 2003년에, 우리나라에는 2004년에 개봉되었습니다. 일본분만 아니라 우리나라에서도 남녀의 만남과 헤어짐을 다룬, 현실적이면서 동시에 덤덤한 위안을 주는 영화라는 점에서 대중뿐만 아니라 평론가로부터 큰 호평을 얻었죠. 이누도 잇신 감독은 1960년생이고, <메종 드 히미코>나 <구구는 고양이다> 등과 같은 영화로 인간 내면의 깊은 슬픔과 처연함을 담담한 따뜻함으로 그리는 데 탁월한 능력을 갖춘 감독입니다. 그래서 좋아하는 감독이기도 하구요.
개인적으로는 원작소설보다 이를 토대로 자신만의 색깔을 새롭게 입혀 조제와 츠네오 만남과 헤어짐을 처음부터 끝까지 보여준 이누도 잇신 감독의 영화를 더 좋아합니다. 만약 누가 저에게 책과 영화 중 어떤 걸 볼까요 라고 물어본다면, 전 무조건 영화요. 라고 대답할거에요. 두 번 보기는 힘든 영화지만, 반드시 봐야하는 영화입니다, 라고 말하고 싶을 정도로 훌륭한 작품입니다. 강력 추천해요.
사실 이 책과 영화 사이에는 공통점보다는 차이점이 더 많습니다.
일단 공통점으로는
1. 판자촌에서 할머니와 단둘이 사는, 휠체어에 의지해야하는 스물다섯의 장애인 여자, 조제가 있고
2. 대학생인 츠네오가 등장한다는 점, 이 둘이 서로 사랑하고 연인이 된다는 점입니다.
3. 그리고 동물원, 수족관, 바다. 이 세 곳이 이 둘의 관계에 중요한 장소로 등장하는 것도 동일합니다. 이 세가지는 조제가 가지고 있는 사랑에 대한 생각, 그리고 사랑에 대한 두려움을 상징하는 장소이기 때문입니다.
동물원은, 조제가 좋아하는 남자가 생기면 무서운 걸 봐도 안길 수 있으니까 괜찮다며 호랑이를 보러가고 싶어합니다. 바다도, 태어나서 가본 적이 없기 때문에 좋아하는 남자와 함께 가고 싶어하는 것도 같죠.
그러나 수족관의 경우,
소설에서는 수족관에 들어가는데 성공하는 반면 영화에서는 그렇지 못합니다.
하지만 두 작품 모두 조제가 츠네오를 바라보며 츠네오의 도망을 예상합니다.
소설에서는 수족관을 다녀 온 후 조제는 이런 생각을 하죠.
"조제도 츠네오도 물고기가 되었다. 죽음의 세계라고 생각했다. '우리는 죽은거야'. '우리는 죽은 거야. 죽은 존재가 된거야.' 죽은 존재란, 사체다. 물고기 같은 츠네오와 조제의 모습에 조제는 깊은 만족감을 느낀다. 츠네오가 언제 조제 곁을 떠날지 알 수 없지만, 곁에 있는 한 행복하고, 그것으로 족하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조제는 행복에 대해 생각할 때, 그것을 늘 죽음과 같은 말로 여긴다. 완전무결한 행복은 죽음 그 자체다. 우리는 물고기야. 죽어버린거야"
그러나 영화의 경우, 수족관이 닫혀 들어가지 못하고 대신 해저 테마로 되어 있는 모텔에서 '너와 야한 짓을 하고 싶어', 라고 말하는 조제와 츠네오는 여행의 마지막 밤을 보내게 되죠.
앞서 말씀드렸듯이, 책과 영화 사이에는 공통점보다 차이점이 더 많습니다.
1. 서사의 차이가 있고, 2. 등장인물의 차이가 있고, 무엇보다, 3. 두 주인공 조제와 츠네오의 성격과 기질에 차이가 있습니다. 이 차이점때문에 저는 원작소설보다 영화를 더 높이 평가하고 또 추천하고 있습니다.
1. 먼저 서사의 차이의 경우
소설은 이 둘이 이미 연인이 되어 부부처럼 동거를 하고 있고 함께 여행을 떠난 장면으로 시작합니다. 그래서 바다를 보고, 수족관을 보고, 처음 만났던 날과 처음 같이 잤던 날, 그리고 처음 동물원에 간 날을 기억하며 여행 마지막 밤을 보내는 장면으로 끝이 나죠.
반면 영화는
이 둘이 서로를 만나기 전의 상황부터 보여주고, 만나게 되는 과정과 친구과 되는 과정, 연인이 되는 과정, 그리고 동거를 하고 여행을 하고 그리고 츠네오의 예전 여자친구와 만나 대면을 하고, 후에 헤어지는 장면, 그리고 헤어진 후의 조제의 모습까지 보여주는, 이 둘의 만남 이전, 만남 그리고 헤어짐, 헤어지고 난 후의 상황을 시간 순서대로 모두 보여줍니다.
특히 여기서 가장 큰 차이점은 이 둘이 재회를 하는 부분인데
소설에서는
우연히 떨어지는 휠체어를 잡아주어 조제를 알게 된 츠네오가, 그냥 바쁜 대학 생활을 보내다가 어느 날 조제의 할머니가 돌아가셨다는 소리를 우연히 듣고 찾아가는 것으로 재회하는 반면,
영화에서는
자신을 창피해하는 할머니때문에 새벽에만 바깥 공기를 쐴 수 있는 조제가, 자신이 탄 휠체어를 잡아 준 츠네오에게 요리를 해주며 매일 밥 먹으러 오기 시작하는 츠네오에게 점점 마음이 기우는 것을 느끼고 그 두려움에 말도 안되는 일로 매우 사소한 일로 츠네오에게 화를 내고 밀어냅니다. 그리고 다시는 오지 말라고 하죠. 그리고 그렇게 자신에게 화를 내는 조제를 보면서 츠네오는 실제로, 조제가 자신을 좋아하지 않는다고 느끼고 오지 않습니다. 그러다가 소설과 마찬가지로 어느 날 우연히 조제의 할머니가 돌아가셨다는 이야기를 듣고 조심스럽게 찾아가죠. 그리고 여기서 조제로부터 왜 왔냐라는 소리와 함께 다시 또 가버려, 라는 소리를 듣고, 그 다음으로 또 바로 그렇게 가라고 갈거면 진짜 가버려라 - 란 조제의 울음에 다시 돌아와 꼭 안아줍니다.
2. 등장인물의 차이
소설과 영화의 가장 두드러지는 차이점 중 하나는 바로 등장 인물입니다. 소설에는 등장하지 않지만 영화에는 등장하는 인물이 2명 있는데, 이 2명으로 인해 조제와 츠네오가 좀더 입체적으로 묘사되는 동시에 작품 전체의 서사가 달라집니다. 그리고 도망, 이라는 부분에 대해 좀더 많은 생각을 하게 하죠.
한 명은 바로 츠네오의 대학 후배이자 전여자친구인 카나에라는 여성입니다.
그리고 다른 한 명은 조제가 고아원에서 만나 성인이 된 지금까지도 유일하게 연락하고 지내는 친구남자이자 아들이라 부르며 자신을 엄마라고 부르라고 강요하고 코지라는 남성입니다.
1) 먼저 카나에에 대해서 이야기해볼까요.
카나에는 츠네오가 처음에 인간관계에서 도망을 쳤던 사람, 그리고 다시 또다른 인간관계인 조제로부터 도망을 쳐서 돌아오는 사람이라는 점, 그리고 조제와의 대면 방식을 통해 남들이 다 부러워하는 예쁘장한 인기녀 카나에와 남들이 동정하는 게 오히려 익숙해보이는 장애인인 조제가 사실은 정반대의 자존감을 가지고 있다는 점을 보여준다는 데서 흥미로운 캐릭터입니다.
먼저 카나에와 츠네오의 관계에 대해서 이야기를 해볼게요. 츠네오는 인기가 많아요. 잘생겼고 여자친구가 많아요. 그냥 친구인 여자들도 많고, 잠자리 파트너도 있고, 그리고 동시에 좋아하는 여자 후배도 있죠. 그 여자 후배가 바로 카나에에요. 예쁘고 조신하고 게다가 조제와 같은 장애인들을 도와주는 자원봉사 일도 하는, 참한, 인기 많은 여학생이죠. 이 여학생이 츠네오를 좋아하고, 츠네오도 이 후배를 좋아하게 되서 사귀죠. 둘은 '대학생인 우리는 함께 착한 일을 한다는' 다소 노블리스 오블리제같은 마인드로 조제와 할머니를 도와주기도 해요. 그리고 그렇게 도와주면서 카나에와 조제도 서로를 알게 되죠.
그렇게 츠네오와 잘 사귀다가 어느 날 갑자기, 갑작스런 조제와의 재회 후 조제와 연인이 되고 조제와 동거를 시작한 츠네오가 아무 이유없이, 그러니까 적어도 전여자친구였던 카나에 입장에서 볼 때는 아무 이유없이 받은 이별 통보에 카나에는 혼란에 빠집니다. 왜냐하면 자신은 이 학교에서 이쁘고 공부도 잘하고 남자들이 다 좋아하는 인기녀거든요. 게다가 이 둘은 여태까지 단 한번도 싸운 적이 없거든요. 단한번도 싸운 적이 없으니 당연히 자신들의 관계에는 아무 문제가 없다고 생각했는데 어느 날 남자가 갑자기 이별 통보를 한거에요. 그러니 사실 아무 문제가 없었던 게 아니었던거죠. 연인 사이에 싸움이 없는 이유는, 물론 그 둘이 서로 너무 잘 맞아서 그런거일 수도 있지만, 동시에 상대방에 대한 기대치가 없거나 관심, 애정이 없어서 갈등이 일어나지 않을 수도 있거든요. 그렇잖아요. 좋아하지 않는데, 관심이 없는데, 이러거나 말거나 아무 상관이 없는데 - 실망할 부분도 당연히 없고 서운하거나 속상할 부분도 없죠. 그래서 그냥 마냥 잘 지내고 있는 줄 알았던 애인이 어느 날 갑자기 이별 통보를 하고, 남자가 떠난 거에요. 게다가 그 상대가 누구인지 알아봤더니 그때 함께 도와줬던 그 장애인인 여자애였던거죠.
그래서 카나에는 단 둘이 조제를 만납니다. 그리고 말하죠. 츠네오가 사실은 그렇게 괜찮은 품성을 지닌 남자가 아니였는데 말야. 그런데 네가 그런 사람으로 만들었더라. 너의 그 다리가 부럽다. 라고요. 그러자 조제는 이렇게 말합니다. 그럼 너도 네 다리를 잘라. 카나에는 조제의 뺨을 때리고 유모차에 타고 있는 조제가 자신의 뺨도 때릴 수 있도록 몸을 기울여 줍니다. 조제도 카나에의 뺨을 때리죠. 그리고 카나에는 한번 더 곧곧은 자세로 조제의 뺨을 한번 더 때리고, 그 자리에서 떠납니다.
조제에게 자신의 뺨을 때리라며 몸을 기울이는 카나에를 보면서 카나에 역시 어떤 면에서는 조제와 같이 멋지고 당찬 여자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그러니까 순진무구해 보였던 이 여자애 역시 알고 있었던 거죠. 츠네오는 가벼운 남자이고, 자신이 인기가 많아 자신을 사귀는 거지만 동시에 자신 역시 잘 생기고 인기 많은 남자를 마다할 이유가 없으니까. 그러니까 츠네오가 생각하는 것처럼 마냥 순진하기만 한 여자는 아니었어요. 그러나 장애인인 조제에게 돌아가 갑자기 전과는 다르게 성실하게 일하며 듬직한 모습을 보여주자 자신은 변화시키지 못한 남자의 모습을 보며 자존심을 다치죠.
카나에의 등장은 조제에 대한 츠네오의 사랑이 동정이나 연민이 아닌 진심이라는 것과 - 왜냐하면 진실한 만남은 사람을 변화시키고 좋은 모습을 만들어주니까요 - 조제가 자기 자신뿐만 아니라 삶 자체에, 사랑 앞에서 상처받기를 두려워하지 않는 솔직하고 당당한 여성이라는 것을 보여줍니다.
2) 이제 코지에 대해 이야기를 해보겠습니다. 조제가 어렸을 때 함께 고아원에서 시간을 보냈고, 현재 유일하게 연락을 하고 지내는 조제의 남사친 코지의 경우 카나에처럼 작품 속에서 중요한 역할을 맡고 있습니다.
코지는, 엄마에게서 버림받아 고아원에 남겨진 기억때문에 엄마에 대한 상처와 그리움으로 큰 트라우마가 있는 인물인데, 이런 코지를 위해 조제는
사실 코지는 조제보다 나이가 더 많아요. 그런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조제가 항상 아들이라고 부르며 자신을 엄마라고 부르라고 강요해요. 엄마한테 연락도 안하고 그동안 뭐했어, 엄마한테 그게 무슨 말버릇이야, 하면서. 이 묘한 관계를 통해서 우리가 알 수 있는 점은 조제는 코지의 가장 큰 아픔이라는 것을 엄마라는 것도 알고, 엄마를 인생에서 가장 그리워하는 걸 알고 있다는 겁니다. 코지는 계속 조제한테는 아니라고 부정하거든요. 사실 맞거든요. 그리고 조제의 포용력, 통찰력, 눈치? 내지 품성을 짐작케 할 수 있는 인물이라고 할 수 있어요 늘 자신을 엄마라고 불러, 내가 네 엄마야, 라고 말을 하는, 독특한 관계를 유지하고 있는 인물입니다. 그리고 이와 동시에 츠네오에게 자신의 과거를 포함해 진짜 이름도, 나이도 말하고 싶어하지 않는 조제를 대신해서 유일하게 조제에 대한 팩트를 츠네오에게 제공하는 캐릭터라는 점에서 무척 중요한 인물이기도 합니다.
왜냐하면 조제가 자신의 실제 이름이 아닌 조제라고 부르라고 말하는 모습이나 그 외 자신과 관련된 많은 이야기들을 츠네오에게 하기 싫어하는 이유는 여러가지가 있겠지만 가장 큰 이유는 바로 판자촌에 사는 장애인 여자가 아닌 모습으로 츠네오에게 기억되고 싶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그동안 지나쳐왔던 많은 사람들과의 관계 속에서 받아온 동정과 연민을 츠네오에게만큼은 받고 싶지 않은 자존심때문이기도 하고, 또 그런 자신의 슬픈 과거나 아픈 이야기를 들었을 경우 동정을 넘어서 자신을 떠날까봐 걱정하는 조제의 두려움때문이거든요.
그래서 코지를 통해 조제가 숨기고 싶어하는 모든 것을 알게 되고 나서도 츠네오가 조제의 두려움처럼 조제를 떠나는 것이 아닌 오히려 더 사랑하게 되는 전환점을 제공하는 캐릭터라는 점에서도 의미가 있는 인물이죠.
아마 그래서 마음이 멀어지고 있는 츠네오에 대해서 전혀 눈치를 채지 못했던 카나에와 다른 여성이라는 점도 보여집니다. 어쩌면 그래서 나중에 츠네오가 도망을 칠 때, 그러니까 이 관계로부터 떠나고자 이별을 통보할 때 화나지도 않고 울지도 않고 덤덤하게 야한 잡지를 이별 선물로 주며 조용히 보낼 수 있었던 걸거에요. 그 관계에 최선을 다했고 그리고 아마도 이 사람의 마음이 떠났다는 것을, 떠나고 있다는 것을 늘 느끼고 있었을테니까요.
하지만 중요한 건 어쨌든 현재 이 둘의 관계는 도망치는 관계였던 츠네오와 카나에의 관계와는 달리, 늘 서로의 존재를 인정하고 곁에 있는, 그 반대되는 관계였다는 점입니다. 그리고 이러한 관계는 늘 도망치는데 급급한 츠네오에게 조제에 대해 더 많이 알게 되고 이해하는데, 츠네오의 성장에 영향을 미치는 관계라고 할 수 있습니다.
3. 조제의 성격과 기질 차이
책과 영화의 차이점 3가지 중 그 마지막은, 바로 조제입니다. 조제의 성격과 기질을 보여주는 방식입니다.
소설에서 보여지는 조제의 모습과 영화에서 보여지는 모습에는 큰 차이가 있습니다. 그리고 이에 따라 츠네오의 성격 역시 다르게 느껴집니다. 여기서 어떤 분들은 원작소설이 30페이지 분량의 단편에 불과하니 당연하지 않겠냐 하겠지만, 그렇지 않아요.
저는 영화에서 보여지는- 보무당당한 조제의 모습을 무척 좋아합니다. 가난하고 장애가 있는 현상황을 받아들이긴 하지만 그게 너무 싫은 현실이라는 것도 인정하고, 그래서 벗어나는 방법으로 책의 세계에 빠져들고, 스스로에게 새로운 이름을 부여하면서 - 부박한 현실에서 도망치지 않고 오히려 인정하고 맞서며 새로운 자신만의 세계를 만들어가는 여자. 그리고, 무엇보다 처음 경험하는 사랑이라는 감정에 대해서 두렵지만 그 두려움을 감내할 수 있는, 상처를 기꺼이 받을 각오로 츠네오를 좋아하고, 자신의 현실을 인정하면서도 묵묵히 살아가는 조제의 당찬 모습을 무척 좋아합니다.
그 근거로 다음 3가지를 들 수 있습니다.
1. 먼저, 조제라는 이름의 상징성, 그리고 프랑스와즈 사강의 <한달 후, 1년 후>라는 책.
원작소설에서는 조제가 자신을 조제라고 불러달라고 하는 이유를 단순히 조제가 프랑스와즈 사강의 책을 읽다가 그 중 등장한 주인공 이름인 조제가 마음에 들어서, 그 다음부터 자신을 이 이름으로 부르게 해달라는 것으로 간단하게만 언급되고 지나갑니다.
하지만 영화에서는 그렇지 않습니다. 그리고 여기서 프랑스와즈 사강의 <한달 후, 1년 후>라는 책이 무척 중요하게 다루어집니다. 사강의 <한달 후, 1년 후>에 등장하는 조제라는 여성은 자신을 사랑하는 남자와 자신이 사랑하는 남자 사이에서 인간이 갖는 감정의 생노병사에 대해 담담히 말을 합니다. 지금 너는 나를 사랑하고, 지금 나는 너를 사랑하지만, 한달 후 일년 후 똑같지 않을 것이다라는 말을요. 그리고 그렇게 사람의 마음은 변하는 것이기 때문에 우리의 지금 이 감정을 소중히 여기지만 이와 동시에 내가 너를 떠나도, 그리고 만약 상대방이 나를 떠난다고 하더라도 담담히 받아들일 것이라는 이야기를 합니다.
언젠가 그를 사랑하지 않는 날이 올거야. 베르나르는 조용히 말했다.
그리고 언젠가는 나도 당신을 사랑하지 않겠지.
우린 또다시 고독해지겠지.
모든 게 다 그래.
그냥 흘러간 1년의 세월이 있을뿐이지.
- 프랑스와즈 사강, <한달 후, 일년 후>
여기서 조제가 사강의 소설 속 조제처럼 츠네오를 좋아하지만 그리고 현재 츠네오는 자신을 좋아하지만 이 또한 모두 변할 수 있으며 그래서 두렵고 슬프지만 덤덤히 받아들이는 사강의 조제처럼 자신 역시 삶을, 인간관계를 이처럼 받아들이고 싶어하는 것을 보여줍니다.
2. 책이라는 매개체 역시 원작소설과 영화에서 다르게 묘사됩니다.
원작소설에서 조제는 책을 읽기는 하지만 매료되어 있는 성격으로 나오지 않습니다. 그리고 장애인시설에서 무료로 쉽게 책을 구해 읽을 수 있는 것으로 나와요.
하지만 영화에서는 집 안 가득, 할머니가 조제의 요청으로 길에서 버려진 책들을 주워모아 쌓여져 있고, 그 책들을 읽는 것으로 나옵니다. 사강의 소설은 그렇게 길거리에서 우연히 주운 책인거죠. 그리고 츠네오와의 관계가 특별해지는 계기도 바로 이렇게 읽게 된 사강의 소설 다음 편을 더 읽고 싶은데 좀처럼 버리는 사람이 없어 읽을 수가 없다며, 무언가 해주고 싶다는 츠네오의 말에 용기를 내 부탁을 합니다. 츠네오는 중고 서점을 찾아다니며 겨우 조제가 찾던 책을 구하게 되고, 이런 츠네오를 보며 조제는 마음이 더 깊어지게 되죠.
책은 조제에게 외부 세계와의 유일한 연결고리이자 츠네오와의 관계의 시작점 - 프랑스와즈 사강의 책, 그리고 종결점 - 헤어질 때 츠네오에게 야한 잡지를 선물로 주죠 - 입니다.
3. 츠네오에 대한 마음 - 처음 같이 잠을 잔 날, 마지막 여행에서 잠을 잔 날.
앞서 전혀 다르게 묘사되는 조제와 츠네오의 재회에 이어 영화에서는
a) 처음 이 둘이 같이 잔 날,
b_ 그리고 마지막 여행에서 함께 잠을 잔 날 밤 조제가 츠네오에게 말들은 매우 다릅니다. 마치 다른 사람 같아요.
a) 먼저 재회를 하고 하룻밤을 보내고 난 후,
소설 속의 조제는 츠네오에게 이런 말을 합니다.
"내 말 안듣기만 해봐. 큰 소리로 떠들거야. 꼼짝도 못하는 사람을 강제로 범했다고. 신문사에도 전화 걸거야. 시청 복지과에도 전하할거고."라고 말해요. 저는 여기서 소설 속 조제에게 좀... 정이 떨어졌어요. 물론 본능적으로 정복욕을 가지고 있는 남자의 특성과 그와는 반대로 안정욕을 가지고 있는 여자가 분명 이런 관계 후에 대한 두려움 - 그러니까 이 남자가 이제 나를 떠나면 어쩌니 - 하는 두려움이 클 것이라 생각되지만, 그리고 저런 말은 분명 그러한 두려움 속에서 나오는 협박 아닌 협박성 발언이라고 생각하지만 - 제가 좋아하는 조제의 모습은 저게 아니거든요.
제가 좋아하는 조제는, 그러니까 영화 속의 조제, 기꺼이 상처받기를 감내하는 조제는 츠네오와 첫날을 보내고 이렇게 말합니다. "좋아. 너도, 네가 하는 모든 것도."
b) 이별을 예감하는 여행의 마지막 날에도 이렇게 잠든 츠네오에게 조제는 이렇게 말하죠.
처음부터 나는 그렇게 깊은 바다 속에 혼자 있었어.
하지만 그렇게 외롭지는 않아.
처음부터 혼자였으니까.
깊은 깊은 바닷속.
난 거기서 헤엄쳐 나왔어.
그곳은 빛도, 소리도 없고, 바람도 안 불고, 비도 안와.
정적만 있을 뿐이야.
별로 외롭지도 않아.
처음부터 아무것도 없었으니까.
그냥 천천히, 천천히 시간만 흐를 뿐이지.
난 두번다시 거기로 돌아가진 못할거야.
언젠가 네가 사라지고 나면
나는 길 잃은 조개껍데기처럼 혼자 깊은 바다 밑에서
데굴데굴 굴러다니겠지.
그것도 그런대로 나쁘진 않아.
우리는 모두 죽은 물고기와 같다는 소설 속의 조제와 달리, 조제는 본인이 좋아하는 프랑스와즈 사강의 <한달 후, 일년 후>의 조제처럼 멀어지는 상대방의 마음과 언젠가는 사라질 자신의 마음을 담담하게 마주할 수 있는 용기가 있는 여자입니다.
저는, 그래서 영화 속 조제를 무척 좋아해요.
저는 <조제와 호랑이, 그리고 물고기들>이 도망치는 인간관계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여기에는 두 가지 도망이 있는 것 같아요.
하나는 상대방이 귀찮고 싫어서, 부담스러워서, 지쳐서 도망치는 인간관계.
그리고 다른 하나는 이와 반대로 상대방이 너무 좋아서, 상대방에게 흔들리는 내 모습이 너무 낯설고 혼란스러워서 그런 나 자신을 지키고 싶은 마음에서부터 상대를 밀쳐내고 도망치는 인간관계.
전자의 도망은 영화 마지막 전여자친구에게로 돌아가는 츠네오가 보여줍니다.
그리고 후자의 도망은 영화 시작, 매일 오는 츠네오를 화를 내며 오지 말라고 밀어내는 조제가 보여줍니다.
이 두 가지의 도망은 물론 다릅니다.
츠네오의 도망은 슬프고 비겁합니다. 츠네오가 조제를 사랑하지 않았다는 건 아니에요. 분명 사랑했겠죠. 소설에서도 영화에서도 조제에 대한 츠네오의 마음은 분명 장애를 가진 여자에 대한 연민이 아니라는 것을 계속해서 보여주니까요. 하지만 자신의 슬픔을 온전히 마주하지 않고 바로 예전 여자친구에게 돌아가는 츠네오의 모습은, 성숙하는 인간의 모습이라기 보다는 비겁한 퇴보로 보입니다. 아마 그래서 본인이 통보한 이별에도 자신이 도망을 친거라고 말하며 길한폭판에서 통곡을 했던 거겠죠.
조제의 도망은 처음 그 딱 한번 이후, 츠네오에게 다시는 오지 말라고 말한 그 딱 한번 이후 작품 속에서는 일어나지 않습니다. 상대방으로 인해 혼란스러운 자신의 모습을 받아들이고 그렇게 자신을 흔들어놓는 상대가 흔히 만날 수 없는 인연이라는 것도 인정합니다. 그래서 그 이후에는 사랑에 순수하게 직진하는 모습을 보여주죠. 이별을 할 때도, 최선을 다한 관계임을 알기에 눈물을 흘리지 않습니다. 그리고 전동 휠체어를 타고 예전과는 달리 낮에도 집 밖을 나와서 다른 사람들을 만나고, 집에 와서 자신이 먹을 밥을 정성스럽게 요리하죠.
우리는 왜 누군가로부터 도망을 치는 걸까요.
그 어떤 종류의 도망이든 간에 결국 우리가 누군가로부터 도망을 치는 이유는 바로 상처 받기 싫어서라고 생각합니다. 힘들기 싫어서, 아프기 싫어서. 하지만 결국 그렇게 끝맺게 되는 인간관계는 미련으로 남게 되죠.
도망으로 관계의 끝을 맺었던 츠네오는 아마도 평생 조제를 생각하며 살았을 겁니다.
하지만 조제는 그렇지 않았을거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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