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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지인 Sep 20. 2021

나를 구원하는 것은 나.

책 & 영화 <카모메 식당>

1. 책과 영화 소개


오늘 여러분과 이야기하고 싶은 책, 그리고 영화는 바로 무레 요코 작가, 오기가미 나오코 감독의 <카모메 식당>입니다. 


북유럽 핀란드에서 어느 날 문을 연 일본 가정식 식당 배경으로 하는 이 작품은, 음식이라는 매개체를 통해 인연을 맺게 된 사람들의 사연을 통해 나를 구원하는 것은 결국 나라는 메세지를 던지는 작품입니다. 


이 작품의 특이한 점은 원작소설을 배경으로 영화가 만들어지는 일반적인 경우와는 달리, 영화 감독이 먼저 이 영화를 구상하고 영화를 만들기 전에 작가에게 의뢰하며 소설이 집필되었다는 점입니다. 따라서 소설 안에서는 영화에서는 설명되지 않은 각 인물들의 비하인드 스토리가 그려져있어 영화를 보고 혹 등장 인물들에게 궁금증을 가졌던 관객이라면 소설을 읽으면서 또다른 기쁨을 느낄 수 있을거라 생각합니다.


하지만 만약 어떤 분들이 저에게 소설과 책, 둘 중 하나만 추천하라고 한다면 무얼 추천하겠냐고 물으신다면, 전 망설이지 않고 영화요, 라고 대답할 겁니다. 그 이유는 이제부터 조금씩 말씀드릴게요 :)



2. 작가 감독 소개 


무레 요코 작가는 1954년생이고 도쿄에서 태어났습니다. '요코 중독'이라는 신조어가 나올 정도로 일본에서 절대적인 지지를 받고 있는 작가죠. 예술학부를 졸업하고 회사에 다니며 소설을 쓰다가 1984년, <오전 영시의 현미빵>이라는 작품으로 데뷔했습니다. 우리나라에서는 영화에 힘입어 소설 <카모메 식당>으로 유명한 작가로 알려져 있습니다. 일본에서 이 작품은 2006년도에 나왔지만 우리나라에서는 영화 개봉 이후 이름이 알려져 2011년이 되어서야 번역되어 출간되었습니다.


오기가미 나오코 감독은, 너무 유명한 일본 여자 감독이죠. 주로 음식을 통한 상처와 힐링을 다루는 영화를 주로 만드는 나오코 감독은 우리나라에서도 단단한 팬층을 확보하고 있습니다. 영화 <카모메> 식당 외에도 <요시노 이발관>, <안경>, <토일렛>, <고양이를 빌려드립니다>, <그들이 진심으로 엮을 때> 등, 주로 여행과 낯선 이와의 만남, 느림의 미학과 비움의 철학을 통해 세상은 살만한 곳이다, 라는 힐링을 선사하는 감독으로 유명하죠. 개인적으로 저는 이런 감독의 메세지가 가장 잘 드러나는 작품은 우리나라에서 2007년에 개봉한 <카모메 식당>, 이라고 생각합니다.




3. 책에 대하여


앞에서 이미 언급했듯이, 이 책은 일반적으로 책이 먼저 나오고 그 다음에 영화가 나오는 순서와는 달리 영화 감독이 먼저 작품을 구상하고 그 다음에 작가에게 의뢰해 소설을 만들었다는 특징을 가지고 있습니다. 따라서 이 책에서는 영화 <카모메 식당>에 등장하는 인물들의 뒷 이야기를 알 수 있다는 장점을 가지고 있어요. 


책은 크게 4장으로 나누어져 있습니다.


1장은 사치에.

2장은 미도리.

3장은 마사코.

4장은 세 여자입니다.


각 장마다 <카모메 식당>의 메인 일본인 여성 3명 캐릭터들 한 명씩, 등장 순서대로 다루고 있고 각 장마다 이와 함께 새로운 핀란드인 캐릭터들이 등장합니다.



1장 사치에.


사치에는 핀란드에서 <카모메 식당>이라는 일본 가정식 식당을 연 30대 여성입니다. 12살에 어머니가 트럭에 치여 돌아가신 후 합기도 고수인 아버지와 단 둘이 살고 있었어요. "인생 모든 것이 수행"이라는 말을 늘 말했던 아버지는 딸에게 합기도를 가르쳐주는 동시에 어머니 장례식장에서도 울지 말라고 말하는 숨 막히는 아버지이기도 했습니다. 그런 아버지가 유일하게 딸인 사치에에게 보여 준 애정은 소풍과 운동회 때 만들어줬던 오니기리였어요. 오니기리는 일본식 주먹밥이죠. 그래서 핀란드에서 <카모메 식당>의 시그니처 디쉬는 오니기리입니다. 아버지가 유일하게 보여주었던 애정이 담긴 음식이라 아마도 사치에 본인의 소울푸드가 된 것이 그 이유겠죠. 


일본에 있을 때 사치에는 아버지가 합기도를 이어받기를 원하지만, 요리를 잘하시던 어머니를 떠올리며 요리를 배우고 관련 학교에 진학하고, 이후 식품회사에 들어가 도시락을 개발하는 업무를 맡습니다. 하지만 어머니께서 해주션던 담담한 음식을 좋아하는 사치에에게는 매번 자극적인 유행을 따라야 하는 도시락 개발과 일본인의 식습성이 본인에게 맞지 않는다는 결론을 내리게 되죠. 하루하루 답답함을 느낀 사치에는 어느 날, 외국에 나가서 요리를 만들고 싶다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어느 나라가 좋을까 생각하다가 정말 그냥 문득 떠오른 나라가 핀란드였죠. 왜냐하면 아주 오래 전, 아버지의 도장에 다니던 핀란드인이 있었거든요.


사치에는 이후 반신반의하면서 이 핀란드인에게 연락을 하고, 연락이 닿고, 핀란드에서 식당 문을 열 각종 필요 서류들을 해결하고 - 마지막으로 자금을 구할 방도로 복권을 생전 처음으로 구매합니다. 본인은 늘 뽑기 운이 좋았다는 것을 떠올리면서요. 그리고 놀랍게도 복권이 당첨됩니다. 무려 일억 엔이요. 우리나라 돈으로 1억 7천만원 정도에요. 여기서 천오백만엔은 아버지께 드리고, 나머지는 모두 들고 핀란드로 떠납니다. 그리고 식당을 열죠.


핀란드 헬싱키에서 식당을 연 사치에는 핀란드에 도착하자마자 본 갈매기들을 보고 갈매기를 뜻하는 일어로 자신의 식당을 카모메 식당이라고 짓습니다. 그리고 오니기리를 메인 요리로 간판에 걸고, 매일매일 손님이 오기를 기다립니다. 하지만 모두들 기웃거리기만 하고 아무도 들어오지 않아요.


그러다가 어느 날 토미라는, 일본 갓챠맨 - 우리나라로 치면 독수리 오형제 - 를 좋아하는 핀란드 대학생이 들어옵니다. 그리고 사치에가 일본인이라는 것을 알고 매우 기뻐하죠. 사치에 역시 생애 첫 손님인 토미의 방문을 기뻐하며 앞으로 계속해서 커피 한잔은 무료로 주겠다고 약속합니다. 이후 매일 토미가 오면서 갓챠맨의 일본 노래 가사를 알려달라고 부탁합니다. 하지만 사치에는 노개 가사를 몰랐어요. 


저작권때문에 인터넷으로도 가사 전문을 찾을 수 없던 사치에는(이 이유는 모르겠습니다 가사 정도는 알 수 있지 않나 싶은데) 어느 날 서점에 들리던 중, 책을 읽고 있는 일본인 여성 미도리를 만나게 됩니다. 그리고 미도리에게 갓챠맨 가사를 묻습니다. 



2장 미도리.


사치에와 미도리가 우연히 서점에서 만나 갓챠맨의 가사를 주고 받는 것으로 2장은 시작됩니다. 그리고 미도리의 이야기를 듣게 되죠.


40대인 미도리는 일평생 가족이 하라는대로 살았던 여성이었습니다. 부모님이 원하는 학교에 들어가고, 들어가라는 회사에 들어가고, 돈을 벌면 가족을 위해 썼습니다. 문제를 일으키지 않으려고, 가족의 사랑을 받기 위해 늘 가족들이 원하는 방식대로 살았었죠. 그러다가 어느 날 20년이 넘게 다닌 회사가 해산을 하게 되어 미도리는 자의반 타의반 회사를 그만두게 됩니다. 시집도 안 가고 직장도 없지만 이미 중년의 나이가 된 그녀에게 가족들은 그녀가 그 어떤 도움도 청하지 않았는데도 불구하고 모두 '우리 지금 돈 없어'라는 말만을 그녀 앞에서 합니다. 


이런 가족들 틈에서 답답함을 느끼던 미도리는 여권은 만들었지만 단 한번도 외국에 나가 본적이 없다는 사실을 깨닫습니다. 그리고 자신이 여태까지 자신을 위해 돈을 쓴 적이 없다는 것도 깨닫죠. 그래서 미도리가 제일 먼저 한 일은 지구본을 돌려 손가락을 찍은 후 그 손가락에 찍힌 나라로 떠나는 것이었습니다. 그렇게 해서 나온 나라가 핀란드였죠. 가족에게는 핀란드어를 공부하러 간다며 어설픈 이름의 학교를 대고 그 즉시 짐을 싸고 떠납니다. 


하지만 큰 계획없이 무작정 일본을 떠나고 싶어서 핀란드에 도착한 미도리는 일단 호텔에 일주일을 예약해놓기는 했지만 앞으로 어찌 해야할 지 모른다는 말을 합니다. 그리고 이때, 사치에는 자신의 집에 머물라는 제안을 해요. 그리고 이 둘은 이때부터 함께 살고, 함께 식당에서 일을 하기 시작합니다.


그리고 2장 마지막에는 늘 카모메 식당을 째려 보고 사라지는 한 핀란드 여성의 모습이 그려집니다.



3장. 마사코. 


50대인 마사코의 등장은 2장의 마지막, 카모메 식당을 째려 보고 있는 핀란드 여성과 함께 등장합니다. 하지만 매일 째려보고 사라지는 핀란드 여성과는 달리, 마사코는 일본 식당이라는 것을 확인하자 바로 들어옵니다. 그리고 핀란드에 도착하자마자 자신의 짐이 사라졌다는 이야기를 하죠. 


호텔에 투숙하며 사라진 짐을 기다리는 마사코는 자신이 핀란드에 오게 된 사연을 말합니다. 일평생 몸이 불편한 부모를 뒷바라지하느라 학교를 졸업하자마자 바로 부모님을 보살피느라 아무것도 못한 마사코는 어느 날 부모님이 돌아가시자 자신에게는 부모님이 남겨주신 약간의 유산 외에는 아무것도 없다는 사실을 깨닫게 되죠. 심지어 유일한 가족인 동생이 사업이 실패해 부모님이 남겨주신 유산 거의를 날리고 남은 것은 부모님이 살던 집과 부모님이 노후를 위해 사둔 낡은 원룸 맨션뿐이었죠. 그마저 동생이 자신은 결혼을 했고 가족이 6명이나 되니 누나는 나가라, 라고 해서 나왔다는 이야기를 합니다. 


그리고 화가 나 여행을 온 곳이 핀란드였습니다. 핀란드인 이유는, 텔레비젼에서 핀란드와 관련된 뉴스를 몇 번 봐왔기 때문이었다고 해요. '맨손 기타 연주하기', '부인 업고 뛰기', '사우나에서 오래 참기', '휴대폰 멀리 던지기'같은 거를 보면서, 어쩐지 핀란드에 사는 사람들은, '이렇게 우스꽝스러운 걸 열심히 하는 사람들이라니 참 멋지다는 생각이 들더군요. 어딘가 뻥 뚫여 있을 것 같다고 할까.분쟁 같은 것도 전혀 없을 것 같고, 인생이 정말 즐거워 보였어요. 그래서 왔어요"라고 말합니다. 그리고 이렇게 왔는데 도착하자마자 짐을 잃어 황당하다는 이야기를 하죠. 그리고 자신은 식당을 차린 사치에나 손가락으로 지구본을 찍어 명확하게 핀란드로 결정하고 온 미도리와 달리 자신은 아무 목적 없이 온 것이라고 말합니다. 그리고 매일매일 짐을 기다리며 카모메 식당에 와서 밥을 먹죠. 


그러던 어느 날, 계속해서 카모메 식당을 째려보던 핀란드 아주머니가 식당 안으로 들어오죠. 그리고 핀란드 보드카를 주문해서 원샷을 하더니 기절을 해버립니다. 세 일본인 여성과 토미는 이 핀란드 아주머니를 집까지 모셔가고, 이후 이 아주머니의 사연을 듣게 됩니다. 바로 자신이 늘 무시하던 남편이 어느 날 바람을 폈는데 일반적으로 어린 여자와 바람을 폈을 거란 예상과는 달리 나이 많은 여자와 떠난 사실을 알고 충격을 받았다, 자신이 얼마나 잘못 살았는지를 알았다, 후회된다.. 와 같은 이야기를 하죠. 그리고 카모메 식당을 매번 찾아와 째려보았던 이유는, 너무 행복해 보이는 세 사람이 부러웠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자신의 이름은 리사라고 소개한 후 이후 카모메 식당의 단골 중 한 명이 되죠. 


이 일 이후 마사코는 핀란드의 힐링 장소라고 하는 숲에 갔다오고, 가서 버섯을 먹고 입이 간 마비되는 사건을 겪게 되고 이 후 카모메 식당에서 함께 일을 하게 되죠. 


4장. 세 여자.


4장의 제목은 세 여자입니다. 이제 카모메 식당에서 사치에, 미도리, 마사코 이렇게 세 여자가 함께 일하는 모습이 그려지죠. 카모메 식당도 이제 꾸준히 단골이 생깁니다. 그런데 이 때 마티라는 핀란드 남자와 그의 동료가 등장합니다. 그리고 이 일본인 여성들이 자신을 버리고 떠난 딸들을 닮아 좋다며 찾아온 마티와는 달리, 그의 동료는 한밤중에 카모메 식당에 들어와 도둑질을 하죠. 그리고 이 도둑을 그동안 갈고 닦은 합기도로 한번에 때려잡은 사치에는 일약 대스타가 되고, 식당도 유명해지죠. 사치에는 핀란드안에 있는 합기도 도장에서 초대를 받기도 하구요. 이후 마티는 떠나간 딸들이 돌아오고, 리사 아주머니도 바람 핀 남편이 돌아옵니다. 


그리고 매일매일 사람으로 붐비는 - 그리고 이제는 오니기리도 잘 팔리는 카모메 식당에는 - 마사코는 일본으로 돌아가기로 결심하고, 사치에와 미도리는 핀란드에 남아 "오늘 하루도 잘 부탁합니다!"로 하루를 시작합니다. 





4. 영화에 대하여


애초 소설 자체가 영화를 보조하기 위해서 창작된 작품이기 때문에 책과 영화의 공통점과 차이점에 대해 이야기하는 것은 그다지 의미가 없다고 생각했습니다. 책을 다른 오디오클립과 비교했을 때보다 유독 더 상세하게 다룬 이유도 이 때문입니다.


그런데 오디오클립 시작 부분에 제가 책과 영화, 둘 중 하나만을 고르라고 한다면 책이 아닌 영화를 추천하겠다고 한 이유는, 비록 영화를 보조하기 위해 탄생한 작품이어서 등장 인물들에 대해 더 알 수 있다고 하더라도 소설과는 확연하게 다른 영화만의 설정들이 있고, 개인적으로 그 다른 설정들이 카모메 식당의 '나를 구원하는 것은 나'라는 메시지를 더 잘 보여준다고 생각해 좋아합니다.



1. 사치에에 대하여

영화에서 사치에의 가족 이야기나 복권 이야기는 등장하지 않습니다. 핀란드를 선택한 이유도 당연히 등장하지 않구요. 특히 소설 말미에 도둑을 잡아서 지역 신문에 대서특필되고 그로 인해 카모메 식당이 유명한 식당이 되었다는 언급도 없습니다. 영화 속 사치에는 카모메 식당에 손님이 없었을 때나 있었을 때나 늘 꾸준히, 매일 식당에 들려 일을 하는 것으로 그려집니다.



2. 미도리에 대하여

소설에는 등장하지 않고 영화에만 등장하는 미도리의 장면이 있습니다. 제가 무척 좋아하는 씬인데, 바로 자신의 집에 머물라고 제안한 사치에의 뜻을 따라 사치에의 집으로 가 첫 식사를 함께 하는 장면인데 - 사치에가 차려준 식사를 한 입 먹고 우는 장면이 있거든요. 미도리는 아무 말 없이 울고 사치에는 아무 말 없이 휴지를 건네주죠. 저는 이 장면이 참 좋았어요. 사치에의 음식이 무척 정성이 가득 담겼을 거란 생각이 들었고, 일평생 가족에게 맞추며 살았던 미도리에게는 이런 사치에의 음식이 아마 태어나서 처음 먹어보는 음식이었을테니까요. 외로운 미도리의 마음과 이런 미도리의 마음을 따뜻하게 보듬어줄 수 있는 음식을 만들 줄 아는 사람이 사치에라는 점을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장면이라고 생각해 무척, 좋아하는 영화 장면입니다.



3. 마사코에 대하여


소설에서 마사코는 끝끝내 사라진 짐을 찾지 못합니다. 하지만 영화에서는 자신의 짐을 찾게 되죠. 그리고 가방을 열어보니 버섯이 가득한 것을 보게 되요. 그 버섯들은 마사코가 핀란드 사람들의 힐링과 여유로움의 상징이라는 숲에 가서 보았던 그 버섯들이였습니다. 이 부분에 대해서 다양한 해석이 있을 수 있겠죠. 




4. 핀란드인 토미


사실 저는 소설에서 묘사되는 토미의 모습을 좋아하지 않아요. 굉장히 눈치 없고 매일 공짜 커피를 마시러 오는, 어딘가 좀 모자르고 예의없는 청년으로 묘사되거든요. 그런데 영화에서는 그렇지 않아요. 영화에서는 아직 학생이라 돈이 부족해 음식을 주문하기는 버겁지만 그래도 순수하게 일본 문화를 좋아하고 사치에와 미도리, 마사코에게도 예의바른 청년으로 나오거든요. 왜 소설에서는 토미를 그토록 찌질한 모습으로 그렸는지, 좀 안타까울 정도에요.



5. 핀란드인 리사 아주머니


소설에서는 늘 행복해보이는 카모메 식당의 세 여자들이 부러워서 밖에서 째려본 거라고 하지만, 영화에서는 사치에가 남편이 데리고 간 강아지와 비슷하게 생겨 짜증이 났었다고 말합니다. 그리고 식당에 들어와 핀란드 보드카를 마셨을 때 핀란드어를 전혀 하지 못하는 마사코와 이야기를 하며 대작을 하는 씬이 영화에는 있죠. 이 장면도 소설에는 없지만 영화에는 등장하는 장면 중 제가 굉장히 좋아하는 장면인데, 여기서 재미있는 점이, 핀란드어를 전혀 할 줄 모르는 마사코가 리사 아주머니가 한 말을 다 알아들었다는 점이에요.




6. 핀란드인 마티 아저씨와 그 아저씨의 동료


영화에서는 마티 아저씨 한명만 나옵니다. 그리고 도둑질도 마티 아저씨가 하는 걸로 나와요. 하지만 딸 이야기도 없고, 도둑질을 하는 것도 돈이 아니라 커피 머신인 것으로 나와요. 사치에가 카모메 식당을 열기 전 그 장소는 마티 아저씨가 장사를 하던 곳이었거든요. 그런데 자신이 가장 좋아하던 커피 머신을 그만 놓고 와서, 그 기계를 찾으려고 온거죠. 그리고 사치에에게 들키구요. 


마티 아저씨의 등장이 중요한 이유는, 여기서 영화 <카모메 식당>의 그 유명한 '커피 루왁' 주문을 사치에에게 알려주죠.


이 장면은 무척 중요해요. 왜 소설에서는 이 장면이 없는지 잘 모르겠어요.


루왁 커피는 세상에서 가장 비싼 커피로 알려져 있죠. 도둑질에 실패한 후 사치에에게 맛있는 커피를 만드는 법을 알려주겠다는 마티 아저씨는 사치에에게 마법의 주문이라며 알려줍니다. 바로 커피 원두에 손가락을 대고 이렇게 말하는 거죠. "커피 루왁". 이 원두가 어떤 원두이든 간에 세상에서 가장 비싸고 가장 맛있는 커피가 되라는 마음으로 빌고 커피를 내리면, 그 마음처럼 그대로 루왁 커피가 된다는 거죠. 그리고 실제로 마티 아저씨가 알려준 대로 커피를 내리자 커피를 마시던 모든 손님들이 원두를 바꿨냐, 너무 맛있다라는 말을 합니다. 


제가 이 장면이 무척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이유는.. 왜 우리나라에도 그런 말이 있잖아요. 아침 일찍 재개하고 그 새벽 첫 물을 떠 100일 기도를 하면 소원이 이루어진다는 말 말이에요. 저는 그 말을 듣고 무슨 생각을 했냐면, 다른 걸 다 떠나서 그렇게 매일 아침, 매일 새벽에 일어나 몸을 씻고 정결하게 준비를 한 후 기도를 100일간 매일하는 마음가짐과 정성이라면 - 어떤 소원이라도 이루어질 수 밖에 없다고 생각했어요. 


저는 이와 같은 정성이 바로 '커피 루왁'이라는 주문에 있다고 생각해요. 진심을 다하는 마음이 일반 커피도 루왁 커피같은 맛을 내게 하는 비밀처럼 느껴졌거든요. 진심은 통한다. 정성은 통한다. 라고나 할까.


그리고. 사람은 곧 자신이 어떤 마음가짐을 갖냐에 따라 모든 것이 결정된다는 것처럼 보이기도 했어요. 이 장면이 소설에 없다는 점이 무척 안타까웠어요. 



5. 나를 구원하는 것은 나 


책과 영화 속에서 저에게 가장 인상 깊었던 장면이 있습니다. 바로 사치에와 미도리의 대화였어요. 


"도쿄에 있을 때는요, 스트레스가 쌓이고 짜증날 때가 있잖습니까. 그걸 노래방이나 쇼핑 혹은 섹스로 얼버무리거나 하잖습니까. 그런데 여기는 우거진 숲이 많고 사람도 차도 적어서 답답할 일이 없을 것 같은데 말입니다. 도쿄에 살던 사람은 전원 생활로 치유를 받기도 하잖아요. 자연이 모든 것을 치유해 주지 않는 걸까요. 좀 의외라고 생각하지 않아요?" 


라고 미도리가 말합니다. 

그러자 사치에는 이렇게 말하죠.


"자연에 둘러싸여 있다고 모두 행복하다고는 할 수 없지 않을까요. 어디에 살든 어디에 있든 그 사람 하기 나름이니까요. 그 사람이 어떻게 하는가가 문제죠. 반듯한 사람은 어디서도 반듯하고, 엉망인 사람은 어딜 가도 엉망이에요. 분명 그럴거라고 생각해요."


사치에는 단언했다.


"그렇군요. 주위 탓이 아니라 자기 탓이군요."


라고 미도리가 말합니다.



저는 한 때, 돈이 생기면 무조건 여행을 떠났던 적이 있습니다. 작품 속에 나오는 사치에와 미도리, 마사코처럼요. 여기가 아니라면 그 어디라도 좋았던 때가 있었습니다. 겉으로는 사람들에게 매번 혼자 여행을 떠나는 이유에 대해서 자아 찾기 여행 중이다, 새로운 경험을 하고 싶어서다, 조금 더 단단해지기 위해서다 라며 자기계발서에 나올법한 이야기를 변명이자 이유랍시고 말했지만, 사실 근본적인 이유는 하나였습니다. 그냥 여기가 싫었습니다. 그리고 다른 곳으로 가면 원하던 삶을 살 수 있을거라고 생각했어요. 왜냐하면, 환경이 사람을 만든다 - 라는 말이 있으니까요.


물론 환경이 사람을 만든다는 말은 맞습니다. 유유상종이라는 말과도 어찌보면 비슷하죠. 괜히 맹모삼천지교라는 말이 있는 게 아니고, 까마귀 노는 곳에 백노야 가지 마라, 라고 하는 게 아니겠죠. 인간은 기본적으로 유약한 존재이기에 자신의 주변에 누가있는지에 지대한 영향을 받습니다. 그래서 환경이 무척이나 중요하죠. 쓰레기장에서 공부를 하기는 어려우니까요.


이런 생각으로 저는 꽤 오랜 시간 여행을 다녔고 해외에서 근무하고 거주할 수 있는 기회를 잡기 위해 노력했습니다. 그리고 실제로 그 기회들을 잡았고, 원하던 삶을 살기도 했죠.


하지만 그 끝에 가서 제가 체험하고 느끼고, 깨달은 것은, 

결국 환경이 사람을 구원해주지는 않는다는 것이었습니다.


내가 엉망이면 어딜가도 엉망이라는 사치에의 말은 옳아요.

무언가 다른 걸 꿈꾸며 다른 환경을 만들지만, 결국 그런 일은 일어나지 않습니다. 처음에는 낯선 환경이 주는 어색함에 조금 다른 나의 모습이 나올 수 있지만, 결국 그 환경도 익숙한 것이 되면 여전히 변하지 않는 자신의 모습을 마주하게 되죠. 그리고 실망하게 됩니다. 



그래서 저는 이 작품이 더더욱,

환경이 바뀐다고 사람이 변하는 것이 아니라,

스스로를 구원하기 위해, 스스로 원하는 사람과 삶을 살기 위해 자신에게 진정 필요한 게 무엇인지 알아야 하는, 그래서 나를 구원하는 것은 곧 나 자신이라는 - 건강한 사람들에 대한 이야기라고 생각합니다.



사치에는,

돌아가신 어머니와 숨이 막히는 아버지가 있는 일본에서 더이상 자신으로서 살 수 없다고 느꼈습니다.

그래서 동경하던 핀란드로 갔고, 거기서 자신이 늘 바라고 고대했던 식당을 열죠.

그리고 삶의 의미를 찾습니다.


미도리는,

온 가족을 위해서 희생하며 일평생을 보냈는데 결국 가족에게 무시 당하고 버림 받습니다.

그래서 태어나서 처음으로 자신이 번 돈을 자신을 위해 쓰기로 결심하고, 지구본을 돌려 손가락이 가르키는 나라로 더나기로 결심하죠. 그래서 핀란드에 가게 되고, 거기서 처음 만났지만 평생 같이 알았던 가족보다 더 자신을 이해하고 위해주는 사치에를 만나게 됩니다.

그리고 그동안 몰랐던 자신의 새로운 모습을 보게 되죠. 



마코는,

일평생 몸이 불편하신 부모님을 돌봐드린 후 두 분 모두 돌아가시자 이후 자신이 여태까지 살면서 단 한번도 자신의 의지대로 살았던 적이 없었던 것을 깨닫습니다.

그래서 무조건 일본에서 가장 먼, 그리고 나무와 숲이 가득한 나라에 가기로 결심하죠.

그리고 그 안에서 사치에와 미도리를 만나며 부모님이 떠나고 아무도 아닌 사람이 된 자신을 돌아보게 됩니다.

그리고 미도리처럼, 그동안 살면서 알지 못했던 새로운 자신을 알게 됩니다.

이 인물은 유일하게, 다시 일본으로 돌아가는 것으로 끝이 나죠. 그리고 50대 초반의 나이에 처음으로 직업을 가지려는 의지를 보여줍니다. 부모님께서 남겨주신 돈도 있지만, 이제 스스로를 부양하겠다는 생각을 하게 된 거겠죠. 




결국 <카모메 식당>이 이야기하는 것은 

환경을 바꾼다고 내가 바뀌는 이야기가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오히려 나 자신에게 도망치지 않고,

내 마음을 마주하고, 그래서 나의 흔들리는 마음을 분명히 알고,

그 마음을 딛고 행동으로 옮겨야 비로소 나를 구원할 수 있다는 이야기라고 생각해요.




https://audioclip.naver.com/channels/7366/clips/96



https://www.podbbang.com/channels/1781990/episodes/241566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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