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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지인 Sep 28. 2021

슬프면 바다로 가는 사람과 슬프면 산으로 가는 사람

책 & 영화 <걸어도 걸어도>

1. 책과 영화 소개


오늘 여러분과 이야기하고 싶은 책, 그리고 영화는, 바로 고레에다 히로카즈 감독이 직접 쓰고 연출한 <걸어도 걸어도>입니다. 


10여년 전 한 아이를 구하다가 대신 바다에 빠져 죽은 형의 기일에 맞춰 모인 한 가족, 그리고 그때 형의 희생으로 살아남은 아이를 매년 형이 죽은 날에 만나게 되는 기묘한 1박2일을 다룬 이 작품은, 고레에다 히로카즈 감독이 어머니가 돌아가시고 쓴 자전적 소설로 같은 해 영화로도 만들어졌습니다. 


이 작품 속에서 아버지는 아들이 생각날 때마다 그가 죽은 바다로 내려 갑니다. 그리고 어머니는 아들이 생각날 때마다 그가 묻혀 있는 산으로 올라가죠. 슬픔에 대처하는 다른 방식, 그리고 아무리 가족이다 하더라도 그 모든 것을 이해할 수 없는 인간관계의 근본적인 이야기. <걸어도 걸어도>는 이 모든 것을 담담하고 덤덤하게 그려내는 작품입니다.


여태까지 [지인의 책방]에서 다루었던 원작소설과 영화 작품들은 모두 그 창작자가 달랐습니다. 하지만 <걸어도 걸어도>는 책과 영화 모두 한 사람이 쓰고 연출했다는 점에서 무척이나 특별하고 특이한 작품입니다. 게다가 앞서 언급했던 바와 같이, 감독 스스로 이 작품이 자신의 이야기를 100% 그대로 옮긴 것은 아니나 분명 자전적인 이야기라는 것을 밝혔기 때문에 유독 개인사 공개를 꺼려하는 고레에다 히로카즈 감독의 성향으로 보았을 때 (부인과 딸을 공개하지 않는 것으로 유명한 분입니다) <걸어도 걸어도>는 이 감독의 팬이라면 더더욱 남다르게 다가오는 작품입니다. 


특히 저의 경우 누군가의 팬이 되는 경우가 드물고, 그렇기 때문에 팬이 되었을 경우 그 작가나 감독의 개인사가, 일상이 무척이나 궁금해지는 기질이 있는 터라 이번 작품은 히로카즈 감독이 가지고 있는 가족이라는 관계에 대한 감독의 사적인 생각과 그의 가족관계는 이랬었겠구나, 라는 많은 것들이 느껴져서, 그리고 그래서 그런지 몰라도 제 개인적인 가족관계가 떠올라 이번 오디오클립은 유독 이번 글을 정리하는데는 무척이나 오랜 시간이 걸렸습니다. 아마 많은 분들도 저처럼 고에레에다 히로카즈의 책과 영화를 본 분들이라면 저처럼 가족에 대해 여러 생각을 하셨을 거라 사료됩니다. 





2. 작가 감독 소개 


고레에다 히로카즈 감독은 1962년, 일본 도쿄에서 태어났습니다. 누나 둘이 있고 영화를 사랑하는 어머니 덕분에 영화 감독이 되었다고 합니다. 국내외 이미 단단한 팬층이 있는 히로카즈 감독은 데뷔부터 화려했습니다. 1995년 <환상의 빛>은 데뷔작인데도 불구하고 세계 3대 영화제 중 하나인 베니스 영화제에서 각본상을 수상했고, <아무도 모른다>는 최연소 칸 남우주연상, <그렇게 아버지가 된다>는 칸 심사위원상, <어느 가족>으로는 칸 황금종려상을 수상할 정도로 이곳에 다 나열하기 어려울 정도로 전세계적으로 많은 주목과 사랑을 받는 감독입니다. 


소설 <걸어도 걸어도>는 일본에서는 2008년, 우리나라에는 번역되어 2017년에 출간되었습니다. 동명의 영화는 일본에서는 책이 출간된 같은 해인 2008년 개봉되었고 우리나라에는 2009년에 나와 평론과 관객 모두에게 좋은 평을 받았습니다.


고레에다 히로카즈 감독이 이야기하는 테마는 늘 가족과 죽음, 그리고 기억과 관련되어 있습니다. 오늘 여러분과 이야기하고 싶은 책과 영화 <걸어도 걸어도>에서는 가족 중 누군가의 죽음, 그리고 그와 관련된 기억이 가지고 오는 슬픔에 서로 다르게 대처하는 가족의 이야기에 대해 말해보려고 합니다.


3. 영화에 대하여



책과 영화에 대해서 이야기할 때 늘 책을 먼저, 그 다음에 영화를 이야기했지만, 오늘은 영화를 먼저 이야기해보려고 합니다. 책과 영화는 같은 사람이 창작했기 때문에 그 결과 톤이 같습니다. 하지만 전지적작가시점인 영화와는 달리 책은 이제 장남이 되어버린 차남인 료타가 7년 전 형의 기일날 있었던 일을 회상하는 1인칭 시점으로 진행되기 때문에, 책에서 조금 더 세세한 감정과 생각의 변환점들을 볼 수 있다는 점에서 먼저 이 작품의 이해를 돕기 위해 영화를 먼저 이야기하도록 하겠습니다.



영화는 형의 기일 여름 아침 풍경에서 시작됩니다.


동네 의사로 일했지만 이제는 은퇴한 아버지는 조용히 혼자 바다로 산책을 나갑니다. 어머니와 먼저 온 누나는 음식을 만들며 이야기를 하고 있고, 누나의 남편과 아이들은 집 앞 마당에서 놀고 있습니다. 이 집의 차남 료타는 부인과 부인의 이전 결혼에서 낳은 아이, 자신을 아직 아버지라고 부르지 않고 '료짱'이라고 부르는 아이와 함께 기대 반 걱정 반인 마음으로 오랜만에 본가로 돌아가는 지하철 안에 있습니다.


이제 모든 가족들이 다 모였습니다. 아버지는 바다 산책에서 돌아오셨고, 누나의 가족과 료타의 가족도 다 모여 형에 대한 이야기를 나눕니다. 왔냐, 라는 한 마디로 서재이자 예전 의원실로 들어가는 아버지, 유쾌하고 떠들썩한 매형과 누나 그리고 그 아이들, 그리고 조금은 어색함 속에서 선물을 주고 받는 자신의 아내와 어머니를 보며 료타는 선물로 가지고 온 수박을 욕조의 차가운 물에 담그며 고등학교 수학여행 때 이를 너무 갈아서 방에서 쫓겨났다는 형의 일화를 자신의 이야기로 착각해 말하는 어머니에게 그건 형의 이야기야!라고 말하죠. 영화 내내 이렇게 자신과 형의 이야기를 뒤바꿔 이야기하는 일들이 계속해서 나오고 계속해서 아니라고 이야기하지만 아무도 듣지 않습니다. 


시간이 조금 지나 날이 선선해지나 어머니와 함께 료타의 가족은 형이 있는 산소로 산에 갑니다. 어머니는 누군가 형의 묘 앞에 꽂아 놓은 해바라기 꽃을 화를 내며 뽑아버리고 합장을 올리며 자식의 묘를 찾는 것만큼 힘든 일이 있겠냐며 나쁜 짓을 한 적도 없는데...라며 말을 흐리죠. 산을 올라가고 내려가며 아이가 생기면 헤어지기 힘드니 빨리 결정하라는 어머니의 이야기를 듣는 료타는 사실상 어머니가 자신의 결혼을 반대하는 입장이라는 것을 알게 되죠. 그러면서 이제 나이가 들어 형이 있는 산소의 산으로 걷기가 힘드니 앞으로는 차를 사서 나를 태워달라는 어머니의 말에 '걷는 게 건강에 좋아요'라고 응수하죠. 


집에 오니 형이 구해줬던 아이, 요시오가 와 있습니다. 이제는 스물다섯 대학생이 되었지만 뚱뚱하고 땀만 흘리고, 대학도 제대로 졸업 못하고 원하는데 취직도 못한 요시오를 보며 등을 돌린 체 아무말도 안하는 아버지와는 달리 어머니는 마지막까지 배웅하며 내년에도 꼭 와주렴, 이라고 웃으며 돌려보냅니다. 요시오가 돌아가고 나자 등을 돌리고 부채를 흔들고 있던 아버지는 '저런 하찮은 놈때문에 우리 아이가. 우리 애 아니라도 되지 않은가. 저런 놈은 살아있을 가치가 없어'라고 말합니다. 어머니는 요시오가 먹었던 음식을 세며 살이 더 쪘네, 라고 말합니다. 이에 료타는 '열심히 살지만 뜻대로 안될 수도 있다, 하찮다고 하지 마라'라며 아버지에게 말합니다 '의사가 그렇게 대단한가요? 형도 지금까지 살아있었으면 어떻게 될지 모르는거에요. 사람이라는 게 다 그래요.' 갑자기 무거워진 분위기에 아무도 말을 하지 못하는데, 이때 매형이 웃으며 등장합니다 '이야 하찮다 하찮다해서 내 얘기 하는 줄 알고 못 나왔는데 요시오군 얘기구나, 다행이다'하면서요. 일순간 분위기는 풀리고, 점심을 먹고 나자 누나의 가족은 돌아갑니다.


그러나 말실수로 하룻밤을 부모님 댁에서 보내게 된 료타의 그의 가족은, 저녁을 먹고 이야기를 나눕니다. 나중에 단 둘이 있을 때 료타가 어머니에게 말하죠. 이제 요시오군은 그만 오라고 해도 되지 않냐, 라고요. 왜 그래야 하냐는 어머니의 질문에 왠지 불쌍해서요, 우리 보는 거 괴로워하는 것 같고. 


그래서 부르는거야. 겨우 10년 정도로 잊으면 곤란해. 

그 아이 때문에 준페이가 죽었으니까.


요시오가 죽인 건 아니잖아요


그게 그거지 부모가 볼 땐 똑같아.

증오할 상대가 없는 만큼 괴로움은 더한거야. 

그러니 그 아이한테 1년에 한번쯤 고통을 준다고 해서 벌 받지는 않을거야.

그러니까 내년, 내후년도 오게 만들거야. 


너무하네요.


너무한거 없어 그 정도는 보통이지.


모두 왜 그래요? 보통, 보통하면서. 


너도 부모가 되어보면 알게돼


나도 아버지에요.


진짜 부모가 되면. 


다음 날 아버지와 아들과 함께 바다로 산책을 간 료타는 아버지가 형처럼 야구를 좋아하는 줄 알았던 아버지가 사실은 축구를 좋아하셨다는 것을 알게 됩니다. 그리고 함께 언제 축구장에 가자는 이야기를 하고 돌아와 다시 본인의 집으로 돌아가죠.


영화는 자식들을 모두 보내고 다시 집으로 향하는 계단을 올라가는 어머니와 아버지의 뒷모습을 찍으면서 료타의 나래이션이 나옵니다. 


그리고 3년이 지나 아버지가 돌아가셨다.

결국 아버지와 축구장에 가는 일은 없었다.

돌아가실 때까지 아버지와 싸움만 했던 어머니도

아버지 뒤를 쫓듯 돌아가셨다.

결국 차에는 한번도 태워드리지 못했다. 







시간이 흘러 이제는 딸도 생긴 료타가 가족과 함께 형의 산소를 찾는 것으로 나옵니다. 그리고 차를 타고 산소를 내려가는 장면으로 영화가 끝나죠. 





4. 책에 대하여 


책은 일인칭 시점으로 전개됩니다. 주인공은 이제 47살이 된 차남 료타가 7년 전 결혼을 하고 형의 기일에 맞춰 부모님 댁에 찾아갔던 일을 회상하는 방식으로 진행됩니다. 결혼을 한 상대가 5학년 남자아이가 있는 재혼여성인데다 형의 기일에 부모님 댁에 가는 것은 처음이기에 모두 조금은 긴장한 상태에서 지하철을 타고 가는 것으로 그 날을 기억하는 것으로 책이 시작됩니다. 따라서 책에서는 죽은 형과 누나, 그리고 아버지와 어머니에 대한 료타의 생각이 매우 잘 느껴집니다.


우수하고 모범적이며 동시에 인기도 많았던 형은 10여년 전, 한 아이를 바다에서 구하다가 죽었습니다. 밖에서뿐만이 아니라 가족 내에서도 특별한 위치에 있었던 형은 가업을 이어 의사가 될 것이라는 부모의 희망을 받는 자식이었다는 점에서 형의 죽음은 부모님에게 큰 상실감을 제공했고 형과는 정반대로 우수하지도, 인기가 많았던 것도 아니었던 차남은 이제 동경하면서도 열등감을 동시에 느꼈던 형의 짐을 어쩔 수 없이 물려받는 위치에 있다는 것을 알게 됩니다. 하지만 그런 기대감조차 애초 형처럼 능력이나 매력이 없는 자신에게는 무리라는 것도 알게 되죠. 그렇게 시간들이 지납니다.


소설 초반에 주인공 료타는 이렇게 말합니다.


"그로부터 상당히 긴 세월이 흐른 것 같지만, 그때 이렇게 했더라면이라든가 지금이라면 좀 더 이렇게 했을텐데라든가.. 이제 와서 그런 감상에 젖을 때가 종종 있다. 그 감정은 사라지지 않고 시간과 함께 가라앉아서, 오히려 흐름을 가로막는다. 잃어버릴 것이 많았던 하루하루 속에서 한가지 얻은 것이 있다면, 인생이란 언제나 한발 늦는다는 깨달음이다. 체념과도 비슷한 교훈일지도 모른다."


죽은 형을 생각하며 슬픔에 빠져 바다로 가는 아버지에 대해서 료타는 이렇게 생각합니다.


아버지는 의사로, 동네 의원으로 살다가 얼마 전에 은퇴를 했습니다. 하지만 여전히 이래야 사람들이 계속해서 선생님이라고 부른다며 병원 간판을 떼지 않고, 병원 사무실을 자신의 서재로 이용합니다. 


"아버지 말에 따르면 동네 의원인 편이 환자와 거리도 가깝고, 인간 대 인간으로서 관계가 만들어지는 의료의 정도라고 한다. 하지만 어머니는 "출세 경쟁에서 뒤처진 거야"라고 한마디로 정리해 버릴 뿐이다. 출신 대학 병원에 남아서 교수나 부장따위가 되기 위해서는 실력만으로는 부족한 것이 당연하고, 상사나 부하 직원과의 인간 관계, 즉 정치력이 필요하다. 아버지는 그런 데는 소질이 없었다. 그 약점을 극복하려고도 하지 않았다. 그것은 본인도 알기 때문에, 어머니의 말을 듣고 아버지는 순간 기가 죽어서 입을 다물었다."


"다만 지금 생각하면 이것을 정해진 대사처럼 말할 수 밖에 없으셨다는 것이 조금 가엾게 느껴지기도 한다. 아버지는 아버지대로 역시 당신 자식의 임종을 지키지 못했다는 데 아버지로서나 의사로서도 후회와 부채감이 있었을 것이다. 그리고 이는 돌이킬 수도 없는 것이어서 돌아가실 때까지 당신 안에 남아 있었을 게 틀림없다. 그것은 후에 내가 어머니에게 느꼈던 것보다도 아득하게 깊은 데다가 잔혹하기까지 한 것일지도 모른다. 그러나 그것을 이때만큼은 어머니도 나도 알아 차리지 못하고 있었다. 


모두 자신의 감정만으로도 벅찼기 때문이다."



죽은 형을 생각하며 슬픔에 빠져 형이 묻혀 있는 산으로 가는 어머니에 대해 료타는 이렇게 생각합니다.



형이 살린 아이를 매년 기일마다 부르는 것에 대해서 이제 그만 불러도 되지 않냐, 불쌍하다, 라는 료타의 말에 어머니는 그래서 부르는 거라고 말하죠. 잊어버리면 곤란하다고. 그 아이때문에 내 아이가 죽었다고. 미워할 상대가 없는 만큼 괴로운 것도 없다고. 그래서 앞으로도 계속 부를거라고. 너무하다라는 료타의 말에 너무한 건 없다, 이 정도는 보통이라고 말하는 어머니를 보며 료타는 이런 생각을 합니다.


"어머니의 말은 오히려 당신의 기분을 이해하지 못하는 나를 오히려 비난하는 것 같았다. 슬픔이 시간과 함께 발효되고 썩어서, 가족에게도 공감받기 어려울 정도로 변질되었음을 본인은 알지 못하는 것이다."


그리고 부모님이 모두 돌아가시고 나자 두 분에 대해 료타는 이런 마음을 갖습니다.


"나는 결국 아버지와 축구를 보러 가지 못했고, 어머니를 한 번도 차에 태워 드리지 못했다. '아 그때 이랬더라면.. 이라고 깨닫는 것은 언제나 그 기회를 완전히 놓치고 나서, 다시 되돌릴 수 없을 때였다.


인생은 언제나, 한발씩 늦는다. 그것이 아버지와 그리고 어머니를 잃고 난 뒤어 얻은 솔직한 깨달음이다. 


...


아버지와 어머니를 잃고서, 나는 더이상 누군가의 아들도 아니게 되었다. 그대신이라고 하기엔 그렇지만, 나에게는 새 딸이 태어났다. 솔직히 말하면 그랬다고 해서 아버지나 어머니에게 대한 이런저런 후회나 상실감이 메워지는 따위의 일은 없었다. 잃은 것은 잃은 채로 그대로다. 다만 아이가 둘이 되니 차가 필요해져서 면허를 따고 차도 사게 되었다. 이런 저런 일들은 이렇게 모양새와 상대를 조금씩 바꿔가면서 반복되는지도 모른다. 기쁘거나 슬프다는 식의 알기 쉬운 감정은 아니다. 알기 어려운 만큼, 인생 그 자체에 가까워진 듯한 기분이다.


...


그렇게 어머니를 떠올리면서 웃기도 하고 울기도 할지도 모르겠다."


네 그리고 이렇게, 소설이 마무리가 되죠.






5. 슬픔에 대처하는 자세


저의 부모님의 가장 큰 슬픔을 보았을 때는 두 분의 어머니가 돌아가셨을 때 였습니다. 


외할머니가 돌아가셨을 때, 아버지는 조명등을 사오셨습니다. 어머니께서 이때부터 어두우면 무서워서 못 주무셨거든요. 그래서 암막 커튼으로 주무시는 아버지는 그런 어머니를 위해 조명등을 사오시고, 매일 밤 어머니 곁에 함께 계셨어요. 지금도 어머니는 너무 어두우면 못 주무세요. 그리고 지금도, 집안 어딘가에는 반드시 작은 빛이 보여요. 


할머니가 돌아가셨을 때, 어머니는 아버지가 가장 사랑하는 공간인 서재를 청소하셨습니다. 그리고 아버지는 혼자 걷기 여행을 떠나셨지요. 지금도 아버지는 어머니와 함께, 때로는 혼자, 때로는 친구분들과 한달에 두번 정도 주말마다 걷기 여행을 갔다오세요. 


처음에 저는 이런 부모님의 모습을 이해하기 어려웠습니다. 조금 어둡다고 갑자기 잠을 못 잔다는 어머니가 아이같았고, 주말이 되어서야 이야기할 시간이 있는 저와 동생을 자꾸 둘레길, 올레길을 걷고 오겠다며 어머니와 둘이 나가시는 아버지가, 자식들은 신경 쓰지 않으신다고 느껴졌어요. 그런데 지금은, 이 모두 두 분께서 슬픔을 대하는 방식이라는 걸 압니다. 그리고 어떤 슬픔은 평생을 가는 것도 있는 것 같아요. 그리고 그 슬픔에 대처하는 방식에는 사람마다 다르고, 그 차이점이 슬픔의 농도를 보여주는 것 같지는 않다는 걸 이제는 압니다. 산에 가는 사람이, 바다로 가는 사람보다 더 슬퍼한다고 말할 수 없잖아요. 그리고 산에 가는 방법이 바다로 가는 방법보다 옳다고도 말할 수 없습니다.


저는 슬프면 걸어요. 길게 뛰고, 책을 읽고, 영화를 보고, 청소를 하고, 요리를 하고 글을 씁니다. 얼마 전에 누군가 저에게 왜 이렇게 오디오클립을 열심히 하냐는 질문을 받았는데, 그래서 생각을 해봤는데, 아마도 이 역시 제가 슬픔을 소화시키는 방식 중 하나라는 결론에 다다랐어요. 뭐랄까. 언젠가부터 시간의 흐름이 다르게 느껴지거든요. 그래서인지 몰라도 제가 방송을 하는지, 그리고 오디오클립을 만드는지 전혀 모르는 제 가족과 친구들이, 언젠가 저를 기억하며 이 글들을 알아주길 마음이 생긴 것 같아요. 비단 지금 녹음하고 있는 [지인의책방]뿐만 아니라 [대화의템포]와 [대본남녀]도요. 제가 어떤 생각을 했고 어떻게 살아왔는지, 언젠가 가족과 친구들이 알아줬으면 하는 작은 바램이 있는 것 같아요. 그래서 이렇게 기록을 하고 남기는 일을 좋아하는 건지도 모르겠어요. 



https://audioclip.naver.com/channels/7366/clips/100



https://www.podbbang.com/channels/1781990/episodes/241566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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