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받고 싶은 욕망에서 저를 구원하소서

안락사가 아닌 아사를 선택한 네덜란드 소녀를 생각하며.

by 지인


2019년, 안락사를 원했지만 허락받지 못해 아사로 죽음에 당도했던 17세 네덜란드 소녀 노아 포토반이 생각났다. 11살 때부터 지속적으로 폭력에 노출되었던 그녀는 후에 <이기거나 배우거나>란 제목의 책을 출간할 정도로 많은 사람들의 응원과 사랑을 받았지만, 결국 가족과 친구들의 지지 속에서도 그녀가 마지막에 남긴 말은 "계속 반복되는 싸움에 지쳤다"였다.



"수년간의 투쟁과 싸움으로 진이 다 빠져버렸다"는 그녀에게 왜 노력을 안했냐고, 왜 백기를 들었냐고 욕할 수 없다. 그녀는 분명히 노력했을 것이다. 그리고 깨달았을 것이다. 자신의 삶에 스스로 자부할 수 있을만큼 최선과 최고의 노력을 다 했음에도 불구하고 이 모든 것은 영원히 반복되리라는 것을, 그리고 그녀는 평생 홀로 자기 자신과 싸워야만 한다는 것을. 아마 그녀에게는 매일 아침에 일어났을 때 떠오르는 상념들이, 머리에 스치는 기억들이, 그로 인한 고통들이 죽여도 죽여도 계속 살아나는 괴물로 보였을 것이다. 그래서 그만하고 싶었을 것이다. 내 인생에서 내 앞에 서 있는 괴물의 목만 자르는 일을 평생 해야 한다면, 그래서 다른 일을 전혀 할 수 없다면 - 이제는 그만 그 괴물이 나를 죽여주기를 바라지 않았을까.



그녀는 그 영속성에 질려 버렸던 것이리라.



그녀가 차라리 노력을 하지 않았다면 죽지 않았을까. 그녀가 자신의 과거와 아픈 경험들 속에서도 삶을 살아가려고 그렇게 노력하지 않았다면, 힘들어 힘들어 아퍼 아퍼만을 중얼거렸다면 이제는 이러한 싸움에 그저 지쳤을 뿐이라며 죽음을 선택하는 일도 없지 않았을까. 나라가 안락사를 허락하지 않으니 아사를 선택하겠다는 17세 소녀의 단호한 결심은 대체 어디서 나올 수 있었던 걸까. 너를 이해해, 응원해, 좋아해, 사랑해 - 라고 말하는 사람들의 손을 필요치 않다고 느끼는 17세 소녀의 냉철함은 어디서 나올 수 있었던 걸까.



그녀는

타인의 말이 주는 거짓을 알고, 행동이 주는 공허함을 알았던 걸까.



그녀는

타인의 이해와 응원과 애정과 사랑을

단한번도 느끼지 못했던 걸까.





스스로의 소멸을 결정하는 그 소녀의 마음과 정신과 육체는, 아마도 모든 것을 다 해 본 사람만이 내릴 수 있는 말과 행동이었던 거겠지. 내가 할 수 있는 모든 것을, 이 이상 할 수 없다고 자신할 수 있을 만큼 내 삶에 최선을 다 했음에도 계속해서 반복되는 아픔에 이제 대처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은 - 휴전도 끝도 안보이는 이 전쟁을 끝내는 유일한 방법은 바로 투쟁 자체를 포기하는 것뿐 아니라 전쟁터 자체를 떠나는 것 뿐이라는 결론에 다다랐던 거겠지.



"이제는 그만 쉬고 싶다", 라는 17세 소녀의 말에 그래서 나는 욕할 수 없다. 잘못된 선택이었다고도 생각하지 않는다. 그녀에게 그 전쟁이 영원하지 않을 것이라는 확신을 줄 수 없었던 건 그녀의 탓이 아니다.



나의 전쟁은 무엇일까.

나의 영속적인 투쟁은.

나의 반복되는 아픔은.



산책을 하면서 우연히 들었던 누군가의 기도문에서 눈물이 떨어졌다.



사랑받고 싶은 욕망에서 저를 구원하소서.

사랑받고 싶은 욕망에서 저를 구원하소서.

사랑받고 싶은 욕망에서 저를 구원하소서.



후에 찾아본 그 기도문은 메리 델빌 추기경의 <겸손의 기도문>이었다.



존경받고 싶은 욕망에서 저를 해방하소서.


사랑받고 싶은 욕망에서

칭찬받고 싶은 욕망에서

인기를 얻고 싶은 욕망에서

대우받고 싶은 욕망에서

인정받고 싶은 욕망에서

저를 해방하소서.


천대받을까 두려워하는 마음에서

업신여김 받을까 두려워하는 마음에서

잊혀질까 두려워하는 마음에서

조롱당할까 두려워하는 마음에서

의심받을까 두려워하는 마음에서

저를 해방하소서.


모든 이에게

모든 것이 되기 위해서

저를 해방하소서.




소녀의 고통은 어떤 욕망에 기인했을까.



오랜 시간 방치되었던 폭력의 시간들 속에서 그녀에게 가장 필요했던 건 무엇이었을까. 그녀의 욕망은. 그녀의 욕구는. 그녀의 몸과 마음과 정신은 어떤 욕망이 좌절되어 죽음을 선택할 수 밖에 없었을까.



나는 그녀와 무엇이 다른가.

또 같은가.




아아.

사랑받고 싶은 욕망에서 저를 구원하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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