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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지인 Apr 07. 2023

죽음, 삶, 자살에 대하여.

책 <기타노 다케시의 생각노트> ★★★☆

일본의 유명 배우이자 작가, 감독이자 교수로도 재직 중인 기타노 다케시의 <기타노 다케시의 생각노트>를 드디어 다 읽었다. 가장 인상적인 부분은 저자가 가지고 있던 죽음에 대한 변천사. 그래서 이 부분만 중점으로 정리해보려고 한다. 그밖에 인상적인 부분은 공대생 출신이라 지금도 수학 문제를 풀며 스트레스를 푼다는 것, 그리고 연예인으로 활동하기 전에 택시 기사 등 다양한 직업을 전전했다는 것.



가장 인상적인 죽음 부분만 정리.


1) 죽음에 대한 공포

2) 죽다 살아난 오토바이 사고

3) 사고 이후 생긴 트라우마 -> 죽음에 대한 공포 및 삶에 대한 집착도 소멸 -> 언제 죽어도 좋다고 생각

4) 트라우마 이유 추측 -> 설마 나는 아직도 죽음이 두려운가? 동료의 자살, 그리고 왕따 당했다고 죽는 어린 친구들에 대해





1) 죽음에 대한 공포


"죽는 것이 무서워 미칠 것만 같던 시기가 있었다."

"고등학생 때부터 대학생 때까지는 매일 죽음에 대해 생각하고, 죽는 것을 겁내며 살았다."


죽음이라는 것을 맨 처음 경험한 건 중학생 때. 야구부 동료가 덤프 트럭에 치여 죽었는데 어제까지만 해도 같이 놀고 이야기하던 친구가 하루 아침에 사라지고, 남은 사람들이 너무나도 간단하게 그 친구를 잊는 걸 보고 죽으면 "그저 없어질 뿐"이라는 것을 깨닫고 죽음에 대 공포 시작.


"사라져버리는 것. 천국도 지옥도 없다. 죽은 사람은 살아있는 사람 기억에서 너무나 간단히 지워진다."


"살았었구나 하는 기억도 뭣도 없이 그저 이 세상에서 사라지는 것이 무서웠다. 즐거운 감정이라고 해서 반드시 즐거운 기억만을 이야기하는 것은 아니다. 설령 잔혹하고 괴로운 체험이라 해도 자기가 살아 있다는 것을 생생하게 맛 볼 수 있다면 그걸로 충분하다. 그래서 나는 해양학자를 동경했다. 수백 기압의 어두운 바닷속으로 내려가 해저 화산과 심해에 사는 박테리아를 연구하는 과학자를 동경했다. 말하자면 현세의 이익과는 무관한 순수 학문을 위해 자신의 생명을 위험에 내던지는 삶을 동경한 것이다. 그런 식의 삶이라면 이 세상을 살고 있다는 증거를 마음껏 실감할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어쩌면 그 무렵의 내가 두려워했던 것은 죽음 그 자체라기보다는, 자신의 생각대로 살아가지 못하는 답답하고 지루한 인생이었는지도 모른다."


여기서 다케시는 죽음에 대한 공포를 극복하기 위해 "자살"을 선택하는데, 바로 동경하던 연예인의 삶을 살겠다고 어머니에게 선포한 것.


"그 죽음의 공포를 극복하기 위해 내가 선택한 길은 일종의 자살이었다."


공대를 졸업하고 대기업에 취직하는 게 당연한 수순으로 생각하는 나를 키워준 어머니에게 (아버지는 페인트공. 살아생전 제대로 된 대화를 나눠 본적 없음. 늘 일터와 술집뿐. 손찌검.) 대학을 그만두겠다고 말하는 건 일종의 자살이었다고 회고.


"그렇지만 새장 나에서 자란 새는 자신이 자유롭지 못하다고 생각하지 않듯이, 나도 내가 묶여 있다고 생각한 적은 없었다. 어머니 역시 그런 생각은 눈곱만치도 하지 않으셨을 것이다. 그것이 나를 위한 길이라고 굳게 믿고 계셨을테니."





2) 죽다 살아난 오토바이 사고



오토바이 사고로 얼굴이 함몰되었는데(유명인인데도 신분증을 확인하기 전까지 누군지 모를 정도로 심각) 흉터가 없을 정도로 수술은 잘 되었지만 기억 일부분이 사라졌다. 하루 이틀 뒤 의식 찾음. 사고가 난 이유는 술집 드나드는 모습이 주간지에 찍혀 승용차라서 들킨 거라며 화가 나서 오토바이를 사고 바로 또 술집에 갔는데 - "정신을 차리고보니 온몸에 링거 줄이 달린 채 병원 침대에 누워 있었다. 들은 이야기로는 맞은편 차선을 달리던 택시 기사가 나를 발견하고 구급차를 불렀다고 한다."


"하지만 오토바이를 탄 순간부터 그때까지의 기억이 편집이라도 한 것처럼 싹둑 잘려 나갔다.얼굴은 찢어져서 너덜너덜했다. 함몰된 얼굴 뼈를 복원하기 위해 얼굴의 오른쪽에서 왼쪽으로, 프랑켄슈타인의 목에 박힌 말뚝처럼 티탄 합금을 박아 넣었다."


그런데 재미있게도 본인은 사고 전보다 기분이 더 좋아졌음을 느꼈다고 한다. 아마도 언제라도 죽을 수 있게 된 걸 경험하니 반대로 죽음에 대한 공포가 사라진 게 아닐까 싶다. 입원 56일째에 카메라 앞에 섰는데 "그런 몸으로 기자회견을 자청한 것은 세상을 시끄럽게 한 데 대해 한시라도 빨리 사죄를 하고 싶어서졌지만, 한편으로는 일그러진 얼굴을 어서 빨리 사람들 앞에 드러내고 싶은 생각이 더 컸다. 어떠냐, 이렇게 되었도다. 보아라. 시비를 걸 생각은 전혀 없었지만, 또 누군가에게 몰래 찍히기 전에 스스로 당당하게 보이고 싶었다."






3) 사고 이후 생긴 트라우마 -> 죽음에 대한 공포 및 삶에 대한 집착도 소멸 -> 언제 죽어도 좋다고 생각


"그리고 나서 살아있다는 것에 그다지 집착하지 않게 되었다. 그저 담담하게 언제 죽어도 좋다고 생각한다. 그런 의미에서는, 사는 것에 별로 흥미가 없다고 밖에 말할 수 없다."


"그런데 살아가는데 흥미가 없어져도 정신적 공포는 지워지지 않는다."


"특히 잠자리에 드는 밤에 아직 그 병실이면 어쩌지. 라는 생각. 자동차를 타고 가다가 뜬금없이 '위험해 왼쪽에서 차가 오잖아'하는."


"아무래도 12년 전 그날 밤 오토바이를 탄 뒤의 기억이 지워진 것과 관계가 있는 것 같다. 엉성하게 연결된 영화처럼, 눈을 떠보니 그냥 침대에 묶여 있더라는 경험이 트라우마로 남은 것이다. 마음의 상처니 뭐니 하는 간지러운 표현은 하고 싶지 않지만, 이 트라우마는 죽을 때까지 사라지지 않을 거라고 생각한다."




4) 트라우마 이유 추측 -> 설마 나는 아직도 죽음이 두려운가? 동료의 자살, 그리고 왕따 당했다고 죽는 어린 친구들에 대해


"나는 아직도 죽음을 두려워하는 걸까? 죽음 그 자체가 아니라 죽음에 이르기까지의 고통과 괴로움을 두려워하는 것이라고 생각하지만. 정신은 두려워하지 않아도 육체는 본능적으로 죽음에서 벗어나려 하기 마련이다. 극심한 고통을 느끼면 호흡이 저절로 거칠어지듯이. 그건 그것대로 하나의 공포다."


"미시마 유키오(1925~1970, 소설가)씨는 보디빌딩에 검도에 권투까지 여러가지 스포츠를 섭렵한 사람이었다. 하지만 들은 바에 따르면 그의 움직임은 언제가 꼭두각시 인형처럼 어색한 느낌이 들었다고 한다. 미시마 씨 자신도 그것을 깨닫고 있지 않았을까? 자신에게는 운동신경이 없다는 것을. 그리고 이런 점들이 그의 미의식에 심한 상처를 입혔을 것이다. 머리로 생각하는 것보다 육체로 행동하는 것을 높이 평가하던 사람에게 이는 상당히 콤플렉스였을 것이다. 뜬금없지만 그의 자결도 이와 관계가 있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요컨대 그의 자결에는 육체에 대한 정신의 보복이라는 의미가 있지 않을까. 몸은 어떤 상태를 맞든 살아가려고 한다. 자결은 정신이 몸의 그 강한 본능을 굴복시키려는 것이다. 육체적 운동을 컨트롤하는 것은 정신이지만, 그 궁극은 머리로 육체를 죽이는 것이다. 미시마 씨가 한 행동도 바로 그것이다. 죽음이라는 궁극의 명령을 따르게 함으로써 몸을 굴복시킨 게 아닐까. 그와 반대로 나는 머리가 죽음을 납득한 상태에서도, 육체가 그에 반발해 죽음에서 벗어나려고 한 것 간다."


플러스.


"왕따를 당해 자살하는 아이들이 있다는 이야기를 종종 듣는다. 왕따가 어쩌고 저쩌고 이야기하기 전에, 진짜 문제는 왕따를 당하면 살 수 없다고 생각하는 어린이가 늘어났다는 것이다. 아이들은 학교에서 같은 반 친구들의 무리에 속하고 속하지 못하고의 문제를 죽고 사는 것보다 중요하게 느낀다는 이야기다. 어떤 어른도 아이들에게 '사람은 친구 따위 없어도 살아갈 수 있다'고는 말해주지 않는다. 현대 사회에서는 개인과 개성을 중요시한다고 말은 하면서도, 현실에서는 정반대의 일이 일어나고 있다."







기타노 다케시. 1947년 도쿄 페인트공 아들. 사남매 중 막내. 대학교 공학부 중퇴. 다방 보이, 백화점 점원, 택시 기사 등 여러 아르바이트를 하다가 아사쿠사의 극장 '프랑스좌'의 엘리베이터 보이로 일하면서 비트 기요시를 만나 '투 비트'를 결성, '비트 다케시'라는 예명으로 1974년에 데뷔. '투 비트'의 성공으로 1980년 후지TV에 출연, 성공. 이후 오시마 나기사 감독 영화에 출연하며 영화 배우로도 활동하기 시작, 영화 감독으로도 커리어 시작. 1994년 오토바이 사고로 죽다 살아남 (이 책은 일본에서는 2007년 출판, 우리나라에서는 2009년) 1996년에 영화 <키즈 리턴>을 발표하고 일곱 번째 작품인 <하나비>로 베니스 영화제 황금사자상 수상. 영화배우, 영화 감독, 방송인, 작가로 활동하며 현재 됴쿄예술대학 대학원 영상연구과 교수로 재직 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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