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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지인 Apr 12. 2023

26. 결혼

몰랐다. 

1.

결혼에 대한 생각이 없었다. 비혼주의자는 아닌데, 그냥 진심으로 아무 생각이 없었다. 그래서 혼기라는 것도 몰랐다. 



2.

이 경우 사람들은 부모님이 뭐라 안하시냐, 주변 친구들이 가는데 비교 안되냐라고 하는데 - 일단 부모님은 대한민국의 평균적인 부모같은 잔소리를 일체 안하는 걸 자랑으로 여기는 분들이라 하신 적이 없고, 친구들은 신기하게도 딱 50%만 결혼했고, 개인적으로는, 믿을 사람이 있을지 모르겠지만 - 진짜 결혼이라는 것 자체에 신경 쓸 여유가 없었다. 대학을 가겠다는 생각이 있어야 공부를 하든 학원을 가든 편입을 하는 것처럼, 결혼을 염두해야 연애를 하고 만남을 계획하고 그래서 어디 가입도 하고 그럴텐데, 나는 정말 연애니 결혼이니 이런 걸 우선 순위에 둘 만큼 여유가 없었다. 일단 내 건강을 챙기는 게 우선이었다. 건강이 무너지면서 같이 무너진 마음을 챙기는 게 두번째였고. 그래서 자연스레 연애니 결혼이니를 생각한 적이 오랜 시간 없었다.



3.

게다가 당시 결혼에 대해 그다지 긍정적인 인식도 없었다. 맞아. 이건 인정해야겠다. 대학은 꼭 가야해, 석사 정도는 해야지(나중에 보니 돈 낭비 시간낭비였지만)했는데 결혼은 글쎄, 좋은 사람 있음 하지 뭐 딱 이 정도였지 진지하게 반드시 죽기 전에 해야 하는 일이라고 생각해 본 적이 없었다. 스케일을 잡자면 그래, 부정적인 쪽이 더 강했던 것 같다. 아마 그 부분도 결혼을 우선 순위에 두지 않은 이유이기도 할 것이다. 그래서 그런지 누군가 나에게 "왜 결혼 안해 너의 부모는 뭐 하는 사람들이냐"라고 하는 말을 들어도 전혀 타격을 받지 않았다. 내가 결혼을 안했다는 사실이 열등하다고 느끼지 않으니 그런 말들이 나를 건드리지 않았다.



4.

타격은 의외의 곳에서 왔다. 아주 아주 예쁜, 그리고 말도 싹싹하게 하는 여자를 최근에 알게 됐다. 31살인가, 32살인가 그렇다. 딱 학교에서 반에서 무조건 5등 안에 드는, 운동도 공부도 잘하고 인기도 많고 선생님들한테 사랑도 받는 그런 만화같은 여자였다. 분명 회사 생활도 잘 하겠지. 그런데 우연히 이 여자가 최근에 만나기 시작한 남자친구 이야기를 하면서(결국 헤어졌다) 결혼 이야기를 하는데 - 자신은 너무 결혼하고 싶은데 남자는 이러저러해서 결혼을 해야할지 말아야 할지 모르겠다 하면서 자신이 생각하는 결혼 안/못한 사람들에 대한 말을 하는데 - 저렇게 예쁜 사람 입에서 저런 말들이 나오다니 - 그리고 그게 사람들이 생각하는 결혼 안한 사람들에 대한 정의라는 걸 듣자니 놀라버리고 말았다. 아. 내가 그렇게 보여지고 있구나. 내가 결혼을 안했기 때문에. 아. 차라리 내가 레즈비언이라 결혼을 안한거라고 사람들한테 말하는 게 더 낫다 싶을 정도로 그 기준이 가혹하다 싶었다. 남이라고 말 함부로 하는구나. 모두 다 저런 건 아닐텐데. 그럼 이정재나 정우성이나 김혜수나 이런 사람들은 뭔데, 네가 지금 말하는 기준이랑 전혀 다르잖아 - 라고 말하려다가 말았다. 내 생각을 나눌 만큼 친한 사이도 아니고, 굳이 이 자리에서 말을 섞고 싶지도 않고. (아 그리고 참고로 저는 남자가 좋습니다.)



5.

지금은 결혼에 대해서 좋게도 나쁘게도 생각하지 않는다. 멋진 일이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이게 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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