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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지인 Apr 29. 2023

63. 복수

생명, 복수, 사랑을 향한 소원.

* 이 글은 2023년 1월에 쓴 글입니다.




여기 소원을 이루는 세 이야기가 있다. 하나는 생명을 위해, 하나는 복수를 위해, 하나는 사랑을 위해. 모두 그 누구도 아닌 자기 자신만을 위해 소원을 이루려고 한다.



이 중 두 이야기는 자신의 소원을 스스로 놓아 버린다. 그래서 아이러니하게도 그들이 그토록 원하던 구원과 평화를 얻는데 성공한다. 그러나 자신에게 웃는 것조차 허락하지 않는 복수의 주인공은 끝까지 자신의 소원을 밀고 나간다. 그 소원의 끝에 본인이 다칠거라는 걸 모르지 않을텐데도, 나도 다치겠지만 너는 그 이상으로 다치게 만들 것이라는 각오 하나로. 그래서 이 소원은 슬프다. 본인의 파멸을 인지하고 진행하는 소원이기에.



한 명은 연합뉴스 PD가 되었다는 소식을 들었다. 한 명은 연대 영문과를 졸업하고 외대 통번역대학원을 나와 외무영사직을 패스한 같은 동아리 선배와 결혼했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다른 한 명은 서울대 신소재를 나와 최근 유학을 마치고 돌아왔다는 이야기를 들었고, 다른 한 명은 두산에, 다른 한 명은 넥슨에 다니며 미국으로 파견되었다가 역시 최근 다시 귀국했다고 들었다.



연합뉴스 PD가 되었다는 아이는 아버지가 자살했다. 그리고 그 아이의 어머니는 우리가 다니던 학교 선생님과 바람을 피웠었다. 나의 초, 중, 고 절친이라 할 수 있었던 그 연대 졸업생은, 나의 모든 것을 알았기 때문에 결국 그 모든 것을 이용해 우리 집이 망했을 때 나를 가장 먼저 떠났다. 재미있었던 점은 그녀가 1년 교환 학생으로 중국에 다녀온 거 하나로 외교관인 내 친구에게 자신을 유학파라고 소개하고, 나와 친하다고 말했다는 걸 들었을 때였다. 그녀는 자신의 남편이 끝까지 외무영사직 출신이 아니라 외교관이라 말하고 다녔다. 하지만 현재 그녀의 남편은 새로 들어 온 사무관과 바람이 난 상태다. 서울대 신소재를 나온, 나를 항상 성과 함께 이름 전체를 부르던 그 친구는 어렸을 때 일은 기억나지 않는다며 우린 이제 어른이라면서 "전학 의식"을 치뤘던 10대를 지나 20대에 재회했을 때 나에게 늘 라꾸라꾸와 '몰입'에 대한 대학원 생활 이야기를 해주었다. 자신의 꿈은 교수라고, 그리고 자신은 매너남이라 연구동에서 차를 끌고 나와 매번 픽업하는 걸 늘 자랑으로 여겼다. 현재 그 친구가 귀국하고 어디에서 일하는지 알고 있다. 본인이 원하던 곳과는 매우 거리가 먼 곳이다. 두산에 다니고 있다는 또다른 친구는 남들 다 부러워한다는 결혼을 하느라 지금은 망가진 결혼 생활로 술을 마실 때마다 소리를 지르고 운다. 그래서 더이상 만나지 않는다. 넥슨을 다니고 있는 친구는. 그 친구 어머니에 대한 이야기를 최근 들었다. 여기에 익명으로도 그 친구 어머니에 대한 이야기는 적을 수 없다. 그러나 미안함은 없다.



요즘 복수에 대한 슬픈 이야기들을 많이 들었다. 소원에 대한 말들도. 나는 그런 말을 들을 때 아무 말도 못하고, 안하고, 그냥 듣기만 한다. 조금이라도 위안이 되었으면 하는 마음으로, 당신이 혼자가 아니라는 것을 느끼게 해주고 싶어서, 당신 편이 여기 있다는 것을 알게 해주고 싶어서.



그러나 여전히 화를 내기에는, 복수를 하기에는 시간이 아깝다는 생각에는 변함이 없다. 세상에 좋은 사람들이 너무 많다. 재미난 일들도 많고. 무엇보다 내가 건강하게 살 수 있는 시간만으로도 이렇게 감사한데 복수만을 생각하며 분노하기에는 인생이, 시간이 너무나도 아깝다.



...아마 그들은 자신의 언행에 죄책감을 느끼지 않기 위해 당신을 나쁘다고 말하고 다녔을 것이다. 그래서 당신은 더 억울하고, 이유를 알고 싶고, "진정한 사과"만 있으면 충분하다고 말하는 거겠지. 분노의 힘으로, 복수라는 소원을 원동력 삼아 그렇게 하루하루 힘을 내고 있는 거겠지. 그런데. 그런데요. 세상에는 순리라는 게 분명 존재합니다. 내가 굳이 나설 필요가 없어요. 정말로요.



그러니까 살아요 모두.

최대한 경험하고, 웃고, 즐기고 사랑하면서.



오늘도 최고의 하루가 시작되었습니다 :)





추신:

이동진 평론가가 이런 말을 했죠, 죄책감은 고귀한 인간만 느끼는 거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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