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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지인 Apr 30. 2023

64. 비밀

나의 비밀은 장례식장에서 단 한번도 슬펐던 적이 없었다는 사실이다.


오늘 오랜만에 비가 많이 와서 기분 좋게 산책을 하고 있었는데 문득 어느 비 오는 날 갔었던 장례식장이 떠올랐다. 그리고 그 장례식이 떠오르다보니 자연스레 다른 장례식장도 떠올랐고, 도미노처럼 그 장례식장에 가기 전에 들렀던 병문안들과 자원 봉사 일들이 떠올랐다. 운 적도 거의 없다. 그나마 몇 번 운 경우도 장례식장에서는 없고 모두 병문안을 갔을 때였는데, 주렁주렁 달려있는 링거를 보며 나도 언젠가 저렇게 주렁주렁 매달려 죽겠구나 하는 공포심에 울었던 기억이 난다. 정작 그 자리에 누워 호흡기에 기대 숨 쉬고 있는 사람이 곧 죽을 거라는 사실에는 슬프지 않았다. 안타깝기는 했지만. 집에서 키우던 강아지가 죽었을 때 펑펑 울었던 걸 생각하면 이건 아닌거 같은데 싶기도 하다. 장점이라면 장례식장에서 빠릿빠릿하게 일 할 수 있다는 점. 친족이 죽으면 정신 없는 사람한테 사기 치는 사람들이 그렇게 많다고 하는데, 나는 그럴 일은 없을테니 좋은 점이라고 할 수 있겠지.


이런 성향은 어렸을 때부터 그랬다. 나는 중학생 때 할머니 장례식장에서 땅을 치며 꺼이꺼이 우는 큰엄마에게 "쇼 그만하고 다들 일하는데 좀 거드세요"라고 말한 적이 있다. 이때 큰엄마의 표정이 아직도 기억 난다. 우는 걸 멈추고 눈이 큼지막하게 커져서 나를 쳐다봤는데, 14살짜리가 감히, 라고 큰엄마가 말할 수는 없었던 이유가 주변 모든 어른들이 나의 말에 암묵적 동의를 했을 정도로 큰엄마의 행태는 유명했기 때문이다. 큰엄마는 정말 그때 '쇼'를 했다. 할머니가 죽어야 집에 들어오겠다고 할머니 앞에서 웃으면서, 공격도 못하게 늘 농담처럼 말했는데 그 이유가 매번 명문대 나온 아버지 대학 자금으로 집 땅을 다 팔았다며 큰아빠의 지방대 이유가 능력이 아닌 희생이었다고 말하는 심리와 뿌리가 같았다. 명절 때 큰집에 가도 세뱃돈은 커녕 먹거리조차 단한번도 받은 적이 없다. 그래서인지 몰라도 우리 집은 큰집에 상당한 돈을 매번 지불했는데, 우리 집이 망했을 때도 그 지불은 계속되었으니 아마 망했다는 이야기에 가장 기뻐하던 사람들 중 하나가 큰집이였을 거다. 하지만 당시 12살이었던 나도 충분히 큰엄마의 질투와 분노가 이해가 가기는 했다. 그래 인간은 다 그렇지. 그럴 수 있지. 하지만. 그렇다고 장례식에서 쇼하면 안되지. 다들 지금 밤새고 일하고 있는데, 심지어 14살인 나 조차도.



가끔은 혹, 사람을 싫어하지 않겠다고 너무 노력한 나머지 사람에게 관심이 없어진 것 이상으로 좋아하는 마음조차 사라진 게 아닌가 하는 의구심이 들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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