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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지인 May 01. 2023

2017년과 2022년판 비교(500권 VS 800권)

책<닥치는 대로 끌리는 대로 오직 재미있게>

2017년판은 구매해서 이동진 평론가로부터 친필 사인까지 받았고 (내 첫 사인 요청이었다) 2022년판은 그저께 도서관에서 빌렸다. 5년 만에 읽는데도 역시나 즐겁고 재밌었다. 덧붙여 두 책의 차이점과 내 생각 몇 가지 끄적끄적.


2017년판과 2022년판 차이는 크게 세 가지.


하나는 서문이 일부 수정되었다는 것. (팟캐스트 '이동진의 빨간 책방' 언급 삭제, 3부 만담을 나눈 이다혜 기자에 대한 묘사 변경, 2017년판에는 보유 도서 1만 7천여 권 중에서 추천 500권이었는데 2022년 판에는 2만 3천여 권 중에서 800권으로 추가했다는 언급), 두 번째는 책 끝 부록으로 수록된 추천 도서 500권이 아닌 800권이라는 점, (2017년판에는 큰 포스터도 주었기 때문에 벽에 붙여 놓았었는데 -밑에 사진 있음 - 2022년판은 도서관에서 대여한 거라 포스터를 주었는지는 모르겠다), 마지막 세 번째는 출판사가 바뀌었다. 2017년판은 위즈덤하우스, 2022년판은 예담.



추천 도서 리스트가 좋다. 여기서 내가 읽은 책들은 모두 96권인데 여기서 300권이 더 늘었으니 이거 원... 죽기 전에 저 800권 리스트 다 읽을 수 있으려나. 총 16가지 분류가 있는데 (한국 소설과 시는 1980년 이후, 외국 소설은 1960년 이후) 주제는 다음과 같다. 1)감각과 감정 2)대화와 독백 3)법칙과 체제 4)살아가는 나날 5)시간과 공간 6)악과 부조리 7)언어와 일상 8)역사의 그 순간 9)예술과 예술가 10)우주와 자연 11)이야기와 읽기와 쓰기 12)인간이라는 수수께끼 13)죽음이라는 미스터리 14)외국 소설 15)한국 소설 16)한국 시.





무려 5년 만에 다시 읽는 책인데도 즐거웠다. 다시 읽다 보니 내가 기억하는 부분과 새롭게 메모한 부분이 조금 다르다는 걸 알게 됐다.



일단 책에 대한 마음가짐이나(책을 하대해야 한다는 점, 무조건 많이 그리고 끝까지 읽을 필요는 없다는 점, 책을 고르는 것도 독서의 일부라는 점, 전문성(넓고 깊은 교영)에 대한 이동진 평론가의 정의) 글쓰기에 대한 글들과 박찬욱 감독의 '아님 말고' 가훈 이야기는 여전히 공감했고, 동의했고, 좋았다. 다만 프렉탈 이야기나 전작주의, 다독 다작 다상량과 초병렬 독서법은 어쩐지 당연한 것으로 느껴져 5년 전과 같은 감흥은 없었다.



대신 당시 그냥 지나쳤던 다치바나 다카시 작가의 고양이 빌딩 이야기라든가 한계 효용 체감의 법칙 이야기는 몇 가지 생각거리를 던져 주었다. (아 그리고 바로 <다치바다 다카시의 서재>라는 책을 검색했다) 다시 한번 놀랐던 점은 의외로 욕조에서 독서한다는 부분. 욕조에서 2~3시간 독서라고 알고 있었는데 어제 다시 읽어보니 무려 7~8시간이라고 쓰여 있었다.... 욕조에서 7~8시간이라고?????????



5년만에 읽으면서 가장 인상적이었던 부분은 요약의 중요성과 그 능력. 요약을 잘 할 줄 알아야 그 다음 비평도 비판도 가능하다는 이동진 평론가와 이다혜 기자의 대화로 또 현재 내 요약 실력은 어떤가 생각과 고민, 복기를 하게 되었다.



또 왜 책을 읽어야 하는가라고 묻는다면 저는 자주 '있어 보이니까'라고 농담처럼 답하기도 합니다. 엉뚱하게 들릴지도 모르겠지만 저는 이 이유가 매우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있는 것'이 아니라 '있지 않은 것'을 보이고 싶어 한다는 것은, 어떻게 보면 허영이죠. 요즘 식으로 말하면 허세일까요. 저는 지금이 허영조차도 필요한 시대라고 생각합니다. 자신의 정신의 깊이와 부피가 어느 정도인지 알고 있고 그것을 채우기 위해 노력하는 것. 그래서 영화든 음악이든 책이든 즐기면서 그것으로 자신의 빈 부분을 메우기 위해 적극적으로 노력하는 것.


몸에 안 좋고 정신에 안 좋은 재미일수록 처음부터 재미있어요. 상대적으로 어떤 재미의 단계로 도달하기까지 시간이 많이 걸리거나, 재미라기보다는 고행같고 공부 같은 것일수록 그 단계를 넘어서는 순간 신세계가 열리는 겁니다.


양이 마침내 질로 전환되는 순간.


책을 무조건 많이 읽어야 되는 것은 아닙니다. (...) 더 중요한 것은 어떤 책을 읽느냐라고 생각해요. 책을 어떻게 고르고 읽느냐가 더 중요한거죠.


전문성이란 깊이를 갖추는 것이겠죠. 그런데 깊이의 전제는 넓이입니다. 그 반대는 성립하지 않아요. 넓이의 전제가 깊이는 아니거든요. 그러니까 깊이가 전문성이라면 넓이는 교양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문학을 읽어야 하는 이유를 하나 더 들자면, 문학은 언어를 예민하게 다루기 때문입니다. 언어는 너무나 중요합니다. 보통 언어는 도구라고 생각하지만 저는 도구가 아니라 생각 그 자체라고 말하고 싶어요.


책은 꼭 끝까지 읽지 않아도 됩니다.


독서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재미를 유지하는 것'입니다. 재미있어야 책을 읽을 수 있어요. '목적 독서'는 한계가 분명합니다. 사람은 사실 그렇게 의지가 강하지 않아서 목적만을 위해 행동할 수 없어요. 재미가 있어야 합니다.


제가 굉장히 좋아하는 이야기가 있습니다. 박찬욱 감독의 딸이 중학생이던 시절에 학교에서 가훈이 뭐냐고 묻는 딸에게 박찬욱 감독이 '아님 말고'라고 했다죠. 정말 명쾌하고 좋은 말 아닌가요? '아님 말고'라는 태도를 가지고 있으면 정말 인생이 행복할 수 있어요. 내가 이것을 선택하지 않아도 된다면, '아님 말고'라는 태도만 갖게 되면 다른 사람 앞에서 당당해질 수도 있을 겁니다.


저는 솔직히 책을 좋아하기 시작했을 무렵에 책에 관한 멘토가 없었습니다. 그래서 시행착오를 많이 겪었다고도 할 수 있는데 그것이 저를 상대적으로 강하게 만들기도 했고 시간을 낭비하게도 만들었겠지요.


세상에는 시간이 오래 걸리는 것들이 있습니다. 시간이 오래 걸리는 것들은 대부분 오래 걸리는 시간 자체가 그 핵심입니다.


진화심리학과 역사에 관한 책, 지리에 관한 책을 동시에 읽으면 그것들이 서로 상승작용을 일으키는데 그게 뇌에 자극을 주기에 더 좋은 것 같습니다.


'독서력' 그러니까 책을 읽는 능력이라는 것이 없지는 않습니다. 책을 읽는 데에도 근력과 경험이 필요하고 그것은 습관과 시간으로 길러집니다. 이 독서력을 굳이 그래프로 표현하자면 포물선이 아니라 계단식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러니까 서서히 올라간다기보다는 단계가 있는 거죠. 그리고 단계를 올리는 계기는 어려운 책을 읽어낸 경험일 확률이 높습니다.


책의 위치나 배열을 바꾸면 정신의 배치가 달라지면서 전환이 됩니다. 거듭 이야기하지만 이런 것도 독서의 일부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눈높이에 맞는 세 번째, 네 번째 칸에 어떤 책을 꽂고 제일 아래 칸에 어떤 책을 두는가, 이것은 자기 마음과 선호가 투영된 결과예요.


사실 저는 닥치는 대로, 무턱대고, 끌리는 대로 책을 읽어야 한다고 말합니다. 책을 그렇게 읽어야 한다고 믿습니다. 그렇게 읽다 보면 어느새 좋은 책을 잘 선택하게 됩니다.


물리학에 프랙털이라는 개념이 있는데, 부분이 전체를 반복하는 것을 말합니다. 대표적으로 나뭇잎의 모양, 눈의 결정 이런 것이 그 예인데, 책도 마찬가지입니다.


좀 무책임한 얘기지만 저는 필요한 것은 결국 어떤 식으로든 기억이 난다고 생각해요.


다치바나 다카시의 고양이 빌딩


그래서 저는 가급적 컨디션이 좋을 때 책을 읽어요. 그래야 책이 잘 읽히니까요.


독자로 보면 저는 세상에서 가장 많이 실패한 독자 중 하나라고 생각해요. 1만 권 이상의 책을 내가 내 돈을 내고 샀단 말이에요. 사람이 자기 돈으로 뭘 산다는 것은 괸장히 치열한 경험이에요. 그걸 1만 번 이상 반복했단 말이죠. 저는 책을 너무 많이 잘못 산 결과로 책을 잘 사게 된 사람이거든요. 그 이유는 과거에 너무 많이 실패한 일종의 빅테이터가 나한테 있기 때문에 그런 거예요. (...) 제가 특별한 능력을 타고나서가 아니라 실패를 많이 해봐서 그렇다는 이야기예요.



제가 가지고 있는 몇 안되는 장점 중 하나가 싫증을 덜 느끼는 거예요. 그래서 저는 권태 문제가 중요하거든요. 저는 한번 싫증을 느끼면 못 견뎌요. 그러면 그 관계가 깨져야 해요.


왜 이런 말이 있잖아요. 행복은 강도가 아니고 빈도라고, 저는 전적으로 동의하는 말이에요. 아직 한 번도 안 해본 것들이 있잖아요. 남극에 가보겠다, 죽기 전에 이구아수 폭포를 보고 싶다, 우유니 사막을 방문하고 싶다 이런 것. 한번 보면 죽을 때까지 못 잊을 것 같고. 실제로 가보면 그래요. 그런데 저는 그게 행복이 아니고 쾌락이라고 생각하는 거예요.

저는 쾌락은 일회적이라고, 행복은 반복이라고 생각해요. 쾌락은 크고 강렬한 것, 행복은 반복되는, 소소한 일상에 있는 일들이라고. 그래서 제가 항상 이야기하는 습관론이 나오게 되는데, 행복한 사람은 습관이 좋은 사람인 거예요. 습관이란 걸 생각해보면, 습관이 없으면 사람은 자기동일성이나 안정성이 유지가 안돼요. (...) 우리 삶을 이루는 것 중 상당수는 사실 습관이고, 이 습관이 행복한 사람이 행복한 거예요.


예를 들어 매일매일이 습관으로 뺴곡한데 모처럼 이번 달 말일에 두 시간 정도 여유가 생겼다. 그러니 책을 한번 읽어보자, 그러면 책 읽는 게 행복이 아니라 쾌락인 거예요. 그런데 습관화되어 매일 책 읽는 사람이 있다고 쳐보세요. 저녁 먹기 전까지 30분 정도 시간이 있으면 책을 자동적으로 펼치는 거예요. 그건 행복인 거예요.

똑같이 책을 읽어도 쾌락이 될 수도, 행복이 될 수도 있는 거죠. 다만 쾌락은 지속 불가능하죠.


쾌락은 한계효용 체감의 법칙을 그대로 따르지만 좋은 습관은 안 그래요. 커피를 마시는 습관이 있다고 쳤을 때, 내가 27세 때 4월 25일에 마셨던 커피보다 내가 53세가 되었을 때 1월 7일날 마신 커피가 덜 좋을까요? 같거나, 나중에 마신 커피가 더 좋을 수도 있단 말이에요. 그건 삶 전체를 놓고 볼 때 커피의 한계 효용이 체감되지 않는다는 말이죠. 그러니까 그런 게 저는 행복인 것 같은 거예요. 좋은 인간관계, 좋은 습관, 좋은 책을 읽는 방식, 좋은 시간을 경유하는 방식, 이런 거겠죠.


그럼에도 불구하고 글을 쓸 때 너무 힘들어요. 저는 심지어 문자 메세지 쓰는 것도 싫어요. 문자 메세지를 보내느니 전화를 해요. 말이 편한 거죠. 무너가 남기는 게 싫고. 메일 쓰는 것도 싫어요. 내가 쓴 글이 내가 떠난 후에까지 오래도록 남는 게 싫어요.


욕망은 너무 크고, 능력은 안 되는 게 늘 괴로워요. 시간 관리도 능력에 들어가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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