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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지인 May 01. 2023

극한을 경험한다는 것.

영화 <댄서>와 <위플레쉬>

<댄서>를 보았다.


발레리노였던 세르게이 폴루닌 Sergei Polunin의 다큐 영화다. 우크라이나 출신의 89년생 젊은 아티스트가 왜 고향을 떠나 가족과 흩어진 삶을 살았는지, 어쩌다가 최연소 영국 로열 발레단 수석 무용수 자리를 3년만에 박차고 커리어 최절정의 시기에 영국을 떠나 러시아로 갔는지, 그리고 무슨 이유로 2015년 <Take me to Church> 유트브 영상을 마지막으로 은퇴를 결심하고 부모를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자신의 공연에 초대한 후 발레계를 떠났는지에 대해 세르게이 본인을 포함해 주변 인물들의 인터뷰와 개인적, 공적 영상 기록물을 토대로 상세히 보여준다. 한번 더 보고 싶을 정도로 좋았다. 그리고 이 작품이 다큐가 아닌 픽션이었다면 오히려 보는 내내 마음이 편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왜 춤을 춰야 하지?' '잘하니까'라는 자문자답과 '평범하게 살고 싶다'라고 말하는 세르게이를 보면서 결국 '나는 행복해지고 싶다'고 말하고 싶은 한 불행한 남자를 보았다.


만약 세르게이의 목표가 개인의 부와 명예 그리고 지상 최고의 발레리노 자리였다면, 아니면 그저 순수히 춤과 발레를 좋아해서 무대에 오르는 예술가였다면 오히려 우리나라 발레리나 강수진처럼 늦은 나이까지 계속 발레를 하며 후배를 양성하면서 그 세계에서 행복하게 지냈을 것 같다. 그런데 애초 발레를 시작한 이유가 가족이고 그 가족이 붕괴하자 - 그리고 본인이 아무리 노력해도 해결할 수 있는 일이 아니라는 것을 깨닫고 나자 - 그는 춤을 계속 춰야 하는 의미를 상실했고 그래서 무기력해지고 지쳐갔다.


발레계를 떠나는 건 어쩌면 너무나 당연한 일이었다. 그 위치가 남들이 오르고 싶어하고 질투하고 부러워하는 자리라는 건 의미가 없을 것이다. 애초 그는 경쟁이란 걸 생각하면서 발레를 한 적이 없었을 테니까.




<위플래쉬>가 생각났다.


이 영화는 (감독이 자전적인 이야기를 바탕으로 했다고는 하나 어디까지나) 픽션이다. 주인공 앤드류는 최고의 드러머가 꿈이다. 그게 자신의 유일한 재능이자 구원이라 믿기 때문이다. 세르게이와 반대로 앤드류에게 가족이란 꿈의 종착지가 아닌 목표의 출발선이다.


공개적으로 친척들에게 조롱받는 식사 자리에서 그 자리에 있던 아버지는 아들의 편을 들어주지 않고 오히려 가세해 그를 위축시킨다. 아무렇지 않게 같이 팝콘을 먹으며 영화를 보는 사이좋은 부자같지만 아버지는 또래 친구가 없는 아들의 교우 관계를 걱정하지 않고 그저 방관자 자세를 취할 뿐이다. 엄마는 보이지 않는다. 교수 플랫처가 두려운 이유는 그가 인신공격에 가까운 폭언과 폭행을 해서가 아니라 이 사람이 아니면 내 꿈을 이룰 수 없을 것 같다는 공포감때문이다.


교통사고를 당해 한쪽 팔이 틀어졌는데도 공연에서 드럼을 치겠다며 피 흘리는 앤드류의 모습이 무섭다가도 애처로운 이유는 여기에 있다. 여기서 경쟁은 중요하다. 남을 제쳐야 플랫처 교수의 눈에 들어갈 수 있고 그래야 내가 인정을 받고 내 꿈이 이루어 질 것이고 내가 마침내 구원을 받을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는 똑같은 방법으로 한 유능한 뮤지션을 키워내는 동시에 자살로 몰고 간 전적이 있다. 앤드류가 가는 길은 결코 행복이 아니다.




행복. 우리가 공부를 하는 것도, 돈을 버는 것도, 밥을 먹고 연애하고 음악과 여행을 즐기는 것도 모두 행복하고 행복해지기 위해 하는 것이다.


그런데 행복한 줄 알았고 행복해지기 위한 길인 줄 알았던 그 모든 것이 어느 날 갑자기 무너진다면 나는 무엇을 해야 할까. 세르게이처럼 조연 목록에도 안 올라가 있는 영화에 출연할 것인가 아니면 앤드류처럼 계속 불안한 희망에 매달려야 하는 것일까.


https://www.youtube.com/watch?v=c-tW0CkvdDI


* 2017년에 쓴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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