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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지인 May 02. 2023

주제가 뭔지 모르겠는데 그게 작가 의도라니.

책 <폴리나>


이동진 추천 500권 중 하나라서 읽었는데 책을 덮고 머리 위로 물음표가 뿅뿅뿅 만화처럼 올라왔다. 이게 대체 무슨 스토리지. 뭘 말하려는 거지. 



처음에는 발레 유망주의 험난한 훈련기이자 성공기인 줄 알았다. 영화 <위플래쉬>처럼 예술성 가득한 가스라이팅 스승이 등장하는 데다가 어린이들이 팬티만 입고 발레 오디션 보길래. 그런데 책을 다 읽고 나니 그게 전혀 아니었다. 만화라 금방 읽고 쉽게 쓸 줄 알았는데 오히려 생각 정리에 시간이 필요했다.



정리된 생각을 말하자면 이 책이 말하고자 하는 건 우리 인생이 다 그렇지, 라고나 할까. 인생은 예측불허지만 결국 스스로 답을 찾는 자는 결국 찾게 된다는 것.  그리고 어쩌면 한 사람의 사랑과 행복과 성공이란 그런 것인지도.





<폴리나>는 폴리나 울리노프라는 소녀가 6살 때 발레 아카데미 오디션을 보는 것으로 시작해 다양한 사람, 사건, 장소를 거쳐 "댄서로서 성공한 삶"을 보여주는 연대기다. 그런데 그 과정이 일반적으로 상상했던 것과는 다르다. 어떤 사람들은 이 책을 읽고 나면 그녀가 진정 '성공'했는지에 대해 동의를 안 할 수도 있다. 어쨌든 처음 그녀가 목표로 했던 발레리나가 된 건 아니니까. 



하지만 내가 이 책은 폴리나의 "댄서로서 성공한 삶을 보여주는 연대기"라고 말한 이유는 그녀가 책 말미에, 비록 단순 인터뷰였다 하더라도 드디어 일평생 고민했던 '춤을 추는 이유'에 대해 이제는 알게 되었다고 말을 하고 자신의 첫 번째 스승을 찾아가 관계를 회복하여 스승을 이해하고 화해하는 장면이 나오기 때문이다. 나에게 성공이란 스스로 일평생 갈구하던 답을 찾았을 때와 불가능하다 믿었던 관계 회복으로 찾아온 평화와 구원이기 때문에.  

 


폴리나의 댄스 과정은 우리 인생처럼 예측 불가하다. 



6살 때 팬티만 입고 본 발레 오디션에서 처음에는 가망이 없다는 말을 들었지만 결국 합격하고, 그곳에서 악명 높은 보진스키 선생님을 만난다. 이후 단독 레슨을 받을 정도로 유망주로 점찍어지지만 그 시간을 견디지 못하고 바로 유망 발레단에 발탁되어 아카데미를 제대로 마치지도 않고 발레단에서 들어가 공연과 수업을 병행한다. 여기서 만난 새로운 사람들과 선생님들은 보진스키 선생님을 못 미더워하는데 문제는 이곳에서의 훈련도 폴리나에게는 만족스럽지 않다는 것이다. 발레단에서 폴리나는 진급을 위해 필수로 들어야 하는 수업도 시험도 결국 다 듣지 않고 또래 친구들과 우연히 만난 러시아 발레단을 따라 떠난다. 그리고 잘 지낸다. 얼핏 보면 성공으로도 보인다. 여전히 왜 자신이 춤을 춰야 하는지 모르지만 같은 일을 하는 애인도 생기고, 게다가 같이 듀엣 파트도 있어서 또래 발레리나들보다 앞서 있다. 하지만 그렇게 그곳에서 색다르고도 성공적인 발레 공연을 하던 중 부상을 당하며 발레를 쉬게 되고 곧바로 공연도 남자도 다른 발레리나들에게 다 빼앗기게 된다. 




환승 이별의 충격과 부상의 여파로 다시 고향으로 돌아갈까 고민하던 중, 폴리나는 뜬금없이 아무도 모르는 베를린행 기차를 탄다. 그곳에서 아무데다 들어간 술집에서 (춤만 추느라 한 번도 해 본 적 없는) 아르바이트를 찾던 중 대체 할 줄 아는 게 뭐냐는 가게 주인의 질문에 춤출 줄 안다, 고 하니 저기 저 테이블에 지금 막 연극 공연을 끝낸 청년들이 앉아서 술을 마시고 있는데 쟤네들하고 얘기하다 보면 (같은 예술 계통이니) 춤 추는 아가씨에게 적당한 알바 자리를 알아줄지도 모른다고 말한다. 



폴리나는 그 가게 주인의 말만 듣고 생면부지인 청년들에게 다가가 말을 건다. 같은 예술 계통이라 말이 잘 통했는지 곧이어 합석해서 밥을 먹고 술을 마시고, 연극과 춤에 대해 이야기한다. 그리고 그 청년들 덕분에 그동안 베를린에서 싸구려 유스텔에서 하루하루 버티며 살고 있던 폴리나는 바로 그 청년들 집에 들어가 함께 살면서 다같이 춤과 연극을 접목시킨 공연 준비를 한다. 그리고 이 공연은 세계적인 히트를 친다. 




이제 폴리나는 아주 유명한 댄서가 되었다. 그 청년들도 함께. 그녀는 이제 자신을 발레리나가 아닌 현대 무용가라고 소개하고, 여기저기에 인터뷰를 한다. 공연 준비에 여전히 바쁘다. 그녀는 이제 자신이 왜 춤을 추는지 알 것 같다고 당당하게 인터뷰하는 사람이 되었다.



그녀가 성공했다는 이야기를 듣자 예전에 알았던 사람들이 연락을 한다. 초대를 받고 갔던 곳에는 자신에게 뭐라 했던 발레단 선생님과 친구들, 그리고 환승 이별을 했던 전남친까지 나타나 속을 뒤집어 놓는다. 이 와중에 술을 마시고 오랜 시간 알고 지내던 남자 동료와 불장난을 저지를뻔하다가 그만 둔다. 그리고 자신의 첫 발레 선생님, 보진스키 선생님을 떠올린다. 선생님을 찾아간다. 그리고 사과한다. 



이 책의 마지막은 자신을 혹독하게 가르쳤던 보진스키 선생님이 보낸, 약속을 지키지 않았던 자신의 솔로 공연 연습 영상을 보는 것으로 끝난다. 그 공연은 오래 전 보진스키 선생님이 폴리나에게 제안했던 솔로 공연이었고, 연습 도중 폴리나는 아무 말 없이 보진스키 선생님뿐만 아니라 소속 발레단도 떠나고 몇몇 친구들과 함께 새로운 발레단에 합류해 공연을 했었다. 그리고 그 곳에서 부상을 당하고 애인과 친구로부터 배신도 당하고. 이후 베를린으로 혼자 가서 새로운 사람들과 발레가 아닌, 연극 공연과의 합작으로 세계적으로 유명한 댄서가 되었다. 이후 그녀는 수십 년이 지난 약속을 지키지 않았던 보진스키 선생님을 떠올리며 찾아가 사과를 하며 그때 마무리하지 못했던 공연을 다시 함께 준비하면 어떻겠냐는 질문을 한다. 이 영상은 그에 대한 답이다. 이 이야기는 그렇게 끝난다. 



작가 이름은 바스티앙 비베스, 1984년생이다. 2007년 고블랭 대학 애니메이션 학과를 졸업한 후 친구들과 만화 아틀리에 망자리Manjari를 설립. 이후 유명 만화 출판사 카스테르만에 발탁되어 여기서 새로운 작품들 발간, 이 중 <염소의 맛>으로 2009년 앙굴렘 국제만화 페스티벌에서 올해의 발견 작가상을 수상했고 2011년 영국 가디언지가 뽑은 2011년 7월의 그래픽 노블로 선정됐다.  <폴리나>는 만화작가 최고의 영예인 만화 비평가협회 대상(2011년 12월 5일) 등 수만은 국제상을 수상했다고 한다.



책 마지막에는 작가의 일문일답 인터뷰가 있다.  여기서 작가는 이번 작품에서 일부러 주제 의식을 정하지 않고 썼다고 하는데, 독자들에게 열린 해석을 줄 수 있는 - 그러니까 이처럼 생각거리를 많이 줄 수 있는 작품을 만든 건 고무적이지만 인터뷰를 다 읽고 나니 어딘가 나와는 잘 맞지 않는 사람일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지나치게 폭발적인 감정의 소유자같다고나 할까. 자신의 감정과 감성을 잘 조절하면 이렇게 국제적인 상도 수상하는 작품들이 탄생하지만, 그렇지 않을 때는 어쩐지 페인으로 살 것 같은 인상을 주었다. 루틴이 없는 하루하루를 보낼 것 같은 사람이라는 인상을 주었다. 피곤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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