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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지인 May 06. 2023

용서의 4단계와 감사하기.

책 <수도자처럼 생각하기>

런던 태생으로 명문대를 졸업한 후 뜬금없이 승려되겠다고 3년간 인도에서 진짜 승려로 지내다가 다시 고향으로 돌아온, 희귀한 경력의 소유자 저자 제이 셰티의 팟캐스트는 현재 건강 분야 세계 1위다. https://www.youtube.com/@JayShettyPodcast. 유튜브 팟캐스트 구독자는 100만 명이 넘고(다른 채널은 400만 명이 넘는다) 매주 세계적인 인사를 초대해 1시간 정도 진솔한 이야기를 나눈다. 추천한다.



작년에 나온 책 <수도자처럼 생각하기>가 세계적 베스트셀러가 되었고 우리나라에서도 바로 번역되어 출간되었는데 사실 내가 이 사람을 안 건 최근이다. 우연하게 본 어떤 클립을 통해서였는데 누군가 제이 셰티에게 "사람들이 중요하다고 여기는 가치 중에 당신이 그렇지 않다고 믿는 것은 무엇인가요"라는 질문에 "이해받는 거요"라고 대답한 영상이었다. "예전에는 이해받고 싶었고 공감받고 싶었어요. 이해받고 공감받는 건 중요하죠. 그런데 지금은 그렇지 않아요. 이해받지 못해도 괜찮아요." 개인적으로 여러 가지 생각거리를 주는 답안이었다.  



아 왜냐하면,

나는 경청이 사랑의 가장 적극적인 표현이라 생각했고 그러한 경청을 통해서 얻을 수 있는 게 바로 이해와 존중이라 믿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최근에는 조금 다른 생각을 가지게 되었다. 그래서 그냥 궁금했다. 이 사람은 어떤 시간들을 보냈기에 이제 더 이상 타인의 이해가 중요하지 않다는 가치관을 갖게 되었을까. 이 사람도 나처럼 어떤 경험을 통해서 경청이 물론 사랑의 가장 적극적인 표현이고, 인간관계에서 정말 중요하지만 그게 꼭 이해와 존중으로 이어지는 게 아니라는 걸 깨달은 걸까? 궁금했다. 그래서 그 사람이 쓴 책을 읽어봤다. 책이 의외로 매우 두껍다. 무려 470페이지.



가장 인상적인 부분은 용서와 감사하기였다.


용서는 분노에서 벗어나기 위해 반드시 필요한 일이기에 꼭 해야 하는데, 신기한 건 이 용서를 4가지의 단계로 나누었다는 점이었다.



1단계 - 용서 없음 - 분노 - 무슨 일이 있어도 널 용서하지 않아!

2단계 - 조건부 용서 - 거래 관계 - 사과를 한다면 (오직 그때만) 용서하겠어.

3단계 - 변화의 용서 - 선의 - 나는 너를 용서하고, 아무것도 바라지 않아.

4단계 - 무조건적 용서 - 성인의 경지 - 네가 무슨 짓을 했어도 나는 너를 용서해.



3단계까지는 가능한데 4단계는 불가능하다. 그런데 내가 이 책에서 조금 당황했던 부분은 내가 절대 용서할 수 없을 것 같은 사람을 떠올리며 용서하고, 여기서 더 나아가 그 사람이 잘 되기를 빌어주라고 한 부분이었다.







명상과 호흡 관련 부분도 인상적이다.


호흡 부분은 한번 따라 해봤는데 실제로 효과가 있었다. 코로 4초, 머금고 4초, 입으로 내뱉으면서 4초 그리고 이걸 10번 반복하는 거였는데, 확실히 감정이 조절되고 집중이 잘 되었다. (다른 호흡법들도 많이 나와 있다)



감사하기에 대한 부분을 간단하게 요약하자면,


우리가 억지로라도 감사하기를 해야 하는 이유는 감사가 사람이 가지고 있는 모든 고통을 극복하게 하기 때문이 이라고 한다. 사람은 두 가지 다른 종류의 감정을 느끼기 어려운데 그래서 감사함을 느끼면서 동시에 분노나 질투나 슬픔을 느끼기 힘들다고 한다. 한번 시도해 봤는데 실제로 그랬다.





수도자들은 초연해지기 위해 극단적인 방편을 동원한다.


단식, 묵언, 춥거나 더운 곳에서의 명상, 우리가 이야기한 여러 고행은 우리가 몸에 초연해지게 만든다. 고행은 불편함이 얼마나 마음에 달린 것인지 깨닫게 만들기 때문이다. 승려들이 초연해지기를 시험한 다른 방법 중에 아무것도 지니지 않고 여행하는 것이 있었다. 음식도, 잘 곳도, 돈도 없이 말이다. 우리는 혼자서 모든 것을 해결해야 했고, 정말 적은 것만 가지고 살아갈 수 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우리가 가진 모든 것에 감사하는 마음을 가질 수 있었다. 이 모든 수련은 나 자신을 정신적, 육체적 한계까지 밀어붙이게 만들며 결의와 회복력, 기개를 쌓고 자제력을 키우게 해 주었다.


처음으로 음식이나 물 없이 종일 단식했을 때, 처음 몇 시간 동안 극심하게 배가 고팠다. 단식 기간에는 낮잠을 잘 수 없다. 단식의 목적은 배고픔을 경험하는 것이지, 잠을 통해 회피하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나는 지성을 사용해서 나 자신을 달래야 했다. 배고프다는 생각을 놓아주려면 더 고차원적인 무언가에 온전히 몰입해야 했다.


시간이 지나면서 몸이 뭘 먹을지 생각할 필요도, 식사 준비를 할 필요도, 음식을 먹거나 소화할 필요도 없다 보니 오히려 다른 에너지가 더 많아졌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단식하면 내 몸에 초연해질 뿐만 아니라 몸이 요구하는 것들을 챙기는 데 쓰는 시간도 남게 된다. 먹지 않으면 배고픔, 포만감, 고통과 쾌락, 실패와 성공을 놓아줄 수 있다. 에너지와 관심의 방향을 바꿔 마음에 초점을 맞출 수 있다. 이후 단식에서 나는 그 에너지를 공부, 연구, 메모, 강연 준비 등에 사용하는 습관이 생겼다. 단식은 집중을 방해하는 것들에서 자유로운 창의적인 시간이 되었다.


단식이 끝났을 때 육체적으로 피곤함을 느꼈으나 정신적으로는 더 강해진 기분이었다. 내 몸이 의지하던 무언가 없이 활동을 해보니 마음에 존재하던 한계를 깰 수 있었다. 나는 유연성, 적응력, 상황대처능력이 생겼다. 단식의 경험은 남은 인생 전체에 영향을 미쳤다.


단식은 지성이 주도하는 육체적 도전이다.






단식을 비롯해 수도자들이 사용하는 여러 금욕의 수단은 우리가 생각보다 힘든 일도 견딜 수 있다는 사실, 자제력과 결심을 통해 오감의 요구를 극복할 수 있다는 사실을 일깨워준다.




소쿠신부츠란 일본에서 승려가 솔잎, 나무껍질, 송진만을 먹다가 이후 음식과 물을 포기하고 계속 주문을 외다 결국은 자신의 몸을 석화시키는, 즉 스스로 미라가 되는 것을 일컫는다.


솔잎만 먹거나 그러겠다고 맹세해야만 한계를 탐구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불가능을 이룰 수 없게 우리를 가로막는 것은 불가능하다는 믿음 자체인 경우가 많다. 1850년(트랙의 길이가 정확히 측정된 경기장이 처음으로 만들어진 해) 이후 1954년까지 1마일 달리기의 기록은 4분의 벽을 깨지 못했다. 아무도 이 벽을 깨지 못했기 때문에 할 수 없는 일이라고 여겨졌다. 그러다가 1954년 영국의 올림픽 출전 선수 로저 배니스터 Roger Bannister가 그 일을 해냈다. 그는 1마일을 3분 59초 4에 뛰며 최초로 4분의 벽을 깼다. 이후 달리기 선수들은 훨씬 빠른 속도로 기록을 경신했다. 한계가 없다는 걸 알게 되자 사람들은 점점 한계를 밀어붙였다.





초연해지는 방법


'세상에서 가장 행복한 사람' 마티유 리카르는 우리가 내면의 평화를 하나의 기술처럼 개발해야 한다고 했다. "슬픔이나 부정적 생각을 곱씹으면 슬픔과 부정적 생각이 강화됩니다. 반면에 연민과 기쁨, 내면의 평화를 계발하면 일종의 회복력이 강화되어서 삶을 자신 있게 마주할 수 있지요." 어떻게 해야 그런 기술을 개발할 수 있냐고 물었더니 그는 이렇게 말했다. "뇌를 훈련해야 합니다. 바깥세상을 행복이나 비참함으로 번역하는 건 결국 내 마음이니까요."


좋은 소식은, 마음의 주파수를 맞추는 연습은 하면 할수록 노력이 덜 든다는 점이다. 운동을 규칙적으로 했을 때 근육이 튼튼해지는 것처럼 이 기술도 점점 더 튼튼하고 안정적으로 바뀐다.






핵심은 정체성에 만족하는 사람은 내 가치를 남에게 증명할 필요가 없다는 사실이다.


당신과 당신의 페르소나의 차이를 숙고해보고 싶다면 혼자 있을 때, 당신을 비난할 사람이 없고 당신이 멋진 인상을 남기고 싶은 사람도 없을 때, 당신이 내리는 선택들을 생각해 보라. 명상할지 넷플릭스를 볼지, 낮잠을 잘지 달리기를 하러 갈지, 운동복을 입을지 명품 옷을 입을지, 선택은 오직 당신만이 알고 있다.


아무도 보고 있지 않을 때의 내가 진짜 나다.






스스로 자존심을 깨고 나오지 못하면 삶이 대신 그 자존심을 깨줄 것이다.






나는 깜짝 놀랐다. 나는 그가 이렇게 빨리 그리고 단정적으로, 어느 한쪽으로 결론을 내릴 줄은 몰랐다. 그가 나를 낙오자로 보지 않는다는 것을 분명히 알 수 있었다. 그런데도 스스로 그런 생각이 드는 것은 어쩔 수 없었다. 나는 실패했고, 스승님은 이제 나와 헤어지려 하는구나. 마치 애인에게 이런 말을 듣는 기분이었다. "당신 대문이 아니야. 나 때문이야. 도저히 안 될 것 같아."


자존심은 내가 만약 실패한다면 그들이 날 어떻게 생각할지를 걱정했다.






집을 떠날 때 나는 내가 세상을 바꿀지 알았다. 다시 런던에 돌아오니 내가 뭘 했는지 아는 사람도, 그 가치를 이해하는 사람도 없었다. (...) 가장 큰 꿈이 파괴되었고, 자존심에 큰 타격을 입은 게 느껴졌다. 내 인생에서 가장 힘들고, 창피하고, 참담한 경험이었다. 그리고 가장 중요한 경험 중 하나였다.


스님들은 더 훌륭할 수 없을 만큼 나와 내 결정을 응원해 주었으나 아슈람을 떠난 일은 나의 정체성과 내가 하는 일에 대한 믿음을 송두리째 흔들었다. 내 세상이 흔들리고 있었다. 자존감이 추락했다. 자존감이 낮다는 것은 뒤집어서 말하면 자존심이 그만큼 부풀러져 있었다는 뜻이다. 내가 세상 전부가 아니라면 나는 아무것도 아닌 존재다. 고귀한 의도와 깊은 영성을 가진 그 남자가 아니라면 나는 그냥 낙오자였다. 내가 위대하지 않다면 나는 끔찍한 게 틀림없다. 양극단은 모두 문제가 된다. 종종 부풀려진 자아가 스스로를 어떻게 생각했는지 알려면 쪼그라든 자아가 필요하다. 나는 겸손을 배웠다.






"명상에 관해서 들어본 적 있으십니까? 저희가 얼마든지 가르쳐드리고 싶은데요."


남자는 이렇게 말했다. "살면서 할 게 고작 그거밖에 없었소?"


내 자존심에 불이 붙었다. 나는 이렇게 말하고 싶었다. '나는 바보가 아니에요. 똑똑한 사람이라고요! 명문대를 나왔어요! 억대 연봉을 받을 수도 있었고요. 이 일을 할 필요가 없었어요. 내가 선택한 거예요!' 나는 정말 이 남자를 바로잡아 주고 싶었다.


그렇지만 나는 이렇게 말했다. "멋진 하루 보내시길 바랍니다. 명상하는 법을 알고 싶다면 다시 찾아주세요."


나는 내 자존심이 반응하는 것을 느꼈다. 눈치는 챘지만 받아주지는 않았다. 자존심을 억제한다는 것의 실제는 바로 이런 것이다. 자존심은 사라지지 않는다. 하지만 자존심을 관찰할 수 있고, 자존심이 나에게 미치는 영향력을 제한할 수 있다.






나는 마치 직업이 있는 사람처럼 매일 옷을 입기 시작했다. 시간의 대부분을 도서관에서 보내며 자기 계발, 비즈니스, 기술 등 광범위한 분야의 책을 읽었다. 나는 겸손을 되찾았고 삶을 공부하는 학생으로 돌아갔다. 세상에 다시 돌아갈 수 있는 효과적인 방법이었다.






피해자가 되는 것은 자존심이 뒤집힌 것이다. 최악의 일들이 나에게 일어난다고 믿고, 가장 나쁜 카드를 받았다고 생각한다. 실패했다면 피해자가 되었다고 생각하지 말고, 내가 떠내려가지 않게 나를 붙잡아주는 겸손이라는 닻이 내려졌다고 생각하라. 그리고 자문해 보라. '뭘 하면 자신감이 다시 채워질까?' 자신감은 내가 통제할 수 없는 외부 요소에서 나오는 것이 아니다.






목표에 도달했다고 느끼는 순간 여정은 다시 시작된다. 이 패러독스는 다양한 곳에 적용된다.






감사의 이로움


감사하는 마음이 실제로 얼마나 도움을 주는지 측정할 수 있다. 믿기 힘들겠지만 사실이다. 감사는 정신 건강, 자각, 인간관계, 만족감을 증진하는 데 관계가 있다.


과학자들이 감사의 효용을 측정하려고 사용한 방법 중에 사람들을 두 집단으로 나누어 일기를 쓰게 한 방법이 있다. 첫 번째 집단에는 감사함을 느낀 것들을 기록하게 하고, 두 번째 집단에는 귀찮거나 짜증 났던 것들을 기록하게 했다. 감사를 기록한 집단은 저녁이 되었을 때 스트레스 수준이 더 낮았다. 또 다른 연구에서는 너무 많은 생각과 걱정으로 머릿속이 복잡하다고 토로하는 대학생들에게 잠들기 전 15분 동안 감사하는 것들을 목록으로 작성하게 했다. 감사 일기는 학생들의 복잡한 생각을 줄여주고 숙면을 도왔다.





감사는 모든 사람이 가지고 있는 응어리와 고통을 극복하게 한다. 질투와 감사하는 마음을 동시에 느끼려고 해 보라. 잘 상상이 안 될 것이다. 감사하는 마음이 있으면 다른 감정은 밀고 들어오지 못한다.


UCLA의 신경학자 앨릭스 코브에 따르면, 실제로 우리는 긍정적 감정과 부정적 감정에 동시에 집중할 수는 없다고 한다. 감사하는 마음을 느낄 때 뇌는 도파민(보상을 담당하는 화학물질)을 분비하고, 우리는 그 감정을 다시 느끼고 싶어 지므로 감사하는 습관이 생긴다. 코브는 이렇게 말한다. "모든 것을 감사할 대상으로 보면 뇌는 감사할 것을 더 많이 찾는다." 말하자면 '선순환'이다.


연구자들은 진짜 트라우마를 극복하는 데 감사하는 마음이 중요한 역할을 한다는 사실을 보여주었다. 2006년에 발표된 한 연구에 따르면, 베트남 전쟁 참전용사 중에서 높은 수준의 감사하는 마음을 가진 사람들은 외상 후스트레스장애를 경험할 확률이 더 낮다고 한다. 이별을 겪었다면, 사랑하는 사람을 잃었다면, 무엇이든 정서적으로 큰 타격을 입었다면, 감사하는 마음이 답이다.


감사하는 마음은 정신뿐만 아니라 신체에도 좋은 영향을 끼친다. 나쁜 감정들은 심장 질환을 비롯해 여러 만성 질환의 전조가 되는 광범위한 염증을 유발하는데, 감사하는 마음이 그런 나쁜 감정들을 차단하기 때문이다.





나는 아버지의 어마어마한 노력과 희생의 산물이었다.






베네딕트회 수사 다비드 슈타인들라스트는 이렇게 말했다.


"사람들은 보통 감사하는 마음이 '고마워요'라고 말하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마치 그게 감사의 가장 중요한 측면인 것처럼 말이다. 그러나 감사하는 마음으로 사는 습관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삶에 대한 믿음이다. ...그런 식으로 사는 것을 나는 '감사하는 삶'이라고 말한다. 그렇게 되면 모든 순간이 선물이기 때문이다. ...그러려면 잠시 멈춰서 이렇게 자문해야 한다. '이 순간은 내게 어떤 기회를 주고 있지?' 그걸 찾아서 그 기회를 활용해야 한다. 전혀 어렵지 않다."






이별을 극복하라


내 마음이 걸린 문제면 무언가를 또렷이 보기가 어려울 수 있다. 한 가지는 분명히 지적하고 넘어가려고 한다. '내가 가진 것에 감사하는 마음을 갖는 것과 내가 마땅히 받아야 할 것보다 못한 것에 안주하는 것은 다르다.'


아직도 어린아이 같은 마음에 귀 기울이고 있다면, 순간적으로 나를 기분 좋게 해 주지만 결코 나에게 이롭지 못한 사람에게 끌린다. 나의 자존감을 다른 사람에게 의지하지 마라. 이 세상에 언어적, 정서적, 육체적 학대를 받아도 되는 사람은 없다. 그럴 바에는 차라리 혼자인 편이 낫다. 나를 학대하고, 뒤에서 마음을 조종하고, 독이 되는 연애 관계를 우정으로 바꿔서도 안된다. 그런 식의 역할 관계는 절대 바뀌지 않는다. 내 말을 믿어도 좋다.


모든 인간관계에는 내가 기대하는 기쁨의 수준과 내가 받아들일 수 있는 고통의 수준을 설정할 기회가 있다. 


쉽지 않다는 것을 안다. 누군가와 좋은 시간을 보낸 적이 있다면, 누군가에게 뭔가를 투자했다면, 나 자신을 상대에게 주었다면, 다시 놓아주기란 정말 어렵다.





이타심은 자아를 치유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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