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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지인 May 10. 2023

중독에서 빠져 나오는 12단계.

영화 <돈 워리> - 실화

실화를 다룬 영화라면 가능한 챙겨보자는 주의라서 이번 영화도 관람했다. 한글 제목은 <돈 워리>인데 원제는 꽤 길다. <Don't worry he won't get far on foot>. 직역하자면 "걱정말아요 그는 (자기 발로는) 멀리 가지 못할테니까", 라는 뜻인데 사고로 하반신 불구가 된 실존 인물 풍자 만화가 존 캘러핸(John Callahan, 1951~2010)의 성격을 그대로 반영한 제목이다. 처음에는 제목이 너무 긴 것 같았는데 영화를 다 보고 나니까 잘 지었다는 생각이 들었다.



영화는 호불호가 갈릴 듯 싶다.

나는 일단 어떤 형태의 중독이든 '중독'이란 걸 경험했거나 하고 있고 거기서 벗어나고 싶어하는 사람이라면 이 영화에 분명 '호'를 표할거라고 본다. 그래서 나도 일단은 '호'.



호불호가 갈릴 것 같다고 한 이유는 - 예를 들어 이런 장면 때문.


하반신 불구가 된 상태에서도 잘 생긴(?) 얼굴과 입담 덕분에 간호사에게 '내 얼굴 위에 앉으라'고 유혹하고 실제로 그게 상상이 아니라 현실로 이어지는 장면을 보면 - 동서양 문화 차이 이전에 이 사람을 대체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지 난감한 기분에 자주 놓이게 된다. 누군가 남긴 영화평처럼 '하반신 마비인 사람도 여자친구가 있는데 나는...'과 같은 허무 섞인 이질감과 불편함이 느껴질지도 모른다.


하지만 개인적으로 나는 오히려 저런 장면들이 주인공의 비범하면서도 대범한 성격을 잘 보여준다고 생각한다. 저런 사람이 대체 어떻게 해서 중증 알코올 중독자가 되었는지, 그리고 어떻게 빠져나오게 되었는지 그 과정을 더 상세하게 보여주는 극적 전개 방식이라고나 할까. 아마 많은 사람들이 알콜 중독에서 벗어나고 극복하는 주인공을 보며 많은 생각을 하게 될 것이다.



오히려 나는 이 영화가 우리가 일반적으로 생각하는 '그래서 그는 역경을 짠! 이겨내서 행복하게 살았습니다' 식의 전개를 하지 않아서 좋았다. 극복 과정에서 영화에서 흔히 나오는 이성간의 사랑이나 헌신적인 우정이나 가족의 사랑을 중독/자학 극복의 주요 배경이자 원동력이라고 설정하지 않은 것도 좋았고.


재차 강조하지만 이 영화는 실화다.  


사실 그렇지 않나. 뜨겁고 진실하며 헌신적인 우정, 사랑 그리고 가족. 물론 이런 사람들이 있는 삶을 사는 사람들도 많겠지만 사실, 그런 인간 관계를 가지지 못한 사람이 더 많지 않나. 염세적이나 시니컬하게 들리라고 하는 소리가 아니다. 단지 현실을 말하고 싶은 것 뿐이다. 권력이라는 건 엄연히 정치뿐만 아니라 한 가족 안에서도 연인 안에서도 분명 존재하는 거고, 친구나 사랑도 시간이 지나면 변하기 마련인데 - 어제의 적이 오늘의 동지가 되기도 하지만 현실은 그 반대가 더 많지 않나. 이 영화는 이처럼 기댈 곳 없는 사람의 중독과 극복을 보여줘서 실화임을 아는데도 불구하고 더 감동적인 측면이 있다.


설령 지금 내가 나열한 이런 '현실적인 관계'가 아닌, 좋은 에너지를 주는 긍정적인 인간관계를 가지고 있는 사람이라고 하더라도 - 하반신 불구라는 극단적인 상황까지 가면 그 아픔을 끝까지 함께 느껴주며 같이 있고 응원해주고 도움을 주는 사람들을 만나기는 쉽지 않다. 사고 당했더니 파혼 당하고 이혼하고 사기 당했다는 이야기들을 심심찮게 들을 수 있는 것도 이 때문일테니까.



호아니가 연기한 존 캘러핸을 보다가 여기서 나온 알콜 중독자 모임의 12단계에 관심이 가서 검색해보았는데 영화에서 나온 부분과 조금 다른 부분이 있기는 하다.



일단 네이버에 검색해서 나온 AA 12단계는 다음과 같다.

https://terms.naver.com/entry.nhn?docId=5677399&cid=62841&categoryId=62841


첫째, 알코올 앞에 무력함을 시인하라. 알코홀릭은 현재 상황에서 삶을 통제할 수 없으며 패배했음을 시인해야 한다.


둘째, 더 큰 힘이 알코홀릭을 회복시킬 것이라는 믿음을 가져라. 더 큰 힘에 의존하겠다고 시인하는 것은 알코홀릭이 삶 속에서 마음을 열고 큰 변화를 받아들일 준비를 하는 데 필수적이다.


셋째, 신의 보호에 대해 신뢰할 것을 약속하라. AA 회원들은 스스로 자신의 집단이 영적이라고 여기지만 직접적으로 특정 종교와 관련된 것은 아니라는 점을 명심해야 한다. 신의 존재를 인정하지만 신에 대한 정의는 사람마다 다르게 내릴 수 있다. 이것은 영적인 존재에 기대기 위한 하나의 일반적인 의무다.


넷째, 스스로 철저하고 두려움 없는 도덕률을 만들라.


다섯째, 일단 약점에 대한 목록이 만들어지면 알코올릭은 이 잘못들을 신과 자기 자신, 타인 앞에서 시인하라.   


여섯째, 알코홀릭은 반드시 ‘신이 성격적 약점들을 제거해 주시도록 사전에 준비해야 한다.’ 이것은 영적인 재성숙의 과정에서 어렵고도 중요한 단계다. 바뀐 태도와 변화에 대한 수용, 개방된 마음가짐을 갖추는 것이 필요하다.   


일곱째, 겸손한 마음으로 우리의 약점을 제거해 주시도록 신에게 간구하라.


여덟째, 해를 끼친 모든 이에 대한 목록을 만들고 그들에게 기꺼이 용서를 구할 준비를 하라.


아홉째, 가능한 어디서든 사람들에게 직접적으로 용서를 구하라. 단, 타인에게 상처를 주지 않는 한에서 실천하라.


열째, 개인적 삶을 목록화하고 빠른 시일 내에 잘못을 시인하고자 노력하라. AA에서 한 번 알코홀릭은 영원한 알코홀릭이며, AA 모임은 단순히 완치를 위한 치료가 아니라 하나의 삶의 방식임을 마음속 깊이 새겨 두어야 한다.


열한째, 신과의 접촉을 위해 기도와 명상을 하라.


열두째, 다른 알코홀릭이 여전히 고통받고 있다는 메세지를 전하라.



영화에서는 위에 언급된 12단계와 조금 다르게 모임에서 리더가 사람들을 가이드하는데, 그 차이점은 다음과 같다.



1.

영화에서는 '신'에 대한 거부감을 가지고 있을 사람을 배려해서 아무 이름이나 대체해서 떠올리며 말하라고 한다. 여차하면 차라리 "Chucky"라고 부르라고 한다.


그러나 분명 자신보다 강하고 건강한 무언가가 자신을 지키고 있고, 가이드하고 있다는 것을 믿으라고 한다. 믿어야 한다고. 이 상황에서 그것마저 믿지 않으면 인생 진짜 쫑난거라면서. (그리고 쫑낼 수 없지 않냐)



2.

물 마시라는 소리를 많이 한다.


본인도 한 때 알콜 중독자였고 ( 이 사람은 영화 첫 등장에서 자기는 바지에 똥을 싸지 않고 아침에 일어나게 되서 행복하다고 말한다) 지금은 중독자 모임의 스폰서 자격으로(돈을 대준다는 그런 스폰서가 아니라 모임을 이끌고  사람들이 모여서 이야기할 때 그 세션을 리드하고. 뭐 이게 중요하지 않을 수도 있는데 나는 물 마시라는 말도 중요하다고 생각해서.



3.

타인에게 미안하다고 (직접적으로 만나서 꼭) 사과하기.


위에 열거한 12단계에서는 타인을 용서하라고 하는데 영화에서는 용서하라는 말보다는 사과하라는 단어를 사용한다. 그리고 나도 이게 더 마음에 든다. 아마 '용서를 구해라'라는 말이 더 강압적으로 들려서 그런 게 아닌가 싶다. 영화에서는 가서 사과하라고 한다. 미안하다고 하라고. 꼭 직접 만나서 말하라고 한다. 만나기 싫다고 하니까 안돼 가서 만나야 해, 하면서 그 때 진심으로 진정으로 진짜 미안하다는 마음이 들어서 미안하다고 사과를 해야 한다고 말한다. 이게 극복 12단계 중 하나라 '무조건' 실행해야 하지만 억지로 의미없는 사과를 할 경우 의미가 없기 때문에 꼭 진심으로 해야 한다고.



4.

자신을 용서하기.


그러니까 타인을 용서하고, 사과하고, 그 다음에도 자기 자신에게도 사과하기. 부모에게 버림받고, 양부모와도 잘 지내지 못했지만, 나를 함부로 대했던 사람들에게 그들에게 입힌 나의 공격에 미안함을 표시하는 동시에 그들을 용서하고 사과하고 난 후 나조차 내 인생을 함부로 대한 나를 용서하기.



나보다 강하고 건강한 무언가가 나를 지지하고 보호해 준다고 믿으면서

나를 함부로 대한 남을 용서하고 또 그들에게 함부로 대한 것도 사과하고

그리고 최종적으로 나 자신을 용서하고 이제는 나를 사랑하며 살아가기.



영화 좋다. 추천.



그리고,

결국 나를 구원하는 것은 나다.







영화: 돈워리 Don't Worry He Won't Get Far on Foot

감독: 구스 산 반트

출연: 호아킨 피닉스, 루니 마라, 조나 힐, 잭 블랙

개봉: 2018년/2019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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