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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지인 May 27. 2023

103. 자기애

오늘은 새벽부터 비가 내려서 평소보다 기분 좋게 눈을 떴다. 오랜만에 빗소리 들으면서 커피 마시며 책을 읽고 싶어서 바로 커피콩을 갈아 뜨거운 물을 내렸는데 - 설거지하겠다고 등을 돌린 순간 툭, 반도 안 내린 커피 물과 필터 속 잔여물이 토사물처럼 쏟아졌다. 일부는 내 맨발에, 종아리에 튀었다. 


일순간 머릿속으로 나, 다쳤나? 아냐 뜨겁긴 하지만 한두 방울만 튀었네. 옷도 젖지 않았고 그릇도 깨지지 않았어. 다행이다. 하고 바로 반으로 뉘어진 필터기를 세우고 걸레를 가져와 바닥과 싱크대를 닦았다. 걸레 2개를 써야 했다. 물을 다시 내리고 커피를 가져와 책을 읽었다. 부엌은 깨끗하고 설거지는 다했다.


순간, 아버지는 어떻게 했을까 상상해 봤다. 분명 욕을 하거나 허허헛, 황당하거나 어이없을 때 내뱉는 그 특유의 웃음소리와 함께 토사물을 치웠겠지. 순간, 어머니는 어떻게 했을까 상상해 봤다. 어머 어머 어머, 이게 뭐야, 엉엉엉 주저앉아 에휴, 에휴, 후우, 에휴를 연발하며 내가 늙었어 힘이 없어, 네가 좀 하지라며 또 울거나 나에게 걸레를 갖고 오라고 하겠지. 그리고 아마 조금은 닦을 것이고, 그 모습을 보는 나는 참지 못하고 내가 대신 치우겠지. 순간, 동생이라면 어떻게 했을까 상상해 봤다. 엇! 에이고~ 라는 외마디만 외치고 아마 나처럼 바로 치웠을 것이다. 


자기애는 참 이상한 순간에 확인된다. 나는 오늘 내가 더 좋아졌다. 


마치 <조제, 호랑이 그리고 물고기들>에서의 마지막 장면처럼, 나에게서 도망친 츠네오를 웃으며 보내주고 하반신이 마비여도 매일 아침 단정히 몸과 마음을 가꾸고 아침 식사를 준비하며 또 쿵, 생선을 다 굽고 의자에서 떨어져 내려와 아침을 먹으러 가는, 성실하고 묵묵히, 담담하게 하루하루를 보내는 조제 같아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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