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는 엄마를 통해서 세상을 본다.
20대에 참 방황을 많이 했다.
일 잘하는 사람으로 보이고 싶지만, 내 생각처럼 성과가 나오지 않을 때, 그 일을 더 잘 해내려고 노력하기보다는 이 일은 나의 적성에 맞지 않고, 분명 어딘가에 내가 잘하는 일이 있을 거라는 꿈을 꾸며, 여기저기 참 많이도 기웃거렸다.
그러면서도 정말 내가 하고 싶은 일이 무엇인지 찾으려고 하지 않고, 그저 남들이 보기에 좋은 일, 돈을 많이 벌 수 있는 있이 있다면, 일 단 도전해 보았다. 내 적성을 고려하지 않은 채 내가 진정으로 원하는 일인지에 숙고 없이 쉽게 뛰어들었기에, 한계에 부딪히면, 그 한계에서 한 걸음 더 나아갈 생각은 하지 못하고, 그저 내 적성에 맞는 일이 아니라고 자기 합리화를 하면서 직업 유목민이 되어 여기저기 기웃거렸다.
나의 적성에 맞는 일을 찾아 여기저기 기웃거린 것은 나에게 다양한 것을 해볼 수 있는 기회를 주었지만, 한계에 부딪힐 때 더 이상의 노력 없이, 그만두었기에 실패 속에서 그것을 나의 자산으로 만들어 내지 못했다. 실패는 그냥 실패로 끝나고 말았다.
이 모든 것은 결국 내가 나 자신을 사랑하지 못해서 일어난 일이다.
남들한테 능력 있는 사람으로 보이고 싶었기에, 잘 못하는 모습은 보여주기 싫었고, 내가 능력이 없다는 것을 알아차린 타인의 시선을 견딜 수 없어, 내가 들통나기 전에 도망치기에 바빴다. 그리고 내가 능력 있는 사람으로 보이게 해 줄 수단을 찾아 여기저기 기웃거렸다.
결혼해서 아이를 낳아 기르다 보니, 내 아이를 이 세상에 가치 있는 사람으로 독립시키고 싶다는 마음이 간절했고, 살면서 실패를 경험할 때 좌절하지 않고, 실패를 자신의 자산으로 쌓아가는 멋진 사람이 되기를 기도하게 되었다.
그런데, 내가 실패를 나의 성장의 발판으로 사용해 본 적이 없는데, 과연 내가 내 아이를 그렇게 키울 수 있을지, 자신이 없었다.
책에서 나오는 좋은 말들을 아무리 줄줄 외우고 이야기해 보았자, 아이가 실제로 그런 사람을 본 적이 없는데, 어떻게 그런 사람으로 성장할 수 있겠는가.
예전에 어떤 동화에 엄마 꽃게가 아이에게 옆으로 걷지 말고 앞으로 걸으라고 말하면서, 본인이 옆으로 걸어가는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는 이야기가 있었다.
내가 나 자신을 사랑하는 법을 모르는데, 어떻게 아이에게 자신을 사랑하라고 가르칠 수 있을지,
원하는 대로 되지 않을 때, 분노하거나 좌절하지 않고, 어떻게 하면 원하는 것을 이룰 수 있을지 고민하고 완주해 본 적이 없는데, 아이가 좌절했을 때 어떻게 조언을 해줄 수 있을지 두려웠다.
그렇게 나는, 아이를 몸도 마음도 행복한 사람으로 기르고 싶어 나부터 행복해지기로 결심했다.
더 이상 적성이 있느니 없느니 고민하거나, 과연 목표를 이룰 수 있을지 걱정하지 않기로 했다.
나는 이룰 때까지 할 것이므로 나는 실패하지 않을 것이다.
그렇게 나를 보며 내 아이는 자라날 것이다.
아이는 엄마를 통해서 세상을 보고,
엄마는 아이를 기준으로 세상을 바라보게 된다.
아이가 세상에 태어날 때 엄마도 새롭게 태어나게 되는 이유가 아닐까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