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인생값으로 받은 내 월급
#일등 신붓감
라떼시절.

초등교사(여)는 일등 신붓감이라는 말이 있었다. 지금도 유효하긴 할 테지만 그때당시만 해도 IMF와 맞물리면서 내 생각에는 굉장히 유능한 여자 엘리트들이 교대에 많이 들어왔다.(나 포함 ^^) 지나서 생각해 보면 신규 때는 많이 힘들었던 것 같다. 아이들은 젊은 선생님을 환대했지만 그건 내가 바라는 환대가 아니었고 학부모들은 은근슬쩍 애 안 낳은 여교사를 무시하였다. 선배교사님들도 교사특유(?)의 교양으로 우리를 반겨주셨지만 "너 가르쳐줄 시간은 없다."라는 메시지를 무의식적으로 느낄 수 있게 하셨다. 어쩌겠는가. 그냥 살아남아야지. 그 당시 주변머리도 없고 붙임성도 없었던 나는 알음알음 통수를 굴려가며 한해 한해 힘겹게 살아갔다. 그러다 결혼을 하게 되었고(이게 정말 중요한 일이었는데 그때의 나는 결혼하면 무조건 더 좋을 거라는 무한 긍정회로가 가동되는 상태였다.) 30살이 되던 그다음 해에 첫째(딸)를 낳게 되었고 그렇게 워킹맘의 세계로 입성하게 되었다.
세상에! 남들은 힘들다는 육아가 나에겐 체질이었다. 아이랑 집에만 있으면 우울해지고 스트레스를 받는다는데 (물론 당연히 그렇다. 힘들다.) 오히려 나는 육아하기 위해 태어난 사람인 것처럼 아이를 먹이고 씻기고 재웠다. 아이가 낮잠을 잘 때면 부지런을 떨며 장을 보고 요리를 하고 세상 다정한 목소리로 책을 읽어주었다. 머리가 나빠질 까봐 티브이도 거의 보여주지 않았고 내 멋대로 몬테소리 육아를 적용시키며 즐거운 육아 생활을 이어나갔다. 하지만 목구멍이 포도청이라고 했던가. 젊었던 나는 육아워킹맘 직무를 똑소리 나게 수행할 수 있을 거라는 부푼 기대를 안고 복직하게 된다.
아이를 낳고 복직한 1년 동안은 뭐든지 할 수 있을 것 같다는 아줌마 자신감이 몸에서 뿜어 나왔다. 그리고 육아할 때는 입지 않았던 사회생활을 위한 의복을 입으면서 그래, 난 예쁜 워킹맘이야 라며 셀프 칭찬을 퍼부으며 살았다. 하지만 그렇게 쉬운 허들이었으면 왜 많은 여성들이 직업을 포기하고 전업맘을 택했겠는가. 나는 서서히 몸으로 체감했다. 초등교사가 일등신붓감이었던 이유는 비교적 수월한 육아휴직 제도와 4시 30분에 퇴근하여 아이를 픽업할 수 있는 근무조건이었다는 사실을.
#월급루팡
솔직히 초등담임이 월급루팡이라는 말은 성립하지 않는다. (내 기준) 1학년은 1학년대로 또 6학년은 6학년대로 담임의 고충이 존재한다. 그리고 일단 매주 22시간(학교마다 선생님들마다 차이가 있다.) 수업을 해야 하므로 월급루팡은 존재할 수가 없다. 수업을 하려면 뭐라도 준비해야 한다. 원기왕성한 아이들을 합법적으로 제어할 수 있는 방법이 수업인데 그 수업이 재미없으면 지루해하고 너무 재밌으면 날뛰기 때문이다.
내가 말한 월급루팡은 담임이 학교 업무는 배제하고 수업만 하는 경우다. 나는 애당초 능력도 되지 않고(다들 나보다 잘나 보였다.) 아는 연줄도 없었던 터 (끌어주는 사람이 여기도 존재해야 한다. 대회에 나가거나 연구회를 조직하거나 그 연줄을 만드는 게 자신의 노력이겠지만) 승진할 생각이 없었다. (사실 내 눈엔 승진하신 분들이 고저스, 나이스해 보이지는 않았다.) 당연히 나 같은 생각을 하는 사람이 일정 부분 존재함으로 자연스럽게 교직에서도 승진의 수요와 공급이 맞춰졌던 게 아닐까? 우리는 수업을 하고 그들은 업무를 한다. 이걸 20:80의 법칙 (상위 20%가 전체 생산의 80%를 해낸다는 법칙. 80:20 법칙(80/20 rule))으로 적용하긴 곤란하다. 일하기 싫은 게 아니고 우리는 가성비의 원칙을 따른 거다. 우리는 우리가 원하는 워라밸을 얻고 당신은 당신들이 원하는 승진을 얻고, 이게 바로 윈윈?
# 문제가 생겼다

그렇게 워라밸을 지키며(솔직히 워라밸이 아니라 육아밸이다 : 난 육아를 위해 존재하는 것처럼 행동했으나 그 당시의 나는 그게 당연하다고 생각했다. 엄마니까. 아이가 나를 원하니까.) 살아오니 세월은 흘러 흘러 아이는 12살이 되었고 나는 늙어버렸다.(하지만 육아는 소중한 겁니다. 아이를 낳는 건 우주를 경험하는 놀라운 일이에요!) 어쩌겠는가. 우리 엄마도 그렇게 했고 엄마의 엄마도 그랬을 테고. 자연의 섭리인 것을. (아이는 자라고 부모는 늙고) 여기까지는 인정하며 넘어갈 수 있다. 아이는 언젠가 독립시키기 위해 보살피는 존재이니까. 자유롭고 당당하게 독립시키는 게 내 육아의 목표였으니까.
그런데 문제가 생겼다.
첫 번째, 학교이동 : 공립학교 교사는 최대 5년을 같은 학교에 근무할 수 있다. 최근에는 유예제도도 생겼지만 통상 5년이면 만기를 채워 다른 학교로 떠나야 한다. 게다가 조금 도시? 지역에 근무한다면 10년 만기 후에 관외로 나갔다 다시 들어와야 한다. 사람은(아... 나만인가?) 눈앞에 닥치지 않으면 남일인 듯 생각하는 습성이 있으므로 나도 그러려니... 될 대로 되려니.. 살았다. 그런데 정작 내가 원하는(우리 집 앞!) 학교에 4번이나 떨어지고 보니 짜증이 스멀스멀 올라왔다. 아니 뭐 치사하게 점수로 사람은 매기냐. (그럼 뭘로
근데 점수 말고 서슬 퍼런 우리가 납득할 수 있는 객관적인 방법이 뭐가 있으랴. 그제야 학교를 이동할 때 얻을 수 있는 점수를 살펴보기 시작했고 종합해 본 결과 "상"을 받는 게 제일 빠른 길이었다. 교육감 상은 1점, 교육장 상은 0.7점. 그리고 다른 방법은 부장이나 전담을 하는 것. 1년에 1점의 점수를 받을 수 있었다. (6개월은 0.5점) 아이고.. 난 이런 것도 모르고 애만 키우고 있었다니. 세상에 바보도 이런 바보가 없다.
두 번째, 성과급 : 학교에 성과급이 들어온 지 오랜 시간이 지났지만 (왜 들어왔냐?) 나갈 생각이 없나 보다. 감히 교육을 1년 단위로 성과를 매긴다고? 아니. 성과급은 어떤 업무를 수행했는지에 대한 결과를 매기고 수치화해서 등급을 나눈다. 여기서도 학생지도로 대회에서 수상하거나 상을 타면 가점을 얻는다. 아니면 사람들이 선호하지 않는 업무나 위원회를 해도 가점을 얻는다. 가뜩이나 박봉인데 성과급까지 낮은 등급 받는다고? 서럽다 서러워.
세 번째, 무시 : 학교 업무를 최소한으로 하면 무시받는 건 당연할까? 지금 생각은 당연한쪽으로 기우는데 그때는 나는 워라밸, 당신들은 승진이라는 이분법에 사로잡혀 있었으므로 나 같은 사람들이 많아야 당신이 승진할 수 있는 거 아닐까?라는 무시무시한 생각을 했었다. 그런데 이게 일리도 있는 게 모든 사람이 리더가 될 수는 없지 않은가. 아무튼 그날도 육아시간을 쓰고 집에 왔는데 그다음 날 부장이 아침에 찾아와 어젯밤 우리 교실 창문을 통해서 졸업생들이 들어와 과자를 가져가려고 했고 자기 교실까지 들어와 태블릿을 가져가려고 했던 게(불발되었지만) cctv에 찍혔다는 이야기를 전했다. 그렇게 도둑맞을 뻔한 교실의 주인인 나를 걱정해 주면 좋으련만 자기 교실까지 침범한 게 열이 올랐는지 갑자기 쉬는 시간에 모두 소집해서 창문잠금의 중요성에 대해서 이야기했다. 선생님이 학생 혼낼 때 딱 그 모습이었다. 기분이 상당히 안 좋았지만 일 못하는 일 안 하는 교사주제에 부장한테 뭐라 하겠는가. (사실 그날은 우리 교실에서 방과 후 수업이 있는 날이었고 내가 육아시간을 쓰고 나가면서 방과 후 선생님께 창문 잠금에 대해서 이야기했는데 그날 한쪽 문이 열려있었나 보다. 몰라. 귀신이 그랬나 보지 뭐. 근데 그게 내 탓인가? 아무리 내 탓이라고 해도 밤에 들어온 애들이 잘못이지 내 잘못이 크다고? 그래 내 탓이라 치자. 근데 부장이 뭔데 혼내지? 처음으로 내가 부장 할까? 부장일이 많이 힘드나?라는 생각이 들었다.) 아무튼 이건 내가 학교에서 업무를 많이 맡고 있었다면 일어나지 않았을 일이다. 진짜.
(내가 예뻐서 질투한 건가!!!!!!!)
#할 수 있는 건 다 해보자

그래서 내가 할 수 있는 건 다 해보자라는 생각이 들었다. 나도 할 수 있어. 해보고 안되면 다시 하고 그래도 안되면 다른 거 하면 되지. 그 시간은 쓸모없는 시간이 아니라 나의 경험이고 자산이 될 거야.라는 생각이 올라왔다. (김미경 tv를 자주 봤을 때다 -_-)
일단 내가 절대 보지 않았던 공문을 살펴봤다. (중요한 일을 맡지 않은 교사에게 공문은 쉽게 오지 않는다. 대신 공람되어 있는 공문은 많았다.) 생각보다 쓸데없는 게 많이 있었고 (시청에서 온 개관식 협조 공문 등) 생각보다 재미있는 대회 공문도 많이 있었다. 그중에는 경력이 있어야 의미가 있는 것들도 있었기에 그냥 job교사인 내가 할 수 있는 것만 살펴보았다.
1. 수업 나눔 교사 : 평교사 가능 (아 물론 선생님들께 나눠줄 무엇가가 있긴 해야 한다. 10년 차 이상이면 다들 뭔가 하나쯤은 다 있지. 그 구슬을 꿰어서 보기 좋게 하는 게 힘들어서 그렇지)
2. 영상공모전 : 라테 첫째 돌잔치 시절. 내가 만든 8분여짜리 감동의 영상이 참석객들의 마음을 훔쳤던 일이 있었지. (근데 어떻게 했는지 기억이 하나도 안 난다??-> 모를 때는 검색!-> 아이고 요즘은 정말 쉬운 무료동영상 편집기가 많이 나왔네?)
3. 지역교육지 원고 : 쓸 내용만 있으면 평교사 가능.
4. 연수 듣기 : 신청해서 들으면 된다. (지식샘터 강추!!!!)
5. 유튜브 개설 : 10년 전부터 하고 싶었던 유튜브. 난 사실 먹방에 옷 코디법 + 출근룩 하고 싶었는데 교사이기에 제약이 너무 많았다. (라고 쓰고 얼굴과 몸매가 안되기에 셀프 검열에서 탈락 + 그리고 밑천이 들지. 이래가지곤 아무도 안 본다!)
하지만 개설했다. 어쩔 수 없이? 감성교실. 교육유튜브. 내 취미가 캘리그래피인데 교과서랑 그림책이랑 관련지어 아이템을 구상해 보았다. 역시나 구독자는 우리 반 아이들 : ) 시대예보의 송길영이 그랬지 않나. 내가 하고 싶은 거 하다가 뜻을 이루지 못해도 어떤가. 그동안 재밌게 살았는데.
맞다. 창작은 너무 재밌다. 영상도 글쓰기도 그림도 음악도. 제일 재밌는 건 내가 만든 걸 남들이 볼 때다. 도파민이 막!!!!!!!!!!!! 역시 수업은 듣는 것보다 하는 게, 유튜브도 보는 것보다 자신이 직접 하는 게 재밌다. 나중에 더 뻔뻔해지면 딸이랑 같이 먹방 하거나 밈영상을 찍고 싶다.
#성과는 있었다.
내가 원했던 (아이와 함께 학교 다니기) 퀘스트를 이루게 되었다. 영상공모대회 0.7점의 공이 컸다. (줄 거면 1점짜리 교육감상을 주지. ^^;;)
0.7점을 모았다.
----다음화에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