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술과 고백
취한 채, 취한 체

김동률의 <취중진담>과 트와이스의 <Alcohol-Free>


성인이 되고서 술은 딱 세 번 마셔봤다.

세 번째로 마셨을 때, 나는 바로 술을 끊기로 마음먹었다.

술이 들어가면, 점점 제정신을 잃고, 무슨 말하는지도 모르겠고, 필름이 끊어져 가는 내 모습이 너무나 싫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우리는 바로 이런 점 때문에 술에 기대곤 한다. 

제정신이 아니라는 핑계로, 무슨 말을 하는지 모른다는 핑계로, 필름이 끊겨 아침이면 다 잊을 거라는 핑계로, 평소 같았으면 할 수 없었을 말을 감히 해보게 되니까.


“그래, 난 취했는지도 몰라. 실수인지도 몰라. 아침이면 까마득히 생각이 안 나. … 

하지만 꼭 오늘밤엔 해야 할 말이 있어. … 술 김에 하는 말이라 생각지는 마.


이젠 고백할게 … 널 사랑해” 

<취중진담> - 김동률


술에 취한 채 하는, 혹은 취한 체하는 사랑 고백. 이 노래의 가사는 낭만 그 자체다.

술에 취해서, 어쩌면 취한 척하면서 마음을 고백하는 것은 세대와 성별을 막론하여 일으키는 사고인 듯하다.


그러나 사실 우리는 모두 알고 있다. 이런 미친 짓을 할 용기가 진짜로 ‘술’ 때문에 생긴 건 아니라는 것을. 술은 핑계일 뿐, 내가 제정신을 잃었다면 그것은 내 눈앞에 앉은 너에게 취해서 그런 것이라는 사실을.


“나는 Alcohol-Free, 근데 취해. 마신 게 하나도 없는데, 너와 있을 때마다 이래.

너는 눈으로 마시는 내 Champagne 내 Wine … I’m drunk in you”

 <Alcohol-Free> - 트와이스


솔직하게 말해보자. 사랑하는 사람과 함께라면 술을 마시지 않아도 이미 제정신은 아니다. 상대를 너무 사랑한다면, 굳이 술은 필요하지 않은 셈이다.


실은 생각해 보면, 술은 백해무익하다고 하지 않던가? 술에 취하면 이런 노래들처럼 로맨틱한 서사는 생길 수 없다. 혀는 꼬이고, 길에 드러누워 입 돌아가고, 평생 남을 흑역사 갱신하기 십상이다. 운전대라도 잡는 순간, 다른 사람의 생명까지 앗아갈 수 있으며 주취폭력으로 뉴스 나오기 딱 좋다. 


반대로 금주를 하면 건강도 좋아지고 돈도 절약할 수 있다. 보통 소주 한 병에 4,000원, 맥주 한 병에 5,000원이니까, 술값만 몇만 원을 넘기는 경우가 부지기수고, 안줏값에, 대리 기사에 다음날 해장국에 등등 합치면 술자리 한 번 나갈 때마다 몇십만 원씩 깨진다. 고백 한번 해보겠다는 핑계로 삼기엔 과한 비용이다.


술은 언제나 든든한 기댈 구석이다. 어쩌면 술을 마시지 않는다면, 내 가슴속 고백은 영원히 전해지지 못할지도 모른다. 하지만, 내일이면 잊어버릴 거라는 핑계, 제정신이 아니었다는 핑계에 기댄 ‘취중진담’은 내 솔직한 감정의 순수함을 바라게 한다. 사실 내가 취하고 싶은 건, 술이 아니라 ‘너’이기에, 나는 결코 술을 입에 대지 않는다. 앞으로도 입에 대지 않을 것이다.


Writer. 대중가요 디깅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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