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재형(3): 코미디로 먹고 사는 게 될까?

웃기는 사람들, 코미디언 정재형 인터뷰

by 혈키

*2편에서 계속됩니다.


우리나라에서 코미디 무대로 돈 버는 게 가능할까?

(깊은 생각에 빠진 재형)아이돌화가 돼야 해. 그 전과는 다르게 코미디언들이 스타가 되는 아이돌화. 말 그대로 ‘와 저 사람 너무 보고 싶어’라는 반응이 나오게 작업을 해야 되는 거지.


결국 스타가 나와야 하는 구나.

그렇지. 스타. 결국에는 스타야. 그런데 유튜브를 하면 양립이 될 수 없는 거 아니에요? 물리적인 시간의 한계가 있잖아요. 또 결론적으로는 성실함이야. 잠 덜 자고 세트(스탠드업에 사용되는 농담의 한 덩어리) 짜고. 정말 너무 하고 싶으면 덜 쉬면서 유튜브랑 무대 다 하는? 그게 다나카잖아. 다나카는 코미디계의 유일한 아이돌이라고 봐.


물론 시간을 많이 들여야지. 콘텐츠 빌드업할 시간도 필요하고, 공연 준비할 시간도 필요하고. 그런데 코미디가 어려운 지점이 또 여기에 있어. 코미디 말고 다른 장르들은 6개월, 1년 준비해서 공연 하나 하는 식이잖아. 기간을 길게 준비해도 하입이나 구매력을 잃지 않으니까. 반대로 코미디는 하입이 없어지기 쉽고 웃기다라는 감정이 상대적으로 가벼운 장르여서 어렵지. 그러다 보니 공연도 콘텐츠처럼 급하게 만들고, 빠르게 소비돼.


그래서 아이돌화 얘기를 하는 거야. 웃긴 것만 가져가는 건 옛날 시대야. 예전에 선배들이 ‘외모 꾸밀 시간에 시바이 하나 더 짜’ 이랬거든. 그만큼 스타성보다는 웃기는 걸 더 중요시하는 거지. 이제는 다른 거 같아. 웃겨서 코미디를 보러 왔다가, ‘저 사람 좋아’로 들어가야 해.


근데 코미디언들이 또 저런 걸 싫어한다? 진짜 웃겨서 웃는 게 아니라, 뭘 하든 웃거나 좋아하는 걸 싫어해. 하지만 이걸 받아들여야 해. 아이돌화가 되는 걸 받아들일 시대가 됐다고 봐. 안 그러면 코미디는 엔터 사회에서 미래가 없어. 지금처럼 쪼그라든 채 계속 유지되겠지. 예능이 코미디라고 인식되면서 순수 코미디는 계속 이 정도로만.


10년 전에도 코미디로 먹고 살려고 했는데

‘코미디로 먹고 살려면 어떡할까’ 얘기 진짜 자주 하잖아요. ‘코미디 헤이븐’ 시작했을 때도 비슷한 생각이었어요?

‘헤이븐’ 시절엔 방향이 다르긴 했어. 마인드가 달랐지. 그때는 오직 코미디였어. 여태 얘기했던 거처럼 구체적인 생각이 없었고 그냥 진짜 오로지 웃길 생각 뿐이었던 거 같아. ‘웃기면 알아줄 거야’하는… 되게 순수한, 아니 순진한 마인드였지.


m_rF5VdJjs4Gw9rB2dAtVaBmOAjJJ1eqyZO-r4dOFcdnx7PBoMOMgDOwIUak0_t8Sz8d4q8psJXJZ92pqdCNTtbx7vBIUoGvJvEJ_U1X09e9Oj2jLIYRuKBGyvNRzuZdh4apV9SFoHYeCJ8OX9HViTaA.jpg '코미디 헤이븐' 공연 당시 사진. 대니초가 공연을 하고 있다.


'코미디 헤이븐'은 2018년에 신논현역 인근에 오픈했던 스탠드업 코미디 클럽이다. 스탠드업 코미디를 하던 코미디언들이 모여서 함께 만들어나갔던 공연장이었지만, 운영은 쉽지 않았다. 당시 스탠드업 코미디가 대중적이지 않았고, 구성원 모두가 공간 운영에 익숙치 않았기 때문이다. 2019년 폐업 이후, 현재는 '서울코미디클럽'이 포지션을 물려받아 이어나가고 있다. 이들의 자취를 기록한 다큐멘터리 'The Mic'에서, 그들의 험난했지만 낭만으로 가득찼던 여정을 확인할 수 있다. 지금은 한국 스탠드업 코미디의 선구자가 된 대니초, 박철현 등의 풋풋한(?) 모습도 담겨져 있다.


지금도 변하지 않은 건 그 당시에도 코미디가 큰 산업이 되길 원했다는 점. 뭐 노래, 영화, 드라마, 연극, 뮤지컬 등등 온갖 장르가 많잖아. 물론 직업군으로 치면 숫자가 적긴 한데, 코미디에 대한 니즈가 적은 건 아니거든. 사람들은 웃긴 걸 좋아하고 소비도 많이 해. 하지만 순수 코미디 시장이 미국이나 일본보다 너무 작다는 거지.


그래서 ‘코미디 헤이븐’ 시작할 때, 그 전에 스탠드업 시작할 때부터 ‘코미디가 돈이 되는 시장이 되면 참 좋겠다’ 마음이 있었어. 시장이 커져야 코미디를 하고 싶은 사람들도 더 많아질 거고, 나라는 사람을 멀리 봤을 때도 오래오래 코미디언으로 살 수 있는 생태계가 될 테니까. 지금은 한 60살, 아니 50살만 돼도 간당간당하잖아.


‘코미디 오래 하고 싶다’는 내 개인적인 바람이고, 그보다 더 크게는 사회가 좀 가벼워졌으면 좋겠어. 코미디 장르로 돈을 많이 벌어서, 사회 내에서 문화적인 영향이 있으면 하는 거야. 사람들 뇌리 속에 ‘이 정도는 농담하고 지낼 수 있지’, ‘웃고 넘어가자’라는 식으로, ‘쿵’했을 때 ‘짝’으로 받아쳐서 ‘쿵짝’하는 행태가 대한민국의 기본 스탠스로 자리잡을 수 있다면 좋겠다는 바람이 있어. 그러면 요즘 사회처럼 맨날 쌈박질하고 난리치는 것도 나아질 거라고 생각하거든.


우리나라는 지금 너무 진지해. 코미디가 없어. 뭐 미국도 그렇고 다른 나라도 완전히 진지함을 버렸다고 볼 수는 없지만, 어쨌든 난 한국에 사니까. 코미디가 어느 정도의 파이를 차지하면 사회 전반적인 분위기가 조금 유해지지 않을까? 이게 내 꿈, 바람이야.


(이)재율이도 비슷한 생각을 하길래, ‘우리나라에서 만담이 언제 자리잡을 거 같냐’고 물어보니까 재율이는 10년 본대요. 이제 시작이라고.

내가 스탠드업 시작한 게 한 10년 됐나? 확인해보니까 형이 2018년 초 쯤 시작했었어요. 그럼 한 7, 8년 됐네. 그때 ‘10년 지나면 뭔가 달라져 있겠지’ 했는데, 10년 지나고 보니까 더 안 좋아진 거 같아(웃음).


아, 하나 된 거는 있다. 스탠드업 맨 처음에 시작했을 때 ‘10년 뒤에 스탠드업으로 먹고 살 수 있는 코미디언들이 나올 수도 있겠다’싶었는데, 지금 대니 형부터 해서 동하 형, 동훈이, 제규 등등. 많진 않아도 몇 명이 먹고 살고는 있잖아 스탠드업으로.


30000884010_500.jpg 스탠드업 코미디언 김동하의 전국투어 포스터.


스낵타운이나 빵송국 등이 이제야 만담으로 돈을 벌기 시작했으니까, 만담도 지금부터 10년 걸려야 자리잡을 거 같네요.

20년.


(웃음)그렇네. 짧네. 지금까지의 한국 스탠드업을 보면.

10년이 생각보다 짧아. 만담도 시작으로 치면 ‘까브라더쇼’가 18년에 시작했으니까 거진 10년 되어서 이제 돈을 벌고 있는 거지. 마치 예전 언더그라운드 인디밴드들, 락 부흥기같은 거라고 생각해. 그런데 이제 우리가 ‘카우치’가 된 느낌도 있고.


아… 그들은 그 정도 영향력이 없었잖아…

카우치’처럼 의도를 갖고 하진 않았지만, 우리의 영향으로 결과적으로 위축이 됐으니까. 냉정하게 봐서. 우리가 코미디 시장을 좀 키우고 있긴 했으나, 5년 더 앞서갈 거를 10년 더 느려지게 했다. 사실 우리가 스타였다고 생각해. 지금은 좀 훅 가버린 스타가 된 느낌이고. 치료를 해야지.


시간이 좀 걸리긴 하겠죠. ‘셰인 길리스’라고, 2019년에 미국 SNL 캐스트에 들어갔던 사람이 있었거든요? 그 사람이 과거 팟캐스트가 파묘돼서 일주일 만에 잘렸어요. 인종차별 농담이 문제가 된 거예요. 잘리고 나서 다른 곳에서 계속 코미디하다가, 다시 좀 잘 되니까 5년 만에 SNL에서 호스트로 부르더라고요. 이런 거 보면 시간이 필요하다 싶기도 하고.

필요해. 실력의 문제보다는 이미지의 문제 같아. 계속 꾸준히 하는 게 중요해 보여요. 지금은 이 악물고 버텨야 되는 시기인 거 같아. 뭐든지 다 하면서.


버티는 건 잘 하니까?

아니 잘 하는지는 모르겠어. 지금 이런 식으로 버티는 건 처음이니까, 느낌이 좀 달라. 만약에 여기서 다시 올라가면 우리도 다시 잘 될 수 있다고 생각하는데, 그건 뭐 아무도 모르지. 그런데 코미디가 잘 되려면 과거의 우리같은 스타가 나와줘야 하는 거 같아. 참 슬픈 현실이야. 스타 출현을 바라는 자체가 ‘이 업계가 안 되고 있다’라는 뜻이거든. ‘쇼미더머니’로 힙합 잘 될 때 누가 스타를 원했겠어. 한 명 한 명 나올 때마다 환호하기 바빴지. 잘 안 되니까 저기도 ‘스타가 나와야 돼’ 이러잖아.


코미디 쪽도 메가 히트한 크리에이터가 우리 시작으로 ‘숏박스’, ‘뷰티풀너드’, ‘별놈들’ 정도 있었는데, 이후에 대박 터진 새로운 사람이 없어. 그나마 ‘닛몰캐쉬’, ‘예예’ 같은 사람들이 있긴 하지만 이들의 콘텐츠를 완벽하게 코미디라고 하기는 또 어렵지.


AnnFrdJM75XOuS0oqRQbCkzhQPv2_dhVCp-gkiAyMdHDNhW66dDoaOa5AvIU9hNvw06W3MwuQ9YV1votOmjw2g.png 닛몰캐쉬(좌), 예예(우).


‘재밌는 콘텐츠’가 아니라 ‘웃긴 콘텐츠’를 위주로 하지 않아서?

그것보다는 본인 스스로를 코미디언이라고 칭하느냐 차이 같아. 이제는 누구나 코미디언일 수 있어. ‘별놈들’, ‘뷰티풀너드’나 수많은 스케치 코미디 중인 채널들 다 스스로 코미디언이라고 생각하고 있단 말이야. 그런데 새로 나오는 지금 세대들은 형태가 좀 다르지. 대학교 가서 코미디하고 그런 행태가 없어지면서 새로 생겨난 세대 같아. 아예 기존 코미디, ‘개그’라고 하는 옛 단어와 완전히 떨어져있는 사람들인 거지.


새로운 세대들은 ‘개그맨’이 되기 위한 집단 생활이나 극단 등과 완전 떨어져 있잖아요. 이들이 코미디언으로서의 명맥을 이어갈 수 있을까?

보는 사람들이 알아서 이어 볼 거야. 먼 옛날 그 시절 ‘개그콘서트’가 르네상스라고 치면, 다음에 인상파 나오고 다른 사조 나오고 하잖아. 그 당시는 이름 정한 적 없어도 후대 사람들은 미술사 얘기하면서 이어진다고 생각하거든. 지금의 한국 코미디도… 한국 코미디라고 말하기도 웃기긴 해. 손가락으로 셀 수 있는데 이게 무슨 한국 코미디야.


코미디가 투자 없이 자생할 수 있을까?

원래 코미디는 투자라는 게 없었어. 지금까지 단 한 번도. 투자가 없었어. 왜냐? 돈이 안 되니까. 이 말도 안 되는 구조가 계속 굴러갔던 이유는 딱 하나. 웃기고 싶어서. 이거 하나밖에 없어요. 웃기고 싶은 사람들이 있어서만 가능한 구조다. 그거 하나. 이렇게 말하기 좀 그렇지만, 다른 장르는 나중에 잘 되면 돈이 돼. 그러니까 ‘저는 꿈이 있었어요’ 하면서 공연하고 그 꿈이라는 거 자체가 소재가 된다? 근데 코미디는 나중에 성공해도 돈이 안 돼. 진짜 그냥 웃기고 싶어서 하는 거야.


snapins-ai_3364573112169298252.jpg 'Netflix is a joke' 페스티벌의 메인 이벤트였던 <Greatest Roast Of All Time - Tom Brady>.


미국이랑 비교하는 게 좀 그렇긴 하지만, 넷플릭스에서 로스트(Roast, 설명) 쇼를 라이브로 3시간 스트리밍 하더라고요. ‘톰 브래디’라고 NFL 레전드가 있는데, 이 사람을 까고 조롱하는 특집이었거든요? 케빈 하트가 MC인데, 1만 7천 석짜리 경기장(Kia Forum)에서 했어요. 관중들 다 꽉꽉 들어차고.

물론 미국은 워낙 커서 코미디가 그 정도까지 돈이 되는 거 같아. 안 되면 투자를 안 하긴 했겠죠. 우리나라는 미국의 한 100 분의 1 될까? 아니다. 1,000분의 1.


더 위기라고 느끼는 게, 지금 학령 인구가 반토막이 났잖아요. 그런데 콘텐츠나 코미디라는 건 웬만해서 젊은 사람을 대상으로 방향을 잡잖아요. 젊은 사람들을 웃겨야 윗 세대들도 ‘아 이게 애들이 재밌다고 하는 거구나’하고 따라가게 되는 건데, 젊은이들이 사라지면 앞으로 코미디가 더 힘들어지지 않을까.

나도 요즘 느끼는 건 사회 분위기가 점점 더 안전지향적으로 간다는 거야. 그러다보니 자본도 더 안정적인 곳으로 들어가게 되고, 우리 같은 사람들도 ‘도전은 무슨 도전이야’하면서 맥이 풀리기도 하고. 전에는 ‘야 쫄지마, 원래 하듯이 해’라는 말을 많이 들었거든? 우리가 그, 악마화되기 전까지는 뾰족하게, 아슬아슬하게 코미디를 했었는데… 계속 줄타기를 하고 있었는데, 확 떨어지니까 ‘저거 봐라, 큰일 날 줄 알았다’ 소리를 듣는 거지.


결국 ‘선을 넘느냐 마느냐’에서 코미디라는 게 이뤄지는 거잖아요.

평생 줄타기를 하는 거지. 진짜 ‘왕의 남자’야. 그런데 어떻게 줄을 안 떨어지면서 줄타기를 해. 그 와중에 줄이 갈수록 점점 얇아지고. 시장은 암울하지만 해야지 뭐. 먹고 살 길이 이거밖에 없는데.


산업 얘기하니까 우울해지네. 팔이 안으로 굽는다고, 대형 OTT같은 데서 코미디에 투자를 좀 했으면 좋겠어요. 다양성이 너무 부족해. 다 드라마 시리즈만 하고.

돈 얘기하면 우울해져(웃음). 결국 이런 레드 오션도 뚫어내는 게 스타. 스타론을 말할 수밖에 없어. 그 길을 사실 피식이 걷고 있었는데? 어떻게 보면 우리가 계속 새로운 길을 뚫고 이런저런 것들을 한다고 보여주고 있었지. 근데, 쓰읍… ‘카우치’가 됐지. 카우치론. 내가 생각해도 너무 찰떡인 거 같아. 아니 그래도 그건 좀…


*4편에서 계속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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