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투른 작가라 연장 탓을 합니다.

나의 브런치 입성기

by 수수한

피부가 영 푸석푸석해짐을 느낀다. 몸에 수분이 부족해서 그렇다는 말에 물을 많이 마시면 될까 물음표를 찍은 뒤 정보를 찾아본다. 일단 마셔보고 효용성이 있을지 몸소 느끼면 될 텐데 좀처럼 그렇게 되지는 않는다. 예상되는 부작용인 화장실 자주 가는 증상을 읽고는 이내 이맛살을 찌푸린다. 영어 공부를 하겠다 마음을 먹으면 일단 영어공부법을 충분히 서치하고 난 뒤, 어느 방법이 가장 효율적 일지 실컷은 재고는 이미 공부한 느낌을 한 껏 받는 파워 인프피답게, 기록도 글도 그러하였다. 이미 쌓여있지만 마무리 짓지 못한 다양한 수첩들, 여기저기에 끄적대느라 일인당 허용된 개수만큼 모두 열어둔 3개의 블로그, 그리고 인스타. 어디가 좋을지 재느라 어느 한 곳에 정착하지 못했고 그래서 들쑤시고 다녔고 그 핑계로 제대로 쓸 리가 만무하였다. 어디에다 쓰면 좋을지, 무엇을 쓰면 좋을지 제대로 쓰지는 않고 궁리만 해댔다.


조언은 넘친다. 자신이 하는 일과 관련된 자료와 정보를 수시로 블로그에 올리기, 하루도 빠짐없이 꾸준히 포스팅하기, 검색 엔진에 걸리기 위해 자그마치 세 줄은 될만한 제목 쓰기, 적어도 다섯 장 이상의 사진 올리기 등. 각종 도서와 매체에는 이런 돈 되는 글쓰기에 대한 정보가 넘친다. 인플루언서나 애드포스트 등 몇 년 전에는 알지도 못했던 새로운 단어를 만나게 되었다. 그러나 나는 금세 알아차렸다. 그런 글쓰기는 내가 할 수 없는 종류의 것임을. 어떤 글이 좋고 좋지 않은 글이라 가르는 것이 아니다. 첫 줄에 언급한 것과 같이 무언가를 하기 전에 인터넷 창을 열어 정보를 찾는 것이 우선인 행동 지연형 인간이니까.

다만 내가 어렵다는 이야기이다. 독자를 의식하지 않는 글쓰기는 일기에 지나지 않는다는 비판을 읽은 적이 있지만, 쓰는 사람을 배제하고 읽는 사람만 한껏 생각하는 글쓰기는 내게 글쓰기가 아니라 노동이었다. 글쓰기에서까지 노동을 하고 싶진 않았다. (아직 내공이 한참은 부족한 것이겠지.) 정보성 글도 기깔나게 잘 쓰는 사람이 많더구먼, 나도 써보려 했으나 그야말로 글에 영혼이 없었다. 쓰는 재미가 없어서 쓸 수가 없었다. 그런 글은 쓴다고 하더라도 정작 '올리기' 버튼을 끝끝내 누를 수 없다는 것을 잘 알고 있었다.




몇 주 전, 나도 몰랐던 내 글들을 우연찮게 다시 읽게 되었다. 한 때 썼다가 방치해둔 블로그인데 간간히 열심히 쓰던 시절들이 있었다. 며칠을 나누어 읽다가 더는 읽을 글이 없어진 순간, 아 그때 더 썼을 걸 하는 생각이 들었다. 쓴 날짜가 박제와 같이 박힌 온라인 글쓰기는 종이에 쓴 글과 자취는 달랐다. 정신없이 휘갈겨 쓴 노트의 글과 달리 온라인의 글씨는 보기가 좋았다. 읽기도 좋았다.


두서없이 쓴 아날로그 노트의 글은 나에게 배설 혹은 구토와 다름없었다. 그래서 웬만해선 다시 들추어보지는 않는다. 아니 들추어보지 못한다는 말이 더 옳을까. 그렇다고 배설과 구토의 글쓰기가 무용하느냐? 그것은 또 절대 아닐 말이다. 이유 없이 가슴이 죄어오는 날에는 노트와 펜을 들고 마주했다. 그 이유를 조금이라도 알기 위해서. 그렇게 적고 나면 나를 납득시켰다. 별 거 아니네. 혹은 어쩔 수 없네 등.


내 블로그는 나와 소수의 지인 몇, 그리고 소수의 전혀 모르는 타인들만 드나들었지만 언제부터인가 늘 저장을 누르기 전에는 나름의 검열이 필요했다. 나의 상상력을 발휘해서 가상의 독자를 충분히 생각해둔다. 이 글을 올리자니 떠오르는 A의 얼굴이 있었고, 저 글을 올리자니 떠오르는 B의 얼굴이 있었다. 그들에 대해 쓴 것도 아니고, 그들이 한가롭게 내 긴 글을 읽으리라는 보장도 없었지만 웬 나르시시즘인지 전제는 그들이 내 글을 읽는다는 사실이었다. A에게는 보여주고 싶은 글이 B에게는 보여주기 꺼렸고, 때로는 A와 B 모두가 보지 않았으면 했지만 누군가는 내 글을 읽어주었으면 했다. 그렇게 적당히 정제된 주제와 고른 표현들이 '공개'라는 설정으로 저장되었다. 물론 배설물과 구토물과 다름없는 글들이 온라인에도 '비공개'라는 설정으로 저장되어 있었다.


7년이 지난 뒤, 그러니까 최근에 다시 읽어본 내 글 중 내 마음에 들어온 글들은 주로 공개된 글이었다. 타인이 읽어도 되고 읽었으면 하는 글. 저장 버튼을 누르기 전에 나 홀로 몇 번은 다시 읽고 또 읽었던 글들. 그리고 공개된 글이든 공개되지 않은 글이든 마음이 동한 뒤에야 그 뒤에 손가락이 써 내려간 글이었다. 일단 마음에 담기지 않으면 쓸 수가 없었다.





내 글을 다시 읽은 요 며칠간 내 기록에 남은 이들에게 선물처럼 그 글을 전했고 소리 내어 읽어주기도 했다. 나 홀로 읽고 또 다른 이에게 읽어주는 과정에서 가장 선물을 받은 것은 사실 나였다.

나도 잊고 있었던 내 마음을 생생히 돌려받았던 날. 글의 흔적을 줍고 싶어서 뒤적거렸다. 더 뒤적거려도 나오지 않아 읽은 글을 읽고, 또 읽었다. 적었던 날보다 적지 않은 날들이 많아서 그 무수한 날들이 안타까웠다. 이제 무엇이라도 어디에라도 쓰고 싶었다. 무엇은 마음에 담겨있는데 그곳은 어디일까.

브런치라는 곳이 떠올랐다. 작가로 통과된 이들만 글을 쓴다는 곳. 일전에 살짝 알아보다가 절차가 복잡해 보이고 작가라는 이름은 너무 근사해 보여 바로 닫아버렸던 그 공간이 아침나절 머리를 감으면서 문득 떠올랐다.

필요한 것은 자기소개와 쓸 글에 대한 소개, 그리고 나의 글 3개. 오랜만에 만난 7년 전 나의 글 중 2개를 고르고, 작년에 쓴 글을 하나를 더해 신청하였다. 그날 아침에 생각하고 결정한 일이었다.

혹시 떨어지면 다시 지원해보리라 마음먹으며, 신청한 그날 작가의 서랍을 열어 새 글을 써 내려갔다.


그리고 다음 날 저녁

"안녕하세요, 작가님"으로 시작하는 메일을 나도 받았다. 그게 무어라고 참 좋았다. 그 저녁.

어디든 자랑하고 싶은데, 저녁 밥상에서 브런치에 대해서는 1도 모르는 세 명의 박 씨 앞에서 합격을 확인하자마자 비명을 지른 것뿐이었다. 부끄럽게도 양팔을 치켜들기까지 했다.

또 어디라도 자랑을 하고 싶은데, 자랑할 수는 없는 마음. 지인은 단 세 명, 그나마도 두 명은 미국인인 내 조용한 인스타에서만 소리를 질렀다.




그렇게 브런치의 한 켠에 내 방이 생겼다. 내 방 안에는 내 서랍도 있다. 너무 작은 공간이라 한 켠이라는 말도 무색하지만 글을 쓰지 않을 무수한 이유 중에서 플랫폼 핑계 하나쯤은 접어둔 셈이다.

벅참을 간직한 하루가 지나고 나니 역시 자랑을 삼간 내가 기특했다. 두 손까지 치켜든 나를 본만큼 살아남기 위해서였는지 브런치에 대해서 1도 모르는 박 씨 남자는 앱을 재빨리 깔았고, 내 글에 라이킷을 눌렀다. 그의 정체는 독자였고 그래서 금방 탄로가 났다. 나는 한 명의 독자와 한 개의 라이킷을 포기하기로 했다. 화장실 간 사이 그의 폰을 집어 들어 조용히 브런치 어플을 삭제했다. 다시 안온한 나의 브런치가 되었다.

'작가님'이라고 불러주니 써도 되는 사람이 된 듯했다. 게다가 방도 마련해 주었고.

그러니까 무엇이라도 어디에라도 쓰고 싶었던 마음은 여기에 풀어내면 되는 것이다. 여전히 저장 버튼을 누르기 전에, 아니 이곳에서는 발행 버튼을 누르기 전에 검열 필터가 자동으로 작동하겠지만 적어도 내가 떠올릴 수 있는 얼굴이 생생한 독자는 없을 터이니 그 필터의 구멍은 보다 성글 것이다.


서투른 목수는 연장 탓을 하며 브런치를 찾았고, 구슬을 서랍 안에 하나하나 모으며 꿸 날을 기다리고 있다. 문제는 구슬이 지나치게 제각각이라는 건데, 아직 어떤 스타일의 목걸이를 만들지 아니면 팔찌를 만들지 결정하지 않았으므로 일단 구슬 모으기에 집중을 하고 있다. 어느 날, 구슬이 넘치도록 많아지고 목걸이든 팔찌든 엮을 수 있게 되는 날. 그때는 짜잔! 하고 무방비상태로 글을 쏟아낼 수 있는 그날이 오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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