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린이들은 수학 시간에 달력을 배우고 있다. 어제 시각과 시간을 배우면서 끝나는 시각이 5시이고 시작하는 시각이 3시이면 걸린 시간은 2시라고 쓰는 것이 아니라 '2시간'이라 칠판에 쓰자 일순 흔들리는 눈동자들을 잊을 수가 없다. 선생님이 단위는 꼭 같게 써주어야 한다고 했는데! 5m-3m가 2m임을 불과 한 단원 전에 배웠는데 이 배신감이란! 하던 눈빛. 우리는 마땅히 그러하리라 습관적으로 쓰는 것이 아니라 곱씹어 생각하며 써야 하는 순간이 있는데 지금이 바로 그때라고 했다.
덧붙여 5시에 출발하고 1시간이 걸린 뒤에 도착할 시각은?이란 문제를 묻자 더한 혼란의 눈빛이 느껴진다. m와 cm가 혼재했을 때는 둘 중 하나의 단위로 통일시켜준다지만 시각과 시간의 만남이라니!
"여러분. 시각과 시간은 그 의미를 생각하며 계산한 뒤 골라 써야 해요. '시'일지 '시간'일지."
다양한 예시와 함께 그 의미에 대해 깊고 진한 대화를 나눈 뒤 마주한 달력인지라 한결 자신감 넘치고 가벼운 마음들이 느껴진다. 저마다 작은 주먹을 쥐고 급한 마음에 엉덩이가 들썩이는 것이 보인다. 나 아는데. 오른손 두 번째 손가락으로 주먹진 왼손의 산꼭대기와 움푹 파인 골짜기를 짚어가며 새어나가야 하는데. 2월에 29일도 있다는 것 나 아는데!
그 마음을 선생님은 아는지 모르는지 1년은 몇 개월이 있는지, 개월이라는 말을 언제 쓰는지 말해보자며 돌이 안된 아가들 이야기를 꺼냈고 급기야 J는 자신의 동생이 36개월임을 밝혔으며 선생님은 옳지!J동생처럼 이렇게 어린 아이들은 개월수로 많이 말해요라고 한 뒤, 임산부들의 뱃속의 아가들도 3개월, 7개월 이렇게 말하기도 한다고 긴 대화를 나누고 지금의 달력을 짚어보라든지, 교과서의 달력이 정말 2022년 올해의 달력이 맞는지 보자며 다른 질문과 요구가 한가득이다. (안다. 알아. 너희들 마음을 알고 있다. 당연히.)
알 수밖에 없는 이유는 주먹을 쥐기까지의 긴 여정에 이미 쥐어진 너희들의 주먹과 급하게 세어나간 오른쪽 두 번째 손가락과 입술 사이로 새어나간 "1월, 2월, 3월.."과 간헐적으로 들리는 "29일"이 우리의 대화 사이에 놓여 있기 때문이다. 유리알같이 훤히 들여다 보이는 너희의 마음에도 바로 주먹을 쥘 수는 없지. 배울 것을 배운 뒤 긴 대화 끝에 드디어 모두 함께 주먹을 쥔다! 내 주먹 내가 쥐는데 이렇게 신날 줄이야. 그리고 이제 소리 내어 크게 외칠 수 있다.
"1월, 2월, 3월... 12월"
손등의 꼭대기와 골짜기를 몇 번 오르락내리락하고 2월 29일이 생일인 자의 슬픔과 아픔을 가슴 깊이 공감한 뒤, 2023년 달력을 만들며 친구들의 생일을 달력에 표시해보기로 했다. 간헐적으로 내 앞으로 나오는 아이들.
" 선생님 생신이 언제예요?"
"비밀."
"선생님 생일이 언제예요?"
"안 가르쳐줘."
"왜요?"
"내 생일 내가 안 가르쳐준다고 하는데 왜요. 안 가르쳐줄 거예요."
마치 내 생일의 소유권이 본인에게 있는 듯한 어린이들의 당당한 태도에 끝까지 버티고 있는 내가 점점 몹쓸 사람이 되어가는 모양새가 되어간다. 1대 28. 아 오늘은 결석생이 2명이 있으니 1대 26. 쉽지 않은 승부.
즉석에서 종합장에 피켓을 만들어 생일 알려달라고 크게 써서 보여주는 아이, 폭 껴안으면서 구슬리는 아이, "왜요~가르쳐주세요."라고 말하면서 무작정 조르는 아이 다양한 방법으로 목적을 구사하기 위해 어느새 하나가 되었다.
"선생님 말하기 싫은데 여러분이 자꾸 생일 가르쳐달라고 말해서 무서워서 학교 못 오겠어요."라고 했더니 까르르 웃고는 하던 요구는 마저 계속 이어간다.
"선생님이 여태 다른 제자들에게는 가르쳐주지 않았는데 너희들에게만 가르쳐주면 불공평하잖아. 작년 아이들이 와서 왜 우리는 안 가르쳐줘요. 하고 슬퍼하면 어떻게 해. 대신 생일을 가르쳐주지는 않지만 선생님이 여태 한 번도 알려준 적이 없는 비밀을 하나 알려줄게. 너희들 살면서 가까운 사람들 중에 생일이 같은 사람 본 적 있어? 나는 정말 한 번도 없거든. 친구든, 가족이든, 많은 학생들이든. 그런데 우리 반에 나랑 생일 같은 사람이 있다?"
갑자기 눈이 동그레진 아이들은 누구의 생일 일지 추적하며 반 아이들의 생일을 마구 던져 본다.
"9월 4일이죠?"
"11월 14일이죠?"
"맞는 생일 나와도 선생님은 맞다고 말 안 할 거야."
"아.. 생일 같은 사람 좋겠다."
아니, 내 생일이 뭐라고 나랑 생일 같은 사람이 좋을 이유가 뭐가 있니.
사실 선생님은 겁쟁이라서 그렇단다. 언제부터인가 하루에 딱 하나뿐인 그날은 나머지 364일보다 더 행복하지 않은 때도 있기도 한 것 같아. 뭔가 특별해야 한다는 생각이 들면 그렇지 않을 때 더 우울한 느낌이 들거든. 그래서 특별하지 않은 척 지내고 싶어 졌어. 언제부터 말이야. 생일 며칠 전부터 내게 생일을 말해주고, 너희 엄마 생일을 내게까지 말해주는 너희들은 절대 선생님의 마음을 알지 못하겠지. 왜냐하면 너희들에게 생일은 그만큼 엄청난 날이니까! 그러고보니 그 엄청난 나의 날을 궁금해해 주고, 나와 같은 생일을 가진 아이들 부러워해주니 고맙기는 하네.
사실 나와 생일 동기인 부끄럼 많으나 차츰차츰 용기를 내어 자라나고 있는 Y에게 생일 당일날 귓속말로 말해주고 싶었어.
"선생님도 오늘 생일이야. 우리 생일 축하해!"라고 말이야. 귓속말로 이야기해주려다가 말았는데 그러지 않기를 잘했구나. 이렇게 엄청난 의미를 가지고 있을 줄이야. 이 사실을 알면 Y는 무척 행복해지고 다른 친구들은 크게 부러워함과 동시에 내 생일을 더 잊지 않고 각인시켜주는 계기가 되겠군.
역시나 비밀.
사실은 알려줬는데 기억하지 못해 외로워지기 싫어서 말하지 않는 것이기도 해. 선생님은 겁쟁이니까. 사실 누군가 기억해도 기억하지 않아도 둘 다 마음이 어려운 쪽이니까 알려주지 않는 것이야.
라는 이 심오한 이야기를 어제 5시와 3시의 차이는 2시간의 혼란의 도가니탕에서 빠져나온 어린이들에게 말할 수 없으므로 미소를 지으며 계속 생일 공개를 거부할 뿐이었다.
내일은 물어보는 거 잊겠지? 수능으로 1시간 늦게 등교하니 더더욱 잊고 올 거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