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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수수한 Feb 20. 2023

[수수한그림일기]삶의 기본값

2023.2.19



한국드라마를 보는 게 12년 만인가 보다.

'한국'드라마라고 하는 이유는 미드를 포함한 외국 드라마는 보아왔기 때문이다. 표면적인 이유는 유흥으로 보내는 시간을 비록 자막과 함께 볼지언정 영어에 노출되고 있으니 자기 위안 내지는 합리화가 가능하다는 것이다. 자막과 함께 보더라도 미드를 보면 새로운 표현을 배우는 것이 가능한데, 내 입밖으로는 절대  낼 일 없고 내어서도 안 되는 표현들도 배운 다는 것은 함정이다.


 그렇다면 이면의 다른 이유는 무엇인가.

 미드는 보면서 한국드라마를 보지 않은 이유는 미드가 한드보다 훌륭하다는 가정에서가 아니라 한드를 보면 감정적으로 깊이 빠질 것이 분명했기 때문이다.


외국 드라마들은 내용이 흥미롭고 공감되더라도 그 여운은 화면을 끈 뒤 조금만 더 지속되는 정도이다. 나와 다른 생김새와 언어, 배경은 내가 본 것이 '드라마'임을, 누가 만들어낸 가상의 세계라는 것을 주장한다.


 반면 한국드라마는 익히 아는 공간과 언어 익숙한 사람들이라 정말 어딘가에 그들이 있을 것만 같다. 드라마인 것을 알고 있는데 마음이 자꾸 잊는다. 내 삶 속에 들어온다.

 그래서 보지 않았다. 이야기가 내 삶 속에 들어오는 것이 얼마나 힘든 것인 줄 알기에.


보고 있는 이 드라마는 예전에 종영한 드라마인데, 책을 읽는 기분으로 보고 있다.

대사 한 줄 한 줄이 너무나 마음 깊은 곳을 찌른다. 처연하고 아리다.

매 회 흘리는 눈물의 양을 모으자면, 작년에 흘렸던 눈물의 양보다 이미 넘쳤을 것 같다.


모두의 삶이 가엾어 울게 되는데

불쌍한 사람들이 다른 사람을 더 불쌍하게 여겨서 울게 된다.

그 불쌍한 사람들은 멀지 않고 실상 우리 모두의 이야기라 울게 된다.


그러나 역시 서로를 불쌍하게 여기는 '사람'이 있기에 견뎌내며 보게 된다.

그들의 삶을 보고 실컷 아프고, 서로를 측은하게 여기는 것을 보고 가슴을 문질러대며 이 과정을 반복하고 반복하며 보고 있다.


 가슴팍을 문지르며 밤마다 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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