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일의 나가 오늘의 나에게

by 수수한

어제의 내가 오늘의 나를 도왔다.


보통은 오늘의 나를 내일의 나에게 맡기는 편인데

어제의 내가 오늘의 나를 도왔더니 참 좋았더랬다.


어제 두서없이 써 내려간 글이 작가의 서랍 속에 있었다.

두서없게 썼기 때문에 다시 읽기가 싫었다. 엄밀히 말해서 귀찮은 것이다.

쓸 때는 신이 나게 생각이 쏟아지는 대로 써놓긴 했는데

다시 읽어보면서 비문도 찾아야 하고 낱말도 바꾸어야 하고 듬성이는 부분을 채워야 하고 넘치는 부분은 덜어내야 하고 끝까지 가지 않은 글이기에 끝까지 가게 만들어야 하는 그 지난한 과정을 머릿속에 미리 그려보고 열어보기 싫은 것이다.


그러면 오늘 새 글을 처음부터 다시 쓸래?

그러니까 그 두서없이 쓰는 일부터 끝까지 다시 해볼래?라고 물으니 꾀가 나는 것이다.


잠자코 어제의 글을 연다.

중얼중얼 염불 외듯이 입술을 움직여 읽는다.

브런치 맞춤법 검사기를 이용하면 맞춤법 틀린 낱말들이 빨간 불을 켜듯이, 소리 내어 읽다가 턱턱 걸리는 부분은 입술이 저절로 멈추어진다. 입술이 움직이지 않거나, 내가 눈으로 보고 있는 낱말은 이것인데 입술은 저것을 읽는다는 식이다.

열어보기 싫었지만 막상 고치면서 드는 생각은 처음부터 쓰는 것보다 이것이 낫구먼. 하는 생각이다.

결국 하나의 글을 발행하게 되었다.


이렇게 어제의 나에게 빚지고 나니 가만히 있을 수가 없다.

내일의 나에게 아무것도 해놓지 않으면 나는 천하에 나쁜 오늘의 나가 되어 버려서.

그러니까 어제의 나와 미래의 나에게 삥 뜯는 오늘의 나가 되는 것이 아닌가.

내일의 나에게 많이는 아니더라도 조금이라도 해주자 싶어 빈 화면을 열었다.

그리고 여기까지 써냈다.

물론 내일의 나는 이 창을 열어보기 싫을 테고, 또 그러려면 처음부터 다시 쓸 거냐?라는 내면의 질문을 받을 테고, 아니 그러고 싶진 않아라고 대답할 테고, 그렇다면 잠자코 열기나 해. 입술 움직여서 어서 읽어봐라고 말하겠지.

어쩌면 내일의 나는 여기까지 읽으면서 피식 웃을지도 모르겠다.

짜식아. 내가 다 뜯어고쳐놨어. 이렇게 말하려나.


아래는 내일의 내가 답을 남긴다.

















야. 줄 아래도 써놓지 그랬어.










*줄 이전은 7월 19일 초고를 쓰고 7월 20일 퇴고를 하였고

줄 아래는 7월 20일에 생으로 씀.

이전 09화여기서 읽고요, 여기서 쓸 거예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