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기서 읽고요, 여기서 쓸 거예요.

일상의 틈새에 나를 넣기

by 수수한


"이것 좀 받아줄래?"

사실 나 홀로 하고 싶었다. 두 아이 모두 책 속에 빠져 들었기에 다시 꺼내오고 싶지 않았다. 그러나 엉거주춤 얹어진 물건들 사이에서 내가 찾는 것은 지나치게 맨 위, 구석에 있었다. 한 손은 바닥에 내려야 할 물건을 잡고 있었고, 다른 한 손은 그 물건을 꺼내느라 임시방편으로 얹어 놓은 다른 물건을 떨어지지 않게 막고 있어야 했다. 내 두 발은 의자 위에 놓여있었다. 나는 편리함을 선택하기로 했다.


나의 편리함을 선택했을 뿐인데, 사실 기대한 바는 둘 중 한 명만 와도 될 일이었는데, 두 녀석 모두 편리하게 책 밖으로 빠져나와 쪼르르 곁으로 왔다. 아직 쟁취하지 않은 목표물은 책상다리 한 짝, 신발장 맨 위칸에 자리 잡고 있었고, 획득물은 책상다리 세 짝 아이들이 받아 바닥에 놓아주었다. 안간힘을 써서 나머지 한 짝도 꺼내 보려 했으나 역부족이었다. 마침 화장실에서 나온 남편을 불렀다. 진작에 내가 내려올 걸. 그럼 두 녀석 모두 아직 몰랐을 건데.


시키지도 않았는데 어느새 아이들은 다리 세 짝을 책상판에 달고 있었다. 이렇게 익숙하게 할 수 있는 것은 이미 의자 다리를 붙였다 떼었다 해봤다는 이야기이다. 이 말은 책상이 생겼다 없어졌다 하는 이야기이기도 하다.

"절대. 저얼~~대 물건을 올려놓아서는 안된다!"

지킬 수 없는 일이라는 사실을 알고 있지만, 그래도 말은 해본다.







이 책상은 사실 아이들 어릴 때 사용하라고 들인 낮은 책상이었다. 들여다보면 상판에 아이들 낙서 흔적이 남아 있지만 나무가 좋아 그냥 없애긴 아까웠다. 하여 판매처에서 조금 더 긴 다리 네 짝을 구매하였고 소파 앞에 두고 거실상으로 쓰곤 했다.


말하자면 입만 아픈 소리인데 우리 두 딸내미는 정말 물건을 정리하는 법이 거의 없다.(거의라는 부사를 빼면 발끈할 그녀가 떠올라 황급히 붙인다.) 책상, 식탁, 소파 손잡이(하필 우리 집 소파 손잡이는 원목이고 넓고 무언가를 얹기에 딱 적합하다.), 방바닥... 물건들이 아주 자유분방하게 놓여 있다. 나는 극심한 스트레스로 고통받고 있는데, 나의 호통에도 그녀들은 별로 고통받지 않는 듯하다.


긴 다리를 얻은 책상의 운명은 다리를 잃었다 얻었다를 반복하였다. 긴 다리를 얻은 날 물론 우리 모두 물개 박수를 치며 좋아했다. 그곳에서 책도 보고, 간식도 올려놓고, 끄적이기도 하고 그랬지. 처음엔 아름다운 날들이었지.


그러나 흔적은 하나, 둘, 쌓여갔고 극심한 스트레스를 받은 나는 별안간 다리를 제거하는 것이다. 예고도 없이 그 전날까지 아무 소리 안 하다가 어느 날 문득 혼자 결정한다. 물론 그때 말하는 자는 나뿐이지. 집이 아주 엉망진창이라며, 얹을 곳을 없애놓아야 얹지를 않지! 하며 들어주는 이 없는 푸념을 실컷 한 뒤 책상의 몸체는 베란다에, 다리는 신발장 제일 위로 보내는 것이다.


키다리 책상을 사라졌다. 마치 이 집에 없었던 존재처럼.







아마 아무도 긴 다리 책상이 있었는지도 잊고 살았을 거다. 그러다 문득 책상을 소환해온다.

이 집에서 긴 다리 책상을 사라지게 할 수 있는 자도, 소환해올 수 있는 자도 나뿐이다.




완성된 내 공간!





역시나 호시탐탐 노리는 이가 많다. 그렇지. 아무것도 올려놓지 않은 이 공간이 너무나 매력적인 거지. 내가 책 한 권과 독서노트 한 권을 꺼내 끄적이니 슬그머니 작은 아이가 제 다이어리와 책을 들고 온다. 좋다! 너도 이 공간을 허하마. 다리 한 짝 단 공이 있으므로. 그러더니 큰 아이도 슬그머니 제 것을 들고 온다.







오늘 한 잘한 일에 책상을 다시 꺼낸 일을 적을 테다. 그렇게 해서 여기서 읽은 시간도, 쓴 시간도, 차를 마신 시간도 참 좋았으니까. 하루 중 나를 돌보는 순간을 배치한다는 건 나를 덜 잊고 살아가는 일이다.

물론 홀로 사는 것이 아닌 이상 나에게 몰입하는 일은 쉽지 않다. 더욱이 돌보아야 하는 존재가 있는 위치에 있는 사람에게는 더더욱 그렇다.


화장실 청소를 하고, 아이들 실내화를 빤 뒤에는 문을 잠그고 욕조에 푹 몸을 담갔다. 그곳에서 꽤 오랜 시간을 홀로 머물렀다.

밥을 안치고 찌개가 끓는 동안 읽다만 책의 다음 페이지를 열어보았다.

늘 늦게 먹어 나를 고통에 구렁텅이에 밀어 넣는 아이들에게 떨어져서 내 식사를 마치고 냉커피를 마셨다.

일상의 틈새에 조금이라도 나를 욱여넣는다.

긴 다리 책상을 불러오고 의자에 나를 욱여넣는다.

그리고 책상 위를 쓰다듬으며

"참 좋은 하루였다."라고 말한다.














책상은 지켜졌으나 지켜지지 못한 바로 옆 소파......

보기 싫으니 사진도 작게 올린다. 에혀............







과연 이번판 긴 다리 책상의 수명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