날이 무겁다는 핑계를 대고 있다. 오늘은 지나치게 비가 많이 오고 있다는 핑계를 대고 있다.
핑계라는 짧은 단어로 표현하자니 너무나 가볍게 느껴지고 별 것도 아닌데 회피하는 것으로 느껴진다. 사실 그것보다는 살짝 무게감이 있는 무엇인데 내 비루한 표현력으로는 쓰기가 어렵다. 해가 떠있을 때는 밤에 잘 써질 것 같아서 미루어 두었는데, 밤에는 해가 있을 때 잘 써질 것만 같다. 밤이라고 해도 습기 때문에 무거운 것은 매 한 가지이며, 지금은 폭우가 내리는 중. 비를 빙자하여 쏟아지는 물에 심난함을 더해간다. 더위의 무게가 무겁게 느껴진다면 가을이라면 글이 잘 써질까. 여기까지 쓰고 보니 알았다. 핑계라는 짧은 단어로 표현해도 충분하구나.
사람이 얼마나 알량한 존재인지.
고작 나 하나라는 사람이 겪은 일을 사람이라고 일반화시켜서 될 일인지는 모르겠으나 인스타라는 플랫폼이 예전에는 그렇게 벽처럼 느껴졌는데 하나, 둘 피드를 올리다 보니 인스타에 글을 올리는 것은 비교적 가벼운 마음으로 되고 있다
그런데 문제는 브런치 글이다. 사실 글감이 인스타 글과 크게 다를 것은 아닌데 왜 거기에는 쉽게 올릴 수 있는 글을 여기에는 쉽게 올리지 못하고 있을까.
작가들이 모여있는 플랫폼이라서 그럴까.
글을 더 길게 만들어야 한다는 압박감 때문잉까.
인스타는 쓰자마자 바로 올리는데, 브런치는 퇴고의 과정을 한 번이라도 거치고 싶어서 우선 저장을 눌러놓고는 다음날에 다시 열어보지 않아서일까.
이렇게 쓰다 보니 마지막 질문에서 툭 걸린다. 사실 오늘 브런치에 와서 무슨 글을 쓸까 하며 작가의 서랍부터 열어보았다. 제법 길게 써둔 미완의 글들이 몇몇 보인다. 클릭하여 글 안에 들어가서 대충 훑고 바로 도망 나와버렸다. 그리고 이렇게 새 창을 연 것이다.
즐겁게 쓰고 상쾌하게 바로 글을 올리는 쾌감을 인스타에서는 누리고 있는데, 브런치에서는 마음이 움직이는 대로 손가락이 즐겁게 쓰고는 부담감을 남겨 놓는다. 언젠가 다시 열어 읽고 고치고 어울리는 사진도 고르고 제목도 만들고 올릴지 판단하라고. 난 이 남겨진 부분을 즐거워하지 않는구나.
이 공간이 무엇이라고 그렇게 망설이나. 읽을 사람이 많지도 않고 어느 정도의 글을 올렸는지 기억할 사람도 없어. 이 공간을 연습장 삼아 수없이 시도해보는 것이 이리저리 재어 몇 개의 글만 내보이는 것보다 나을지 몰라. 제대로 되지 않은 것을 내보이는 두려움이 크다면 이렇게 생각해보는 건 어떨까. 지금은 연습이니까 실컷 써서 보인 뒤 나중에 마음에 들지 않은 것은 거두어도 되는 거잖아. 연습장을 북 찢어내듯이. 아마 나는 그 찢어낸 종이도 쉬이 버리지 못할 거야. 어딘가 잘 보관해두겠지.
즐겁지 않은 부분이 있다면 글을 썼다는 상으로 즐거운 부분만 남겨두게 하는 것도 방법이겠네. 오늘은 즐겁게 썼으니 상으로 내일까지 넘기지 않고 사진도 찾지 않고 맞춤법만 검사한 뒤에 소리내서 딱 한 번만 읽고 짠 하고 올릴 거야. 진짜 그럴 거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