날이 더워 쉽게 해 먹을 것이 없을까 냉장고 문을 열고 한참을 섰다. 눈에 띄는 콩나물. 옳다구나 꺼내 든다. 콩나물로 할 수 있는 가장 쉬운 요리가 무엇일까 생각하다 후딱 떠오른 것이 콩나물밥이다. 밥만 만들어 내면 양념간장과 김치만 같이 내면 되니, 오늘도 더운 날인데 어떻게 한 끼는 지나갈 수 있겠구나 싶다.
늘 압력솥으로 밥을 한다. 씻은 쌀을 넣고 센 불 위에 솥을 올려둔다. 칙칙 소리가 나면 불을 줄인 뒤 하늘색 타이머로 7분을 맞춘다. 정해진 시간이 되면 소리가 울리는데 내가 따로 손댈 필요 없이 잠시 뒤 알아서 꺼지니 영리한 녀석이다. 소리에 맞추어 가스불을 끈다. 서서히 김새는 소리가 들려온다. 김새는 소리가 완전히 잦아들 때쯤 뚜껑을 열어도 된다.
매번 하던 대로 압력솥에 손이 까다가 르쿠르제 주물솥이 눈에 띈다. 한 번도 솥밥을 해 본 일이 없는데 한 번 해볼까? 생각이 든다. 왜 갑자기 이런 생각이 들었을까. 압력솥에 넣어 지나치게 흐물거리는 콩나물이 떠올랐다. 솥밥을 해본다면 왠지 밥알도 더 탱글 거릴 것 같다.
마음먹은 김에 핸드폰을 열어 재빨리 검색해본다. 새로운 일을 할 때에 검색 없이는 시도가 어려운 지경에 이르렀다.
"르쿠르제 콩나물밥"
몇 개의 블로그를 훑어보다가 가장 쉬워 보이는 방법으로 골랐다. 쌀을 30분 불린 뒤 솥에 불린 쌀을 넣고 중불로 7분을 끓인다. 7분은 내가 익히 잘 알고 있는 숫자지. 공교롭게 압력밥솥 조리 시간과 같아 반갑다. 한 번 뒤적여주고 콩나물을 얹어 뚜껑을 닫은 후 약불로 13분을 더 끓인다. 총 20분이 걸린다.
원래 애용하던 압력솥 방법보다 무려 13분이나 더 걸린다. 하지만 시간보다도 더 컸던 심리적 장벽은 내가 한 번도 해보지 않은 일이었다는 사실이다.
망치면 어쩌지, 맛없으면 어쩌지, 쌀이 덜 익으면 어쩌지, 솥 바닥에 눌어 타버리면 어쩌지, 설거지하기 힘들면 어쩌지. 순간 여러 가지 생각이 스치고 지나갔다. 그러나 해보기로 했다. 이 여러 가지 생각 뒤로 떠오른 이 생각 때문에
'더 맛있으면 어쩌지?'
근거 없는 낙관주의가 일을 낸다.
7분 뒤 뚜껑을 여는 순간, 조금 움찔했다. 압력솥이라면 밥이 다된 시간이데 내가 보고 있는 것은 밥과 쌀의 어중간한 모습이었다. 굳이 따지자면 쌀에 더 가까운 결정체로 밥이다 생각하고 먹기에는 충분히 무리가 있어 보였다. 마음을 가라앉히고 쌀과 밥 사이의 어중간한 결정체들을 주걱으로 휘휘 저었다. 콩나물을 얹은 뒤 뚜껑을 닫고 불을 줄였다. 이제 하늘색 타이머가 13분이 지났음을 알리면 된다.
솥과 뚜껑 틈새로 콩나물 내음이 솔솔 새어 나온다. 그렇지만 내 마음은 안심의 반대로 향한다. 왠지 콩나물 내음이 비릿하게 느껴지는 것이 덜 익은 듯싶다. 또다시 생각이 오간다. 괜히 솥밥을 해봤나 봐. 한 번도 해보지 않았으면서. 그냥 하던 대로 할걸. 그랬다면 벌써 끝났을 텐데.
13분이 흘렀음을 알리고 뚜껑을 열었다. 테두리에 빼꼼히 보이는 쌀알 몇 알을 가져다 입에 넣어본다. 윤기가 흐르는 쌀알은 촉촉하니 좋았다. 이제는 조금 기분이 좋아져서 식구 수 대로 밥을 덜어내고 양념장을 넣어 비벼 보았다. 투정 없이 늘 맛있다고 먹는 짝꿍 이야기는 믿음이 가지 않기에, 옆에 앉은 꼬마에게 맛있냐고 몇 번을 물었다. 아이가 콩나물을 씹는 소리가 유난히 크게 들릴 때마다 "콩나물이 아삭아삭하지?"라고 물으며 내 몫을 먹었다.
밥이 실망스럽게 되었다면
나는 역시 괜히 했다고 말했을까. 다시는 하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을까.
사실 사진을 찍어두었고 되돌아 곱씹으며 이 글을 쓰니, '아 이런 일이 있었지.' 하며 오늘의 작은 성공이 이제야 기억이 난다. 사진도 찍지 않고 글도 쓰지 않았다면 오늘 있었던 일이었음에도 불구하고 글을 쓰고 있는 지금 이 시각, 오늘 밤조차 기억하지 못할 일이었는데. 그렇지만 역시 실망스러운 밥이었다면 나는 두고두고 여태 기억을 하고 있을까.
두 달 전에 요가원이 문을 닫는다고 선생님께서 말씀하셨다. 건물주가 임대료를 올리면서 이 달 말까지 비워달라고 했단다. 아무래도 근처에 새 요가원을 구하지 못할 것 같다는 선생님의 말씀에 가뜩이나 사람 없는 요가원이었는데 4명의 회원에서 2명의 회원으로 줄었다. 몇 주 전 극적으로 근처에 새 공간을 구하셨다며 8월부터 새 요가원에서 보자고 하셨다. 오늘이 새 요가원의 첫날이었다.
선생님은 어제 전화를 주시면서 2명 중 나머지 한 분도 그만두신다는 소식을 알리셨다. 그러면서 나에게 선택권을 주셨다. "혼자라도 나오실래요?"
나는 그 말의 행간을 파악하기가 어려웠다. 내가 나가는 것이 선생님께 득이 되는 일일까 아니면 폐가 되는 일일까. 나는 혼자라도 선생님과 마주하며 그 정적의 공기를 가로질러 요가를 할 자신이 있는가. 파악하기 어려운 것은 선생님 말의 행간뿐 아니라 내 마음이었다. 아니 선택하기 어려운 이유가 무엇이 걸려서인지조차 알 수 없었다. 선생님은 어느 선택도 관계없다며 나에게 결정권을 주셨다.
그 누구에게 묻지 않고 압력솥 대신에 주물솥을 선택하여 콩나물밥을 했던 오늘 낮처럼, 그 누구에게 묻지 않고 혼자서라도 하겠다고 답했다. 가장 큰 이유는 해보지 않은 것을 해보겠다는 마음에서였다.
새 공간은 아담했지만 조도가 낮은 조명이 한결 좋았다. 선생님의 매트는 가로로, 내 매트는 세로로. 선생님은 두 개의 매트를 꺼내 놓은 뒤 나를 기다리고 계셨다. 처음으로 단 둘만 마주하게 된 오늘. 그전에는 나누지 못한 몇 마디 짧은 대화가 오갔다. 선생님께 두 손 모아 말씀드리며 오늘의 요가를 시작했다.
"정진하겠습니다."
나 혼자였기에 입으로 뱉을 수 있는 말이었다.
어색할 줄 알았지만 그렇진 않았다. 나는 요가하는 중간중간 눈을 감고 하는 버릇이 있다. 이전에도 선생님의 목소리를 따라 내 몸을 움직인 것처럼, 지금도 그렇게 하면 될 일이었다. 홀로 요가를 하니 더 곁으로 와주셔서 내가 안 되는 동작을 살뜰히 알려주셨다.
평소와는 조금 다르지만 많이 다르지는 않은 나의 요가 시간은 그렇게 흘렀다.
오늘의 작은 새로운 결정들은 내 삶을 크게 흔들어 놓지 않았다. 작은 성공들처럼 느껴져서였을까. 실망스러운 결과였다면 오늘의 삶을 더 크게 흔들어 놓았을까. 많이 후회했을까. 모르겠다. 속단할 수는 없다. 겪지도 않은 일을 장담하는 허세를 부리고 싶지 않다.
분명한 건. 이러나저러나
나는 오늘 솥밥을 해본 사람이 되었고, 선생님과 단 둘이 요가를 해본 사람이 되었다는 사실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