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치밀한 사람.(이쪽으로만?)
오늘 아침부터, 아니 어제부터 계획하였지.
시작은 다음 문자를 받았을 때였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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때는 저녁인데 마음이 바빠지잖아.
달걀과 우유를 부리나케 담았어. 가격이 저렴한 녀석들은 금세 품절이 되곤 하거든.
다음으로 가족들에게 영양적으로 부실하지 않은 식사를 제공 가능하면서도, 적당한 가격에 나름 푸짐한 양, 그리고 무엇보다 이 더운 여름날 내가 고되지 않고 쉽게 조리할 수 있는 식재료가 무엇 일지를 궁리했지.
그리고 마지막으로 레몬 세 알을 담았어.
3만 원에서 살짝 넘치는 가격. 성공이야. 3만 원부터 무료배송이 가능하거든.
아침에 도착한 레몬 세 알에 흐뭇했어. 살짝 뚜껑을 열어보았는데 시큼한 향이 금세 퍼졌어.
녀석들을 얼른 냉장고에 넣어두고,
나의 탁월한 선택 또 다른 품목들을 아침 식탁에 올려두었지.
쫄깃쫄깃한 식빵이야. 꽤 도톰해서 잼을 바른 뒤 달걀프라이와 치즈를 넣고 먹으니 제법 든든해.
물론 시원한 우유도 꺼내 두었지.
내 나름대로 목표했던 든든하면서, 적당한 가격을 만족시키고, 무엇보다 내가 덜 고되게 차려낼 수 있는 한 끼를 무사히 지나갈 수 있었어.
하루 중 문득문득 냉장고 속 레몬 세 알이 떠올랐어.
흐뭇하고 설레었지.
드디어 저녁.
레몬을 슬라이스 하면서
오늘의 레몬의 용도를 설명하니
짝꿍은 당장에 뛰쳐나갔어.
그동안 나는 치밀하게 장바구니에 함께 담았던 닭을 구웠지.
영양적으로 부실하지 않은 식사를 제공 가능하면서도, 적당한 가격, 그리고 무엇보다 이 더운 여름날 내가 고되지 않고 쉽게 조리할 수 있는 식재료로 합격이야. 닭을 정성스럽게 씻겨 소금과 후추를 골고루 뿌린 뒤, 에어프라이기에 넣고 버튼만 누르면 되거든. 아, 간간히 들여다보고 뒤집어주는 세심함도 필요하긴 하지.
구운 닭을 경건하게 그릇 위에 담아 완벽한 식탁을 완성하고 싶었는데
내가 그렇지. 집게로 들어 옮기다가 닭날개를 찢어먹었어.
비록 닭날개가 찢어진 닭구이지만 위 세 가지 조건 외에 한 가지 조건을 더 만족시켰으니 네 역할은 그걸로 충분하다, 차고 넘치는구나 하며 다독여 주었어.
그래. 나는 레몬 맥주를 마실 계획을
어제저녁부터 세운 거야.
그리고 잠을 들기 전에도, 아침에 녀석들을 만났을 때도, 하루를 살아가면서 문득문득
입에 침이 살짝씩 고이면서 오늘 저녁을 기다렸던 거야.
시큼한 레몬 향기에 참지 못한 아이들은 조르기 시작했어.
레몬 조각 하나씩을 얻어
얼음물에 퐁당 넣은 아이들은 덩달아 행복해졌어.
레몬은 그런 거잖아.
흔하지 않은,
레몬차 따위를 담을 원대한 목표 없이
구태여 사지 않는 품목이잖아.
우리 집만 그래?
그러니까 요는
전날부터 행복하려면
장바구니에 레몬을 담으세요.
가끔.
레몬을 항상 구비하는 집은 해당사항 없는 이야기예요.
바질, 로즈마리, 로메인 따위가 냉장고 문을 열면 항상 있는 집은 해당사항 없는 이야기예요.
그러니까 요는
저는 지금 행복하다는 이야기고요.
짝꿍이 뛰쳐나간 이유는
테라를 사기 위해서였어요.
(내가 검색해보니 테라 맥주랑 궁합이 잘맞더라고 중얼거렸거든요. 소근소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