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이 같은 것 같지만, 실제로 같은 하루는 없다.’
어제 책에서 이런 뉘앙스의 문장을 읽었다. 유치하게 어제는 6시 54분에 일어났는데 오늘은 조금 더 뭉그적 대다가 6시 57분에 일어났잖아. 어제는 아침에 시원하게 변을 보았는데 오늘은 아직 소식이 없어. 어제는 아침에 뜨거운 커피를 마셨는데 오늘은 차가운 커피를 마셨잖아.라고 시시콜콜하게 어줍지 않은 사례를 댈 수도 있겠다.
그나마 조금 덜 유치한 버전으로 가볼까? 남편이 목이 칼칼한 것 같다고 해서 자가진단 키트로 코로나 검사를 해보았다. 이미 3월에 코로나 확진을 받은지라 크게 걱정하지 않았는데 두 줄을 보는 순간 머리가 하얘졌다. 사실 이번 주에 이것저것 함께 하기로 정해둔 일정이 있었는데 어디서부터 무엇을 조정해야 하고, 우리는 지금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하는 것인지 이미 겪은 일인데도 일순 아득해졌다. 이만하면 조금 덜 유치한 버전의 어제와 다른 오늘이라고 할 수 있을까?
매일이 다르기를 바래서 매일이 같은 것 같다는 푸념 섞인 말을 되뇌는 것은 아닐 테다. 실제로 스펙터클하게 달라지는 매일이 내 앞에 펼쳐진다면 살 떨리고 두려워서 아침에 눈을 뜰 수 있을까. 나는 심약한 사람이라 그런 극한 변화는 절대적으로 사양이다. 다만 어제의 했던 후회를 오늘은 덜하길, 오늘은 어제보다 무엇하나라도 더 나아지기를 바라는 것이 아닐까.
하루 중 숱하게 뱉은 말과 표정을 떠올려보면 마음에 들지 않은 나의 모습이 머릿속을 가득 채운다. 어제와 비슷한 지점에서 마음이 툭 걸린다. 물론 하루도 같은 날은 없을 테니, 조금은 다른 톤과 다른 단어를 사용해서 표현했을지도 모른다.
더 일찍 일어났을 걸, 더 정리정돈을 잘했을 걸, 내가 공부하기로 약속했던 것 했어야 했는데, 아이들에게 더 다정하게 말했을 걸, 제대로 된 음식으로 더 챙겨 먹었을 걸, 아이들 공부를 챙겨주지 못한 것이 있구나.. 하나의 후회를 떠올리니 봇물 터지듯 앞 다투어 한 생각이 다른 생각을 앞지른다. 어제의 부족한 것이 오늘은 더 잘되었으면 좋으련만 지루함도 모른 채 매일이 반복이고, 매일이 후회이다. 이 후회는 한 번 떠올리면 데굴데굴 굴러 눈덩이처럼 커진 뭉치가 되어 내 명치께를 꽉 누르고 만다.
그날이 그날 같다는 감정은 바로 여기에서 오는 것이구나. 어제의 후회의 지점에서 오늘 또다시 후회하고 있다는 점에서. 유치하게 다른 작은 지점은 전혀 위안은 되지 않고 존재 자체도 희미하다.
그러다가 내 의지대로 무엇을 해 보았나 기억을 더듬어 본다. 어제는 ‘열 문장 쓰는 법‘이라는 책을 다 읽고 덮었고, 오늘은 들추어보며 노트에 인상적인 문장을 옮겨 적었다. 광복절이라서 1900년 초반에 태어나 평생을 일제의 지배를 받았을 내 또래의 누군가를 떠올려 한참을 상상했다 그 이에게 오늘은 어떤 날이었을까. 그리고 내일은 어떤 날일까.
남편의 코로나 확진으로 순간 우울해져서 위로주로 버드와이저를 마셨는데 여태 캔꼭지가 그렇게 생긴 지 몰랐는데 빨간 왕관 모양의 구멍이 보이는 바람에 펜을 들어 대강 그려보았다. 지난주에 빌린 라인드로잉 서적을 보면서 연습을 하고 있던 중이었는데 그래서 보인 것 같기도 하다.
엄마 집에서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차 안 조수석에 앉아 수세미도 하나 떴다. 그리고도 시간이 남아 전자책으로 에세이를 조금 읽다가 꾸벅꾸벅 졸기도 하였다.
삶의 틈새에 사부작 거리며 매일 조금씩 읽고, 쓰고, 잘하지는 못해도 무언가를 그리고, 만들곤 한다. 큰 변화는 두렵고 매일이 같다면 공허한 어느 소심한 변덕쟁이의 선택이다. 어쩌면 나는 작고 안전한 변화를 원해서 그렇게 읽고, 쓰고, 만들어 내는지도 모르겠다.
이 글도. 매우 안전하게. 그러나 어제와는 다른 하나의 점을 더 남겼다.
*인스타에서는 더 자주 사부작거리며 쓰고, 그리고, 무언가를 만들곤 해요.
인스타에서의 반만큼이라도 브런치에서도 사부작거리자!가 작은 목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