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알이 살고 있나요.

by 수수한

"견우와 직녀가 왜 헤어지게 되었는 줄 아세요?"

라디오에서 디제이의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아, 오늘이 칠월칠석이랬지. 왜일까. 왜 헤어졌을까. 곧이어 그가 답을 말했다.

"할 일을 하지 않아서래요. 날씨가 더운 8월이지만 여러분 할 일을 꼭 하세요."

8월이 벌써 4일이 지났다는 아픈 말도 잊지 않았다.

그러네. 어느새 8월 4일이네.


1월의 다짐을 떠올려본다. 12월 마지막 날 자주 가던 커뮤니티에 매우 마음에 와닿는 글을 하나 읽었었다. 정확한 단어와 문장이 기억나는 것은 아니지만 전체적인 내용은 하루도 놓지 않고 알알이 정성스럽게 살겠다는 다짐이었다. 때도 때이니만큼, 쓴 사람이 필력도 좋았던 만큼 여운이 짙은 글이었다. 그 글을 읽은 다음날, 그러니까 올해의 첫날 무엇을 했던가. 기억이 나지 않는다. 그렇다면 그다음 날은? 기억이 나지 않는다.

그러나 올해 살면서 문득문득 그 글이 떠오르곤 했다. 역시나 정확한 단어와 문장이 떠오르는 것은 아니었으나 알알이라는 낱말이 주는 이미지와 함께 밀려오는 하나의 다짐 같은 것이었다. 물론 떠올린다고 해서 갑자기 가열하게 하루를 살아내는 것은 아니었지만.


7월이 시작되었을 무렵 이제 반이 남았네 싶었다. 그래. 남은 반이라도 해보자. 알알이.

그런데 어느새 8월이다. 언제 8월이 되었는가. 8월이 된 것도 모자라서 4일이나 지났는가 말이다. 알알이 살기에 너무나 덥다.

이렇게 시간이 흘러 어느새 12월 31일에 놓일 나를 생각하니 가슴이 시리다. 다시 알알이를 떠올릴 생각을 하니 갑자기 모든 것이 막막하고 지겨워진다.


그러다가 한 뼘, 아니 한 발짝 성큼 뒤로 걸어본다. 조금 더 밖으로 나서본다. 지금의 나를 보고 고개를 왼쪽으로 돌려 작년의 나를 본다. 눈을 크게 뜨고 가까이 대고서 하루하루를 검열하던 눈을 거두고 가늘게 떠본다. 그렇게 가늘게 보았더니 또 다른 삶을 살고 있는 내가 보였다.


더 읽고, 매일을 쓰려고 노력하는 내가 있었다. 쓰기 위해 사진을 찍고 순간을 좀 더 놓치고 싶지 않아 하는 내가 보였다. 글을 내놓는 내가 보였다. 보이는 곳에 글을 쓰지 않는 지난 몇 년이었다.


하루하루를 들여다보면 여전히 성에 차지 않는다. 체계도 없고 루틴도 없고 마음 가는 대로 읽고 쓰고 있다. 발행은 하지 못하고 서랍 속에 구겨 놓은 글만 쌓여간다. 해야겠다고 새겨둔 머릿속의 리스트들은 늘 실행하지 못한 채 무게를 하루하루 더해가고 있다.


다시 희미한 눈을 뜨고 뒷걸음질 쳐본다. 더 즐겁게 읽고 즐겁게 쓰고 있는 나를 만난다. 가까이 다가가면 실망스러울지는 몰라도, 재미있게 무언가를 하고 있는 순간들이 많아진 나를 바라본다. 물론 모든 시간이 즐거움의 선으로 이어진 것은 아니다. 그저 점, 그리고 점 서로 떼어진 순간순간이 재미있는데 그 점이 더 잦아들었다는 것뿐. 참 쓸모없어 보이는 일을 하고 있는데 재미있어하는 철없는 삶을 살고 있는 나를 게슴츠레한 눈으로 바라본다.


눈도 크게 떴다가 작게 떴다가 할 일이다.









8월 4일에 썼다가 서랍에 넣어둔 글을 이제야 다시 읽고 발행 버튼을 누르련다.

희미하게 눈을 뜨고 한걸음 물러나 바라보니 그사이 사부작 거리며 사고, 한 것들이 보인다.

8월에 남겨둔 이 글이 있어 9월의 내가 알아차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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