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언가를 시작해서 꽤 오랫동안 꾸준히 하게 되면 스스로에게 새로운 명칭을 허락해준다. 가장 욕심이 나는명칭은 '매일 쓰는 사람'인데 자신 있게 쓰기에 솔직히 마음에 걸린다. 인스타에 쓰는 짧은 토막글을 글이라고 갈음하기에 내 양심이 꺼리는 것이다. 내가 생각하는 '매일 쓰는 사람'은 적어도 워드나 브런치의 오직 하얗고 광활한 공간 위에 커서만을 마주하고 묵묵히 문장으로만 채워나가는 장면을 하루에 끼워 놓는 이이다.
4개월 전부터 오늘에 이르기까지 아슬아슬하게 허락해주려는 명칭이 있는데 '요가하는 사람'이다. 물론 내가 요가를 등록하지 않았더라면 당연히 가지지 못했을 명칭인데, 나는 운동에 있어서 그 어느 분야보다 의지력이 떨어지기 때문에 혼자 한다면 한두 번 시도해보고 말기가 일쑤이기 때문이다. 지난 4개월 요가를 다니는 동안 올여름의 엄청난 비에도 불구하고 단 하루도 빠지지 않았고(물론 주 2회만 다닌다.), 마침 요가원 이사로 프로모션을 하기에 당장 등록할 차였는데 3개월을 등록하면 1개월을 공짜로 더 붙여주신다 하니 이를 마다할쏘냐! 앞으로 4개월은 더 요가를 다닐 예정이다. 즉 별다른 일이 없다면 내년 1월의 마지막 날 무렵 적어도 8개월은 꾸준히 요가한 사람일 예정이다. 하여 미리 '요가하는 사람'이라는 명칭을 내게 허락한다. 절대로 요가 잘하는 사람이라고 말하지는 않았다.
요가를 시작한 그날이 없었다면 오늘의 나는 이 명칭을 가지지 못했을 것이다. 그러고 보니 올 한 해 새롭게 시작한 것들이 몇 보인다. 재미있는 것은 그 시작은 비장하지 않았고, 어느 것은 전혀 계획적이지 않았으며, 때때로 저절로 흘러 어쩌다 보니 시작한 것들 투성이었다. 어느 한 축을 간략하게 언급해볼까?
몇 년 전 내가 쓴 일기를 보고 내 마음이 쿵 내려앉았다. 쓴 줄도 기억하지 못하고 살고 있었는데 그 한 편의 글로 그동안 남겼던 글들을 쭉 읽어보았다. 읽으면서 더 적었을 걸 아쉬워했고, 앞으로 매일 쓰는 사람이 되리라 작은 결심을 했다. 아마 그다음 날인가 브런치 작가를 도전했었던 듯하다. 며칠 뒤 브런치 작가 합격 소식을 들었고 정말로 매일 쓰는 사람이 되고 싶다는 마음이 들었다. 그간 플랫폼 핑계를 대며 이리저리 전전하며 마음 붙이지 못한 글쓰기는 핑계에 지나지 않았다. 나에게 브런치라는 새로운 공간이 생겼으니까.
그러나 브런치는 매일 쓰고 발행하기에는 다소 무거운 플랫폼이었다. 매일 쓰기로 한 나와의 약속을 지키기 위해 가볍게 쓸 수 있는 또 다른 공간이 필요했다. 그곳이 인스타였다. 인스타를 시작하던 시절, 글을 올리는 것이 부담스러워 만든 지 한참이 되었는데 방치된 공간이나 다름없었다. 그러나 브런치와 병행할 매일 글을 쓸 공간이 필요했기에 인스타는 더 이상 부담스러운 공간이 아닌 브런치보다 가벼운 공간으로 다가왔다. 역시 상대적인 것이다.
문제는 사진을 고르는 일이었다. 인스타에 글을 올리려면 사진이 필요했는데 사진을 준비하는 일이 참 어려웠다. 쓸 말은 떠오르는데 적당한 사진을 고를래야 고를 수가 없어 난감하던 때도 있었다. 그래서 전보다 더 자주 사진을 찍게 되었고, 그러다 보니 별 것도 아닌 일상이 특별하게 여겨졌다. 그날이 그날 같았던 일상이 매일이 조금씩이 이라도 다른 점 하나 정도는 있다는 것을 발견하게 되었다. 때로는 찍어둔 사진을 보고 첫문장이 떠올라 글을 쓰기도 하였다. 그렇게 매일을 사진을 찍고, 인스타에 글을 올리는 사람이 되었다.
독서를 하면서 필사하는 습관은 오랫동안 가진 습관이었으나 몇 년 전 한 권의 독서노트를 온전히 마무리 지은 뒤 마음에 드는 노트를 찾지 못하여 여러 형태의 노트와 워드를 전전하던 시절이 꽤 길었다. 그러다 올해 새롭게 시작한 노트에 머물러 진득하니 쓰기 시작했는데 마침 가지고 있던 만년필이 망가지는 비극이 벌어졌다. 대체할 만년필을 찾아보다가 만년필의 세계에 눈을 떴고 어느새 만년필을 다섯 자루나 가지게 되었는데 더 가지고 싶어서 얼쩡거리고 있으니 이것 큰일이다. 만년필을 사면서 함께 산 작은 노트가 있었는데 이 노트가 만년필을 얼마나 견뎌낼지 테스트를 해본 뒤 몇 권 더 사보고 싶었고, 그 테스트란 것이 간단히 끄적인 일기 형태의 그림이었는데 마침 만년필의 재미에 눈을 뜬 만년필 초보는 자꾸 만년필을 써보고 싶었던 것이다. 그래서 며칠 연속 그림일기라는 것을 쓰고 인스타에 올리고 있는데 전에 그림을 그렸던 때와 다르게 재미있고 부담 없고 자유로움을 느끼게 되었다. 그림일기를 매일 쓸 생각이 결단코 없었는데 어쩌다 보니 8월 22일에 시작한 그림일기는 오늘에 이르러 한 달이 넘도록 하루도 빼먹지 않고 지속하게 되었다.
지난 몇 개월 동안 사부작 거리며 내가 시도한 것들을 바라보니 요가하는 사람, 책 읽는 사람, 독서 노트를 쓰는 사람, 인스타를 하는 사람, 브런치 작가, 만년필을 좋아하는 사람, 그림일기를 쓰는 사람이 되어있었다.
이 시작을 나의 몇 년 전 일기를 펼쳐 본 날이라고 해야 하나, 아니면 몇 년 전 일기를 썼던 밤들이라고 해야 하나, 망가진 만년필의 날이라고 해야 하나. 아니면 그 전으로 거슬러올라가 나는 기억조차 하지 못하는 다른 무엇이라고 해야 하나.
시작이 무엇이었든 그 무언가를 했기에 파장을 일으키듯 하나가 다른 하나를 할 수 있도록 물꼬를 터준 셈이 되었다. 다만 그 속도의 문제인데 하지 않고 멈추어 있는 시간이 오래되면 새로운 것의 등장의 속도는 현저히 느렸고, 그것이 무엇이든 계속하고 있다면 부지런히 다른 곳으로 가닿았다. 하나의 세계는 그대로 머무르는 법 없이 내가 전혀 생각하지 못한 다른 세계로 확장을 해나갔다. 확장이 옳다 그르다를 떠나 재미있는 것이 내 삶 안에 많아졌다. 나를 즐겁게 해주는 것을 더 잦게 하는 사람이 되었다.
요가를 마치고 건물 밖으로 나서 까만 밤 속으로 들어온다. 건너편 건물 2층이 밝게 빛나는 데 그곳은 복싱 학원이다. 요가를 마치고 나왔기에 한결 가뿐해진 몸으로 시원한 가을바람을 맞으며 횡단보도 앞에서 신호가 바뀌기를 기다린다. 내 시선이 머무는 곳은 바로 그 복싱 학원. 그곳의 사람들은 날렵하고 제각각 분주하다. 기구를 이용하여 운동하는 사람, 홀로 점핑을 하는 사람도 있고 마주 보며 스파링을 하는 사람도 있다. 무음의 움직임을 바라보며 저 안의 소음과 땀냄새와 온도를 상상해본다. 그들은 요가의 세계에서 방금 나와 자신들을 바라보는 한 여자의 시선을 눈치채지 못할 것이다.
내가 내 세계를 확장시키는 동안, 저들은 어떤 방향으로 그들의 세계를 확장시키고 있을까. 나는 절대 알지 못할 그들의 세계를 상상하며, 지금은 알지 못하지만 앞으로도 내가 갈 수 있는 수없이 많은 세계가 있음을 겸손하게 새겨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