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 저 다꾸하는 어른이에요.

by 수수한

"궁금해서 물어보는 건데 다꾸를 왜 하는 거야?"


종이 위에 이 종이, 저 종이, 스티커를 대보고 있는 나에게 짝꿍이 진심으로 궁금해하며 묻는다. 비난과 힐난의 어조가 아니라 진심으로 궁금함이 역력한 질문이다. 정말 많은 취미가 스쳐 지나갔고 주기적으로 그 취미를 다시 붙들곤 하는 나에게 단 한 번도 하지 않은 질문이었다. 다른 취미들은 다 그럴만하게 납득할만한 이유가 있어 보였 나보다.


나는 비난과 힐난이 아니라 진심으로 궁금한 것이라고 어떻게 확신할 수 있는가? 왜냐하면 나도 정말 궁금하기 때문이다.


"그렇지? 왜 하는지 정말 모르겠지? 나도 정말 왜 하는지 몰랐거든? 나는 그래도 글씨라도 쓰지 종이와 스티커만 잔뜩 붙이는 다꾸들이 대다수야. 특히 스티커 위에 또 스티커를 붙여서 이미 붙인 스티커는 가려서 반쯤은 보이지 않을 때도 있어. 너무 아깝지? 정말 정말 왜 붙이고 있는지 몰랐거든?

그런데 해보니까 알겠어. 붙이다 보면 재밌다? 남들 스티커 잔뜩 붙이는 거 구경해도 그게 그렇게 힐링이 된다?"


그리고 덧붙인 말

"붙여볼래?"

물론 짝꿍은 손사래를 치며 거절했지만, 나의 답변에도 궁금증이 풀린 눈치는 아니다. 우리 둘의 대화를 다꾸의 세계에 동참하고 있는 큰 딸에게 말해주었더니 고개를 크게 끄덕이며 말한다.

"맞아 맞아!"

고개를 끄덕인 시점은 짝꿍이 질문한 순간이 아니라 장황한 나의 답변 부분이었음은 말할 것도 없다.





내 답변을 곰곰이 생각해보니 방점은 여기에 있었다.

해보니까 알겠다.

나도 해보니까 알겠고, 딸도 해보니까 알겠는 것이다. 이것을 말로 표현하는 것이 가능할지는 모르겠지만 분명하게 아는 것이다. 무엇을? 재미있다는 것을.


취미라는 것은 재미있어야 가능하다. 재미가 빠진 취미는 열망에 의한 욕심으로 취미와 결이 달라진다. 영어를 잘해야 한다는 압박감과 욕망이 점철된 상태에서 하는 공부는 그야말로 공부가 된다. 여기에 재미가 있다면 취미의 영역으로 등극할 수 있다. 단, 취미는 재미가 없어지면 언제든지 그만둘 수 있는 무게의 것이어야 한다. 시들해져서 그만두고 싶어질 때 미련이란 것이 남는다면, 게다가 그 미련의 정체가 욕심이라면 더 이상 취미의 왕좌를 차지할 수 없다. 고스란히 그 자리를 내어주고 영어 공부하는 사람으로 남아야 할 일이다.

그러니 이 재미와 욕심의 줄타기를 잘해야지만이 꾸준히 취미라는 이름으로 지속할 수가 있다. 재미가 시들해진다 해도 낙담할 필요는 없다. 많은 취미가 스쳐 지나간 사람으로 장담하건대 사그라든 재미는 언젠가 한 두 번 불꽃이 피어나기 마련이다. 다만 그 불꽃이 몇 년 뒤일지 장담할 수 없다는 것, 관련 장비와 재료를 소유하고 있을수록 다시 시도하기가 편하다는 것. 취미의 많은 부분은 지름이 선행되어야 가능한데 지름의 과정은 이미 완료되었기 때문에, 하다가 그만둔 취미는 첫 관문의 허들을 비교적 쉽게 넘을 수가 있다. 마음이라는 것은 변덕이 죽 끓듯 해서 지금 하고 싶은 마음이 내일까지 지속되리라는 보장이 없는데 취미의 물품들이 구비되어 있다면 간편하게 꺼내 바로 시작할 수 있다. 이러한 이유로 나의 베란다 창고와 서랍 곳곳에는 다양한 취미의 흔적이 남아있다. 취미의 뭉치들과 함께 살아간다. 둘러보면 사방에서 지저귄다.

"네가 했던 것들이야!"


재미는 떨어졌는데 욕심이 나서 계속 잘하고 싶은 마음이 커지면 어쩌란 말인가. 그러면 계속하면 된다. 무엇을? 공부를. 취미의 왕좌를 내어주고 재미가 없음을 깔끔하게 인정하고, 그러나 꾸준히 열심히 욕심내어 공부하면 된다. 다만 재미가 없음에 괴로워하며 자괴감에 빠지진 말자. 공부란 그런 것이다. 언젠가 재미가 다시 찾아올지 모른다. 느닷없이 재미가 떠났던 것처럼. 그렇게 되면 또 맞이하면 된다. 취미의 왕좌를 내어주면서.



짝꿍에게 대답했긴 했지만 나조차도 제대로 설득시키지 못한 취미이기는 하다. 그래서 구차하게 하나하나 늘어놓는다. 예쁘게 꾸미려다 보니 미적 감각과 색채감이 늘어난 것 같다. 다양한 재질을 매치시키고 나름의 스토리를 짜서 다꾸를 하다 보면 창의력도 계발되는 것 같다. 따위의 문장을 늘어놓으며 구구절절 생각해보다가 어젯밤 다꾸를 하고 있는 나를 물끄러미 바라보며 픽 웃으며 한 큰 딸의 한마디가 떠오른다.


"귀엽다."


"무.. 무엇이?"


"이 종이, 저 종이 대어보며 입꼬리가 올라가서 뿌듯해하는 엄마의 표정이."


내가 그런 표정을 지었나? 나도 모르는 사이에 그런 표정을 짓고 있었나 보다. 즐거운 마음이 입가까지 새어나갔나 보다. 생각해보니 사람들이 돈들이고 시간들이며 상담을 받으러 다니고 각종 테라피를 받기도 하는데 이것도 치유고 테라피의 일종이지 뭐.

이렇게 또 구차한 이유를 한 가지 덧붙여본다.





간간이 꽁냥꽁냥한 다꾸를 소개합니다.

또 취미의 합리화를 위해서 읽은 책들로 하고 있어요. 이렇게나 취미를 지속하기 위해서는 나를 설득할 수 있는 갖가지 이유가 필요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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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로 오시면 저의 꼼지락거림을 구경하실 수 있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