잔나비의 <주저하는 연인들을 위해>를 틀었다. 아침 공기를 잔뜩 이 노래로 채웠다. 다소 차가워진 아침 공기에 딱인 노래이다. 내가 이 계절에 태어난 것을 매 해 만족스러워한다. 옷장을 열어 좋아하는 아래로 확 펼쳐지는 카멜색 플레어스커트를 고른다.
생일인 내가 듣고 싶은 노래와 입고 싶은 옷을 고를 줄 아는 어른으로 자란 나를 기특해한다. 아무도 들리지 않게 마음 안에서 나에게 '생일 축하해'라고 말한다.
어른이 되어서 생일은 그렇게 반가운 날이 아니다. 카톡에 번쩍일 생일 축하 표시가 민망할 것이 분명하여 이런 것이 있다는 것을 알았던 즉시 꺼둔 지 오래이다. 다른 날보다 특별해야 한다는 생각 때문에 오히려 무거운 마음으로 보내게 될 때가 있다.
나는 누군가의 생일을 진심으로 온 마음으로 다해 기뻐했던가? 그저 감사합니다, 안녕하세요처럼 생일을 알아차렸다면 '생일 축하합니다'라고 인사치레로 말하지 않았던가. 언제부터인가 이만큼의 무게의 문장을 더는 듣고 싶지 않아서 더더욱 생일을 밝히지 않고 조용히 그날을 지나가는 것을 선택하게 되었다.
나에게 생일이란 개인정보와 같은 느낌이다. 지극히 사적이라 가족과 나까지만 공유했을 때 부끄럽지 않은 영역이 되어버렸다. 대신 가족에게는 내 생일을 인지시키며 마음껏 누린다. 왜냐하면 생일을 너무나 소중히 여기는 꼬마 둘과 살고 있기 때문에 그들 앞에서는 내 생일도 그만큼의 가치를 두고 싶어 진다. 생일을 소중히 여기는 사람에게는 축하받고 싶어 진다. 얼마만큼의 무게로 축하해주고 있는지 알기에.
9월이면 어김없이 날이 너무 좋은 날들을 여러 번 맞게 된다. 그럴 수밖에 없다. 8월의 더위가 가시고 나면 9월의 청량한 공기와 구름 한 점 없는 하늘, 맑은 공기는 축복이라는 생각밖에 들지 않는다.
"내 생일 달이야. 누려!"
양팔을 한껏 벌려 시원한 공기를 가로지르며 거만하게 말하면 나의 사랑하는 박 씨 셋은 별다른 반항 없이 순순히 받아들이다.
이렇게나 생일에 무게를 두는 자들이다.
생일인 날은 아침부터 잠들기까지 '엄마 생일인데'라는 구절 없이는 문장이 완성되지 않는다.
"엄마 생일인데 빨리 일어나야지. 내 생일이 짧아지잖아."
"엄마 생일인데 밥 빨리 먹어줘."
"엄마 생일인데 너희가 할 일을 해야 엄마 마음이 편하고 기쁘지."
이런 식이다.
올해는 하나 더 넣어서 존댓말을 써달라고 했더니 큰 꼬마는 하려고 노력하는데 작은 꼬마는 나에게 말을 잘 걸지 않는다...ㅋㅋㅋ
문득 생일인 오늘 이들이 내 곁에 없다면 내 생일은 어떻게 될 것인가 생각해보았다. 순간 끔찍하고 쓸쓸해진다. 어제와 별다른 일없는 생일날이지만, 어제와 별다른 일 없는 오늘이어서 다행 이어진다.
엄마의 축하 문자를 받고 마흔이 넘은 딸의 생일을 축하하는 엄마의 마음은 어떨까 생각이 들었다. 그때도 딸은 어린 딸일까.
나는 우리 작은 꼬마가 마흔 살 생일을 맞았을 때 어떤 마음으로 생일 축하 문자를 보낼까. 그때 바라보는 나의 딸들은 어떤 모습이며, 나는 어떤 마음으로 그들을 바라볼까. 우리는 어떤 관계일까. 그때의 나의 모습은 어떤 엄마로 그려지고 있을까. 생각이 꼬리를 물다가 나의 나이를 계산해보니 작은 꼬마가 마흔이 넘으면 나는 일흔이 넘는구나.. 그때도 우리 딸들 축하해주려면 나 열심히 운동하고 건강해야겠네. 지금 나의 생일을 축하해줄 우리 엄마, 아빠가 없다는 것은 생각조차 하기 싫으니까. 나도 꼭 우리 딸들의 마흔 번째, 그 뒤의 생일도 축하해주어야 할 텐데.
오늘의 그림일기는 물론 생일에 관한 그림과 글이다. 그러나 인스타에 오늘 개재하지는 않을 것이다. 생일 축하한다는 댓글이 부끄럽고, 아까 언급한 것처럼 안녕하세요와 큰 차이 없는 무게의 인사말을 은연중에 강요하고 싶지는 않기 때문이다.
단, 하루 지난 뒤에 올리는 것은 괜찮겠지. 더 이상 생일이 아니니까. 난 뻔뻔하고 당당하게 내 그림과 글을 올릴 테다.
누구나 다 그렇겠지만 내 생일의 날짜를 참 좋아한다. 생김새도 좋아하고 많고 많은 날짜 중에 그 날짜만이 동동 떠 내 눈에 들어온다. 참으로 적절한 위치에 잘 자리 잡고 있다고 생각한다.
내 생일 다음날에 생일을 축하해주는 친구들에게 늘 농담조로 이렇게 말하곤 했다.
"다음 달에 생일을 축하하다니, 완전 무효야!"
내일은 새 달이 열린다. 생일 다음에 하루 더 축하받는 기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