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어나야지! 오늘 소풍 가는 날이잖아."
현장체험학습이라는 명칭이 사용되는 요즘이지만, 왠지 소풍이 더 와닿는 느낌이다. 너무 예쁜 낱말인데 소풍. 가볍고 다정하고 산들거리는 낱말.
아침마다 눈뜨기가 어려웠던 어린이는 소풍이란 말에 스르륵 이불 밖으로 나온다. 평소보다 한 시간은 일찍 일어나 싼 도시락을 아이에게 보여주며 허락을 구한다.
예쁘다는 말이 듣고 싶었던 모양이다. 내 마음이.
아이는 예쁘다고 말하고 좋아하는 표정이다.
오늘은 둘째 꼬마 입학 후 첫 현장체험학습이다. 아이의 말로는 같은 반 친구들 중에서는 어린이집이나 유치원 시절 때 현장체험학습을 가지 않아 이번이 처음인 아이들도 여럿이라고 했다.
어제 37도 중반에서 오르락내리락하던 아이의 체온. 아이가 울먹였던 이유가 몸이 안 좋아서였는가 싶었는데 다음날이 체험학습이라 가지 못할까 봐 걱정이 되어서 그랬던 것이다. 잘 먹고, 잘 자야 열이 오르지 않는다고 말했더니 평소보다 바쁘게 숟가락질을 하고, 평소보다 1시간은 이른 시간에 순순히 잠을 청하러 들어갔다. 그리고 번쩍 눈을 뜬 오늘 아침까지. 퍼펙트하다.
무엇을 좋아하는 마음이란 이런 것이구나. 하고 싶은 마음은 이런 것이구나. 아이의 아침을 통해 알아차린다. 좋아하는 일이 아주 가볍게 마음에 톡 떨어지면 누가 무어라 하지 않아도 마음의 파장이 순식간에 퍼져 손과 발이 저도 모르게 움직이게 하는 것이다. 그중 가장 보기 좋은 움직임은 웃는 입꼬리이고 눈매이다. 타인이 억지로 힘을 가해 당길 수 없는 입꼬리와 눈매는 아주 작은 마음의 파장만으로 쉽게 위며 아래로 움직인다.
매일 소풍을 갈 수는 없고 일상을 살아내야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소풍보다 훨씬 덩치가 작은 이벤트의 조각이라도 하루의 틈에 넣어두어야 한다는 다짐을 다시금 해본다.
어른의 취미란 쓸모와 소용을 자꾸 찾게 되고, 때로는 부끄러워진다.
그 누구도 무어라 하지 않았건만 끄적이고 오리고 붙이고 만드는 동안 재미있으면서도 마음 한편은 종종 무겁곤 한다. 다른 어른처럼 그럴듯한 어른스러운 일을 해야 할 것 같은데 나는 너무 현실성이 없는 존재가 된 기분이야. 학교에서 공부는 안 하고 딴짓하고 있는 학생처럼, 사회에서 응당 해야 하는 것은 하지 않고 쓸데없는 짓만 하고 있는 것인가 질문을 던지고 움츠러든다.
자꾸 질문을 던지는 나에게 오늘은 대답 하나 해줄 수 있어서 서둘러 적어본다. 쓸모를 꼭 찾아야 하는지 모르겠지만 굳이 찾아서 조금이라도 위안을 받고 싶다면 오늘 아침에 내 작은 꼬마의 미소를 기억해보자. 무언가를 기대하고 설레어하고 좋아할 때 가질 수 있는 그 표정을, 그 마음을.
어떻게 하면 그 표정과 마음을 살 수 있을까. 나이가 들어갈수록 생일조차 설레지 않는 나인데. 그렇다면 비교적 손쉽게 즐거운 마음을 가질 수 있는 방법을 몇 알고 있는 셈이니 거추장스러운 죄책감 따위는 툭툭 털어내 버리자. 성가진 마음의 재가 묻으면 안 하느니만 못해지니까.
언제나 생각은 접어두고 온전히 마음만 다하여 즐거울 수 있을까. 어린 시절은 분명히 그랬을 텐데. 알았던 것을 잊고 다시 배우는 것은 더욱 어렵다.
아이는 즐거운 하루를 보내고 와서 주워온 작은 알밤을 내게 보여주었다. 딱 한 알이었다. 현장체험학습에서 나무토막에 색연필로 칠한 목걸이를 밤이 되도록 내복 입은 뒤에도 목에 걸어두고 뺄 줄을 몰랐다. 자기 전엔 빼야 한다고 달랜 뒤 잠자리에 들게 했다.
이 작은 한 알의 알밤으로 무엇을 해 먹을 수 있을까. 밖에 차고 나가기 부끄러운 투박한 목걸이는 아닐까. 그런 판단 없이 오로지 반갑고 설레며 가져왔을 주워온 알밤과 목걸이를 바라보며 오늘 낮부터 묻혀온 아이의 마음을 더듬어본다. 엄지손가락으로 아이가 선반 위에 얹어두고 간 나무 목걸이의 표면을 문질러본다. 생각보다 보드랍다. 자꾸 문지르게 된다. 자세히 보니 보이는 나무의 테가 곱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