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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하마글방 Jun 23. 2020

테세우스의 배

하마글방 6기 리니어의 글

지금도 그 표정이 잊히지 않는다. 눈을 뜬 것 같기도 하고 감은 것 같기도 하고. 어딘가 기묘하다고 밖에 표현하지 못할 얼굴을 하고 네가 누워 있었다. 평소엔 누구보다 일찍 일어나 나머지 친구들을 깨우던 네가 아무리 흔들어도 반응이 없었다. 공부 스트레스가 심하면 이렇게 기절도 하는 건가? 숨은 쉬지? 남은 우리는 그런 말을 주고받으며 침대 주위에 옹기종기 모여앉아 있었다. 연락을 받고 온 119 대원이 너를 들것에 옮기며 이미 죽은지 몇 시간 지났다고 할 때도 우리는 그게 무슨 말인지 잘 이해하지 못했던 것 같다. 그저 어디가 아픈 줄로만 알고 우리끼리 네 손을 꼭 잡고, 그와중에 네 이불의 부드러움에 감탄하고 있었는데 사실은 사망한지 여섯 시간 남짓된 시체를 붙들고 있었다는 사실이 당혹스러웠다. 이불을 만지작거리다 돌연 갈 곳을 잃은 손과 태어나서 처음 보는 기묘한 표정. 그게 내가 너의 죽음에서 받은 첫인상이었다.


참고인으로 조사를 받을 때부터 네 짐을 정리할 때까지 나는 계속 어리둥절했다. 장례식장에서 먹은 육개장, 그 와중에 해야 하는 중간고사 공부, 졸지에 4인실에서 3인실이 되어 버린 우리 방까지 죄다 어리둥절했다. 빙하기 이후로 멸종한 줄 알았던 공룡이 갑자기 교실 창문으로 날아든 것 같았다고 하면 이해할까? 내가 지금 뭘 겪고 있는 건지, 이제 무엇을 믿고 무엇을 해야 할 지 아무 것도 종잡을 수 없었다. 네 영정사진 앞에서 내장을 쏟아내든 울면서도 절을 두 번 하는 게 확실한지 옷은 이런 걸 입는 게 맞는지 따위가 신경 쓰였다. 죽음은 미디어로밖에 접해보지 않아서 어색했다. 예습할 기회가 있었다면 좀 더 자연스럽게 대처할 수 있었을까? 하지만 몇 년 전 친할아버지의 장례식을 가보니 딱히 그렇지도 않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두 장례식의 풍경은 너무나 달랐다. 할아버지는 아흔이 넘어 돌아가셨기 때문에 당사자도 우리도 그 죽음을 준비할 시간이 충분했다. 그래서 모두가 눈물을 훔치면서도 그 분의 평안한 마지막을 축하해 줄 수 있었다. 하지만 너에 대해선 그럴 수 없었다. 중간고사 공부를 새벽까지 한 다음날 아침 룸메이트가 자살한 채 발견될 가능성 같은 건 단 한번도 생각해 본 적 없었으니까. 그런 소설도 읽어본 적 없었다.


아주 오래간 너에 대해 생각했다. 왜 그랬을까. 마음 먹은 계기는 무엇이었을까. 사람들은 참 쉽게 결론지었다. 너도나도 공부 열심히 하는 학교에서 학생이 죽었으니 성적 비관이 아니겠냐. 기숙사 학교니까 교우관계 스트레스가 있었나보지. 참 간단명료했다. 죽을 거면 집에서 하지 학교에서 괜히 사건을 일으킨다고 툴툴대던 선생도 있었고, 네가 어느 선배와 성관계를 가지고 임신해서 그랬다는 소문을 들었다며 내게 확인하는 이도 있었다. 너는 자살을 했지만 나는 살인이 하고 싶었다. 하지만 당시에는 그 따위 질문에 화가 치미는만큼 '글쎄요. 모르겠는데요.' 밖에 답할 수 없다는 사실이 슬펐다. 나는 너의 자살에 짐작가는 바가 없었다. 동아리 활동도 같이 했고 매일매일 같은 2층 침대에서 잠들었는데 자살은커녕 네가 무언가로 힘들어하고 있다는 사실조차 몰랐다. 그래서 어느 날 그렇게까지 친한 친구도 아니었지 않느냐고, 이제 그만 힘들어 하란 말을 들었을 때 입을 다물었다. 너와 내가 정말 친구였는지, 내가 겪은 괴로움과 아픔이 정말 너를 잃은 슬픔인지 아니면 내 일상이 무너진 것에 대한 두려움인지 자신이 없었으니까. 그리고 후자면 내가 나를 용서하지 못할 것 같았으니까.


그렇게 십년이 지났다. 흔히들 강산이 바뀌는 세월이라 표현하지만 이렇게까지 모든 게 바뀌는 줄은 몰랐다. 수학자 외에 내가 택할 길은 없다고 철석같이 믿었는데 수학자가 되긴 커녕 근의 공식도 가물가물하고, 당시 만나던 남자친구와 긴 미래를 꿈꿨다는 게 우습게 느껴질 정도로 다양한 연애를 했다. 지금의 나는 그때와 전혀 다른 친구들과 함께하며 전혀 다른 것에 웃고 운다. 그리고 전혀 다른 미래를 그린다. 그때의 내가 지금의 나를 본다면 절대 10년 뒤의 자신이라 생각하지 않을 것이다. 이렇게 옛날과 지금 사이의 괴리감을 느낄 때마다 테세우스의 배를 떠올린다. 영웅 테세우스가 타고 온 배를 기념으로 보존해 두었는데 그 중 합판 한 장이 낡아 새 합판으로 교체하고, 또 하나가 낡아 교체하고, 그렇게 모든 합판을 교체하고 나면 그 배를 여전히 테세우스의 배라고 부를 수 있냐는 내용의 역설. 하지만 나는 아무리 많은 합판을 새 걸로 갈아끼워도 너의 죽음이라는 합판을 여전히 가진 이상 그건 틀림없이 나라고 믿었다. 달리 말하자면, 내가 나로 있기 위해선 너라는 합판을 버리지 말아야 한다 생각한 것이다. 어느 순간이든 너를 조금은 기억하고 조금은 미안해 해야 한다고. 네 몫까지 최선을 다하는 게 좋은 거라고.


그런데 십년이나 지나서일까. 나는 이제 그 마지막 합판이 좀 지겹다. 이제 와서 솔직히 얘기해 보자면 너는 내 맘에 쏙 드는 친구도 아니었다. 우리가 함께 수학여행을 갔을 때 너는 단체버스 안에서 엉망진창으로 자고 있는 내 모습을 영상으로 찍어다 당시 내 남자친구에게 '장난삼아' 보내려 할 정도로 행동에 거리낌이 없었다. 내가 뭘 해야 그 영상을 지우겠냐는 애원에 넌 돈을 답했고 난 망설일 틈도 없이 동의했었지. 후에 다른 친구들에게 이 일이 알려졌을 때 너는 질타를 받았지만 지금 생각해봐도 그건 네가 나빴다. 아마 네가 살아있었어도 2020년의 우리는 그다지 친하지 않았을 것이다. 하지만 죽은 사람과는 절교도 쉽지 않다. 내가 너와 싸우든 다시 화해하든 그건 모두 내 머릿속에서만 벌어지는 일이고, 2010년에 머물러 있는 너는 말이 없으니까.


대학 입시 자기소개서에 네 이야기를 쓴 적이 있다. 당시 내가 지원한 학교는 내부에서 자살 사건이 연달아 터져 뉴스에 이름이 오르내리는 등 제법 시끄러웠고, 난 내가 그 학교에 맞는 인재라는 걸 강조하고픈 마음에 네 얘기를 썼다. 또 그런 일이 있더라도 난 잘 이겨낼 수 있을 거라고. 그걸 읽은 입학사정관들이 무슨 생각을 했을지는 모르지만 나에겐 그 자기소개서가 잊을 수 없는 죄책감이었다. 너를 내 서사의 소재로 쓴 게 미안했고, 그래도 대입이 더 절박했던지라 후회는 되지 않아서 더 미안했다. 이따금 술기운을 빌어 네 얘기를 누군가에게 하고 나면 또 미안했다. 당혹스러워하는 상대에게 미안하고 나에게는 환멸이 나고. 그렇게 평생 미안해 해야 할 거 같았다. 그렇지만 이제는, 한걸음 더 뻔뻔스러워 지려 한다. 


너는 우울증을 제때 치료받지 못한 나머지 병사했다. 친구의 병사에 대해 나를 탓하는 건 이상한 일이다. 물론 네가 좀 더 현명해서 병을 일찍 알았거나 내가 새벽 공부를 한 시간만 덜 하고 방에 돌아와 너를 만났다면 좋았겠지만 그런 ‘만약’은 밤하늘의 별만큼이나 많으니 그만 셀 것이다. 언젠가부터 너에게 미안하지 않았고, 그 이전에 사실 너를 많이 잊었다. 네가 줬던 편지를 다시 읽어봐도 뭘 하다 이런 편지를 받았는지 기억이 잘 나지 않더라. 하지만 그걸 갖고 초심을 잃었다며 나 자신을 탓하진 않을 것이다. 왜냐면, 너는 더 이상 나의 초심이 아니니까.


너는 더 이상 나를 구성하는 마지막 합판이 아닐 거니까.


작가 리니어

소프트웨어 엔지니어. 서브컬처와 장르문학을 좋아합니다. 여성을 비롯한 비주류의 이야기에 관심이 많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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