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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하마글방 Jun 22. 2020

작별 일기

하마글방 6기 경하의 글

인사를 하지 못하고 떠나보낸 것들을 헤아려본다. 자주 가는 아늑한 카페 두 곳을 소개시켜준 친구는 문득 연락을 끊었고, 얼마 지나지 않아 그 카페들도 아무런 소식 없이 영업을 종료했다. 대학을 향해 질주하는 사람들 속에서도 꾸준히 독서 모임을 열던 기간제 선생님은 말 한 마디 없이 학교에서 사라졌고, 죽을 계획을 세우던 시절을 살아내게 해준 밴드의 가장 좋아하는 멤버는 돌연 탈퇴 소식을 전했다. 몇 분이고 엉덩이를 두들겨달라고 야옹대던 사랑스러운 고양이가 이제는 세상에 없다는 이야기도 나중에서야 전해 들었다.


예상치 못한 순간에 꼭 여러 개씩 찾아오는 헤어짐에 숨이 턱턱 막혔다. 우리가 마지막으로 마주한 순간이 언제였더라 돌이켜보며 몇 시간을 보내기도 했다. 그 때 한 번 더 안아줄 걸, 그 때 한 번 더 대화 나눌 걸, 그 때 한 번 더 찾아가볼 걸, 그 때, 한 번 더. 공허한 단어들을 얼마간 되뇌다 보면 이게 다 무슨 소용인가 하는 생각이 들었고, 후회하기를 그만두자고 다짐했다. 그 다짐은 지켜본 적이 없다. 갤러리를 정리하다 낯익은 사진을 마주할 때나 선생님과 함께 읽은 책을 서점에서 발견하는 순간에는 반드시 어떤 장면들이 떠오르고, 약간의 후회와 함께 오묘한 그리움이 피어올랐다. 하지만 기억들은 사라지지는 않더라도 분명 희미해졌고, 그럼 또 떠나간 것들의 빈자리를 다른 사랑들로 메꾸고는 했다.      


그러던 어느 날, 어떤 여자가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는 헤드라인을 보았다. 그와 나는 아무 사이도 아니었지만, 너무나도 자유롭고 아름답게 자신의 색깔을 펼쳐보이던 그가 세상을 떠났다는, 그것도 스스로 떠났다는 소식에 나는 얼어버렸다. 꼴 보기 싫은 이들에게 가운뎃손가락을 날리는 것 같은 스크린 속 그의 모습들이 끊임없이 떠올랐다. 누구보다 건강한 개성과 단단한 마음을 지닌 듯 한 사람도 자신의 삶을 견디지 못할 수 있다는 사실에 머리를 한 대 얻어맞은 것 같다가, 나에게 해방감 그 자체였던 그에게 따뜻한 한 마디를 건넬 생각조차 하지 못한 내가 죽고 싶을 만큼 원망스러웠다.      


그날 이후 내 일과는 침대에 힘없이 엎어져 그의 생전 인스타그램 라이브 영상을 보는 것이 전부였다. 하나를 다 보면 기계처럼 추천 목록에 뜨는 영상을 눌렀고, 유튜브에 올라온 모든 라이브 영상을 다 보았을 때 즈음엔 그의 뮤직비디오를 틀고 또 틀었다. 그것도 수십 번을 반복하면 인스타그램 계정에 들어가 모든 게시물을 구경했다. 어두운 방에 가만히 누워 핸드폰 화면을 바라보다 보면 내가 사라지는 기분이 들었고, 그러면 괴로움과 죄책감이 조금 덜어졌다. 해가 뜨는 것을 보고 나서야 겨우 잠을 청하는 날들이 계속되며 일상도 마비되기 시작했다. 일과 중에 그의 표정이나 목소리 같은 것이 떠오르면 머리가 깨질 듯 아프거나 눈물이 날 것 같아 책상에 엎드려 그대로 멈춰버렸다. 어떤 것에도 집중할 수가 없었고 매일 먹어야 하는 약은 두 배가 되었다.     


그를 떠올리며 끝없이 등장하는 의문들에 머릿속은 더욱 엉켜갔다. 내가 그의 죽음을 막을 수 있는 방법이 없었는지, 우리 모두가 놓친 신호는 없었는지, 누가 그를 벼랑 끝으로 내몰았던 것일지 매일 질문했다. 그 많은 헤어짐들 중 왜 그와의 이별에 내가 이렇게 강하게 흔들리는지도 알고 싶었다. 그의 어떤 부분이 그렇게 특별했는지를 발견하고자 애썼다. 하지만 나는 그 어떤 고민에도 명쾌한 답을 내릴 수 없었고, 내가 그를 그리워하고 있다는 것, 그리고 지금 아주 고통스럽다는 것만을 확실히 알았다. 결국 정답을 찾는 것 따위는 포기하고, 그저 그리워하고 괴로워했다. 실은 별다른 방도가 없기 때문에 한 선택이었다. 그의 영상과 사진들을 보며 하루는 침대에 죽은 듯 누워 한없이 가라앉았다가, 또 하루는 베개를 치며 소리 내어 엉엉 울었다. 내가 이해할 수 있는 감각에 집중하며, 부디 시간이 빠르게 지나가주기만을 빌었다.     


그리고 시간은 정말로 무섭게 흘러, 그새 계절이 세 번 바뀌었고 내 머리는 단발에서 장발이 되었다. 하지만 그의 죽음이 만들어낸 진동은 여전히 나의 몸통을 울린다. 내가 취약해지는 순간들에는 어김없이 그의 모습이 떠오르고, 나는 밀려오는 우울에 잠식된 채 몇 시간이고 다시 그가 나오는 영상을 보며 멍해진다. 그러나 당연하게도, 그래서 약간은 허무하게도, 고통의 기억은 천천하지만 분명히 흐릿해지고 있다. 매일 밤 인스타 라이브 영상을 찾아보는 일은 그만 두었고, 그를 떠올리며 혼란스러워하는 시간도 줄었다. 언젠가는 그의 부재가 더 이상 나를 괴롭히지 않으리라고, 그가 없다는 사실보다도 그가 나에게 소중했던 이유에 대해 더 많이 이야기할 수 있으리라고, 내가 가장 사랑했던 그의 모습을 찾아보며 그의 안녕과 행복을 빌어줄 수 있는 날도 분명 오리라고 믿는다. 그리고 그 때 나는 비로소, 제대로 된 작별 일기를 쓸 수 있을 것이다.



작가 경하

차갑고 깨끗한 겨울 공기를 좋아합니다.

midhiver@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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