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마글방 수강생 온의 글
내가 어렸을 때 엄마는 나를 걷게 하려고 정말 많이 노력했다. 비슷한 일을 먼저 겪어본 선배 엄마들에게서 전해져 내려오는 비법에 따라 병원에 입원시켜 유명한 물리치료사에게 치료를 받게 했다. 하지만 제대로 하지 않으면 독방에서 될 때까지 연습시키겠다는 으름장에 겁을 먹고 억지로 따라하는 네다섯 살 아이가 엄마의 마음을 알 리 없었고, 그 덕분에 치료는 큰 진전없이 현상유지에 그쳤다. 엄마와 달리 이때의 나는 내 몸과 세상에 대해 아는 것이 거의 없었다. 그래서 병원 친구들과 역할놀이를 하며 만들어내는 이야기에는 항상 부드럽고 말랑한 꿈이 가득 차 있었는지도 모르겠다.
잘 알지도 못한 채로 재활치료에 유년시절을 바치고 나니 방황이 시작되었다. 아이들의 사소한 말 한마디에, 굳게 닫힌 문 앞에서, 도로에 있는 작은 턱 하나에 발 밑이 흔들리는 기분이 들었다. 내가 힘들어하자 주변 사람들은 닉 부이치치의 이야기와 김지선 씨의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그런데 그 이야기들은 너무 불행했고, 너무 정돈되어 있었다. 나는 그 앞에서 정리되지 않은 수많은 사건들과 감정들을 부둥켜 안고 그들보다 나은 환경에 있는데도 그들처럼 해내지 못하는 나 자신 때문에 자괴감을 느꼈다.
불쑥불쑥 튀어나오는 부끄러운 마음이 보기 싫어 장애 당사자의 이야기라면 질색을 하고 피해다녔다. 그러던 어느 날 내가 어릴 때부터 어릴 때부터 알고 지내던 지인이 ‘실격당한 자들을 위한 변론’이라는 책을 선물했는데 제목부터 불길한 느낌이 들어 한동안 펴보지도 않다가 꼭 읽어보라는 당부에 못 이겨 속는 셈 치고 첫 페이지를 열었다. 운명적 만남이었다. 작가는 장애를 ‘극복’한 사람도 아니었고 한번의 깨달음으로 흔들림 없이 자기만의 길을 가는 완벽한 사람도 아니었다. 자신은 평생 장애에 노련해지지 않을 거라 선언하고 개인적 불행이자 동정과 연민의 대상이었던 장애를 사회구조와 연결시켜 질문을 던지는 글을 읽으며 내가 듣고 싶었던 이야기는 이것이었다고 소리치고 싶었다. 처음으로 들은 우리의 이야기였다. 나보다 앞서서 같은 문제를 안고 길을 나선 인생선배가 들려주는 이야기가 세상에 뿌리 내리고 살아갈 수 있도록 도와주었다. 그것을 시작으로 다른 이야기들을 찾아 손에 쥐고 한 시절을 버텼다.
나는 사회의 문제점들을 비판하고 그것을 원동력 삼아 더 나은 세상을 꿈꾸는 글들을 읽으며 세상이 점차 나아지고 있다고 믿고 안도했다. 그리고 장애를 가졌다는 사실이 더이상 내 삶에 문제를 일으키지 않으리라고 생각했다. 그 생각이 얼마나 오만한 것이었는지 깨닫기까지는 얼마 걸리지 않았다. 뉴스에서는 유명 정치인의 장애인 혐오발언을 보도하고 내가 속한 학교 커뮤니티에는 나치의 장애인 학살을 언급하며 이동권 시위를 비난했다. 심장이 덜컥 내려 앉았다. 무력감과 분노가 동시에 쏟아져 내렸다. 하지만 지금 돌이켜보면 나는 그때에도 한 발 물러 서있었던 것 같다. 며칠 전, 학교에서 이동하다가 휠체어가 뒤로 넘어가는 바람에 머리가 찢어져 병원에 갔는데 문득 ‘목숨 걸고 지하철을 탄다’는 시위대의 말이 떠올랐다. 나만 모르고 있었을 뿐이지 나도 위험한 세상에서 살아가고 있는 건 마찬가지였다. 그동안 사고가 나지 않았던 건 그저 운이 좋아서였다. 절망감과 동시에 이대로 멈춰 설 수는 없다는 이상한 오기가 들었다. 여전히 두렵지만 다시 휠체어에 올라타 밖으로 나가서 세상을 누비면서 따뜻하고 단단한 이야기들을 모으겠다는 생각. 나를 앞서 이 길을 걸어간 누군가가 그랬듯이 나도 언젠가는 그 모든 일에도 불구하고 이루어냈다는 이야기를 어린아이들에게 전해주고 싶다. 그때까지 지치지 않고 걸어갈 것이다.
작가 온
따뜻하고 단단한 사람이 되고 싶어 온이라는 이름을 지었다. 정확하게 표현된 이야기들이 통통 뛰어가는 모습을 상상하며 글을 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