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마글방 수강생 카일라의 글
유년 시절을 미국에서 보낸 나는 영어 발음에 대한 자부심과 동시에 컴플렉스가 있었다. 한국으로 들어온 후, 원치 않아도 당신들은 내 영어 발음을 계속 주목했기 때문이다.
“카일라, 외국에서 자랐다며? 이거 영어로 발음해봐.”
극단을 넘나든 서양 언어에 대한 당신과 나의 관심은 집착이 됐다. 그래서 (미국/캐나다에 한정해서) 영어 발음이 조금 유창한 당신들의 영어 말솜씨를 보고 그들의 외국살이를 ‘궁예’하는 고약하고 시쳇말로 ‘빻은’ 버릇까지 가지고 있었다.
당신 1. 발음이 부드럽다. 소위 말하는 ‘버터 발음’이라는 말을 여기저기서 들었을 것 같다. 사용하는 단어들도 한국에서 교과과정으로만 영어 교육을 받은 학생보다는 유창한 편이다. 하지만 ‘교포스럽지는’ 않다. 어딘가 억양에 한국어 특유의 차분함이 서려 있고 가끔 표준어 어투가 묻어난다.
당신은 분명히, 어린 시절 꽤 오랜 시간을 북미에서 자랐다가 조금 사춘기 이전에 한국에 와서 교육을 마쳤을 거다. 영어를 거의 모국어로 배웠지만 완전히 고등교육 과정까지 흡수할 시간은 없었을 것이다.
당신 2. 누가 봐도 교포다. 억양부터 태도, 말을 할 때 취하는 제스쳐. 모두 미국인이 사용할 법하다. 구체적으로는 엘에이 오렌지 카운티에서 자랐을 것 같다. 혹시 인앤아웃 버거를 즐겨먹진 않았는지 묻고 싶다. 한국 단어집에는 잘 안 나오는 용어들도 자연스럽게 사용한다.
당신은 미국에서 태어났든 어릴 때 미국으로 건너갔든, 아주 어릴 때부터 미국에서 자라서 미국인 정체성이 뿌리깊게 자리 잡은 사람이다.
당신 3. 발음을 봤을 때 사춘기 이전에 외국 살이 경험이 있지는 않아 보인다. 아무리 이르더라도 중학생 이후. 합리적인 시기로 생각했을 땐 고등학교나 대학을 미국으로 진학했을 가능성이 높다. 왜 굳이 고등학교, 대학교 이후냐? 사용하는 표현들이 상당히 최신이기 때문이다. 요즘 영어 ‘밈’이나 교포들이 사용하는 표현들을 자연스럽게 쓰고 있기 때문에 북미 문화를 최근까지도 어울리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하지만 역시나 늦게 넘어가서 발음이 엄청 유창해지지는 않는 듯하다.
당신은 머리가 조금 큰 이후에 타지 생활을 시작한 사람이다. 고등 교육을 받아 언어 구사력은 뛰어나지만 원어민 발음의 혜택은 받지 못한 ‘똑똑한 외국인’.
내 적중률은 약 85-90%였다. 꽤나 정확했단 뜻이다. 솔직히 말하면 꽤 희열이 있었다. 이 미묘한 발음의 스펙트럼에서 무당처럼 “당신은 미국에서 6세부터 13세까지 살았군요!” 하며 수많은 당신들의 경계를 넘나드는 게 너무나 재밌었다. 그래서 오랫동안 경계넘기를 그만두지 않았다.
이렇게 나는 당신들의 발음, 조금 더하면 당신이 사용하는 영어 표현들로 당신이 살아온 배경과 서사, 외국을 넘어간 시기까지 맞춰보는 잘못된 취미를 꽤 오랫동안 혼자 간직하고 있었다.
물론 당신들이 내게 어떤 평을 내리는지도 열심히 의식했다. 언젠가 뉴욕에 홀로 여행을 간 날이었다. 손님들과 교류하기를 좋아하는 에어비앤비 호스트가 내 짐을 들어주며 나를 맞이했다. 나는 짐을 풀고 그와 스몰 토크를 했다. 나는 문득 호기심이 들어 질문했다.
“제 발음, 한국인 치고 꽤나 괜찮죠? 어때 보여요? 미국에서 얼마나 산 것 같이 느껴져요?”
“음, 의사소통이 아주 완벽하지. 네 발음 들어보면 딱 어릴 때 미국에서 초등학교 제대로 잘 나온 것 같은 느낌이야. 근데 고등학교는 한국에서 마친 것 같달까? 무슨 말인지 이해하지? 모국어로서 영어를 접하긴 했는데, 성인 나이대에는 한국에서 지낸 것 같은 발음.”
난 예상된 대답에 꽤나 흡족했다. 그와 동시에 결코 교포들의 발음을 따라잡을 수 없는, 내 한국살이의 벽에 미간이 살짝 찡그러졌다. 아, 내 아무리 미국에서 자랐어도 결국 내 발음은 영원히 ‘영어 잘하는 외국인’으로 남는구나.
“Your English is Perfect!” 하며 내 검은 머리를 외국인으로 당연하게 패싱 시키는 현지인들의 시선이 이미 싫었던 시기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내 발음을 자진납세해서 고기의 등급 매기듯이 나를 평해달라고 애원하고 있었다. 왜 그랬을까. 모르겠다.
당신의 영어 발음 평가질을 그만둔 건 작년 초 정도였다. 어느 스터디에서 내가 분위기를 흐리고 나서, 스스로 이 경계 없는 ‘놀이’의 심각성을 드디어 깨달아서였다.
모두가 평등한 교실, 교육과 관련된 줌 스터디에서 자유롭게 발언을 하는데, 나도 발언권을 얻었다. 석사 과정 시절 인턴 동기에 대한 이야기를 하던 참이었다.
“인턴 동기 중에 흑인이 있었어요. 근데 소위 ‘흑인’ 발음을 쓰지 않더라고요. 그 친구는 미시건대학에서 사회학 석사과정을 재학 중이었고, 박사과정까지 생각 중이라고 했어요. 그래서인지 그 친구의 발음은 사실상 ‘백인’에 가까웠어요. 아무래도 그 친구가 자란 배경은 좀 더 교육도 다르고 중산층 이상이라 발음도 영향을 미치지 않았을까요…”
“그 발언은 조금 위험할 수 있을 것 같아요. 인종별 발음이란 것도 결국 편견이고 일반화일테니까요.”
다행히 다른 사람이 가볍게 지적해주고 내 수치스러운 발언을 다들 가볍게 넘겨줬지만, 이미 아차 싶었다. 머리 한 대 제대로 얻어맞았다.
내가 만들어놓은 이 어설픈 경계넘기는 당신들에게 슬쩍 노출하자마자 와르르 무너질 정도로 나약했다. 그만큼 나의 뇌 속에서만 풍부하게 자라왔던 허물이었다.
‘백인다운’ 발음의 객관적인 지표는 없었고 마찬가지로 ‘흑인다운’ 발음 또한 내가 재단할 수 없었다. 한국인의 ‘교포스러운’ 영어 발음 또한 마찬가지였다. 발음은 사람의 이 모양과 혀 길이만큼이나 다양할 수밖에 없는 것인데, 내가 감히 평가할 수 있는 당신은 존재하지 않았다.
그날 나 자신에게 너무 창피했지만, 지금와서 생각해보면 그때 노출이 되어서 다행이었다.
당신을 향하던 나의 화살들이 내게 간접적으로나마 돌아온 후에서야, 내 부끄러운 발음놀이의 말로는 이렇게 끝이 났다.
***
영어 발음에 대한 내 컴플렉스가 사라졌다고 묻는다면, 난 “아뇨”라고 답할 가능성이 여전히 70% 이상이다.
그렇지만 내 영어 발음에 당신이 들어 있냐고 묻는다면 난 또한 대답할 것이다.
“아뇨.”
비로소 당신을 덜어내고 나만 있다.
작가 카일라
생각이 너무 많아 머리를 비울 수 있는 사진을 애정한다. 사진은 머릿속과 반대로 진공 상태를 지향한다. 글은 사진과는 또 반대로 조금씩 알맹이를 채우는 중. 고양이와 청록색 하늘, 바다, 꼬질한 애착인형을 사랑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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