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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백승협 Feb 08. 2024

#도종환 선생

그대 언제 이 숲에 오시렵니까


이사하면서 발견한

반려책들이 몇 권 있다.


내 서재에 있은 줄도 몰랐던 책들,

무심했던 나를 그래도 반갑게 맞아 주었다.


이렇게 가까이 있어도   

모르고 지내는 소중한 것들이

얼마나 많을까?


도종환의 <그대 언제 이 숲에 오시렵니까>도

그 친구들 중 하나이다.


<접시꽃 당신>(1986)으로 세상에 알려졌던 그는

이런저런 우여 곡절의 삶을 살아오다가,

60세를 맞을 즈음에 불청객(병)을 만나게 된다.  


'몸과 마음이 거덜 날' 정도로 사막 같은 인생이 된 그가

다시 숲이 되어가는 그 몇 년간의 기록이 담긴,

'맑은 날은 밖이 잘 보이고, 비 오는 날은 내가 잘 보인다!'라는 시인 이규리의 말이 그대로 스며든 책이다.   

 

◆ 책 읽다가 날것 그대로 쓰다


'오 년 전 이 숲에 들어올 때 저의 몸과 마음은 거덜 나 있었습니다... 숲은 그런 저를 내치지 않고 받아 주었습니다.(작가의 말 중에서)' - '숲'이 그를 치유했구나. 신달자 선생도 산 근처로 이사하면서 그 깊었던 우울증을 이기셨다고 했다. 내가 이사 온 이곳 주변도 산으로 둘러싸여 있다. 그래서 나도 은퇴 후유증이 조금씩 치유가 되고 있다. 오늘도 산자락에 있는 도서관에 와서 이 책을 읽고 있다. 인생 선배 도종환 선생이 포도당 같은 영양주사를 지금 마구마구 놓아 주고 있다. 감사하다. 이 순간이...  


'너무 지지 않으려고만 하다 보니 사랑하는... 가까운 사람, 제 피붙이한테도 지지 않으려고 하며 삽니다. 지면 좀 어떻습니까(p15) - 그러게~. 참 쉬운 건데. 어릴 적부터 우리는 이런 학습을 자연스럽게 받아 온 것이 아닐까? 직장 생활을 돌아보면 그 강박에 많이 붙들려 있었음을 부인할 수 없다. 그럼 은퇴 후 지금은 좀 나아졌나? 오히려 그 대상이 단출해지면서 선생의 말대로 가까운 가족들에게 지지 않으려는 내 모습을 종종 보게 된다. 이 나이 되도록 아직 성숙이라는 단어 앞에 '미'자를 떼지 못하고 있는 나를 반성하게 된다. 지면 좀 어때? 이 바보야!    


'사람들에게 얼마 정도의 돈이 필요하냐고 물으면 '조금 더' 필요하다고 합니다... 그래서 돈에 매여 삽니다... 그러나 생각을 바꾸어 '지금 내가 가지고 있는 것이 적은 게 아니다.' 라고 생각하면 그날 그날이 행복합니다.(p193-4)' - 앞으로의 삶에 지침으로 삼을 문장 발견! '조금 더'에서 '자족'으로 옮겨 내는 마음의 훈련이 지속적으로 필요하다. 이런 과정을 통해서. '자족이 답이다!'


이 책을 읽으면 읽을수록 선생의 글들이 점점 깊고 찐해진다. 몸과 마음이 거덜 난 그가 숲(자연)을 만나면서 회복되고 있다는 증거다. 뭐 하나라도 허투루 여기지 않고 그것을 글로 열매 맺고 있다. 그때마다 나는 잠시 멈추어 이렇게 노트에 몇 자 적어 보고 있다. 작가와의 교감이 흐르는 이 순간들이 점점 좋아지고 있다.


- 헤리의 반려책 이야기



글 쓴 시간보다 생각한 시간이 더 많고

말로 떠든 시간보다 오래오래 책을 읽은 시간이

몇십 배 더 많던 날들은 절절한 시를 만나곤 했습니다.


그러나 사유한 시간보다 글 쓴 시간이 더 많고,

공부한 시간보다 강의한 시간이 더 많아지면서는

제대로 된 시를 쓰지 못하였습니다.


한 말 또 하고 한 이야기 또 하면서

밥 벌어먹었습니다


- 도종환의 <그대 언제 이 숲에 오시렵니까>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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