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학 사상>(2024.1)에서 알게 된 시인. 그녀의 시집을 읽기 전에 그녀의 산문집 <시의 인기척>을 먼저 읽어 보려 한다. 2019년에 나온 책이니 60중반을 넘어선 즈음의 책. 시심이 더욱 깊고 넓어졌을 그녀를 만나러 간다.
'시가 다 말하지 못했던 생각에 대해, 그리고 말해도 닿을 수 없었던 세계를 향한 이 글들을 '아포리즘'이라 일괄해 보았다(p7)'
'본질은 설명을 덧붙이기보다 설명을 줄일 때 드러나는 것이다. 시도 마찬가지다.(p37) - 불필요한 말들을 줄이고 줄여서 명품으로 만든 것이 시. 시가 어려운 이유이고 그런 마음의 명품인 시심을 나도 가지고 싶다. 책 소감을 쓸 때마다 느낀다. 날 것 그대로,라고 해놓고 자꾸 덧칠을 해 대고 있다. 무슨 말인지 나조차도 모를 정도로. 그런 군더더기를 떼어내기 위해서는 힘들어도, 낙심이 되어도 글을 써보는 것이 최선이다. 도마뱀이 그 꼬리를 자르고 달아나는 것이 최선이라는 시인의 시처럼.
구구절절이 계속되는 시인의 아포리즘들. 시어들이 가득 담겨 있다. 이것들이 쌓여서 시가 되겠지. 점점 갈수록 필사하는 대목이 많아지고 있다. 단순한 일상에서 포착한 순간의 기록들이 나에게는 특별한 시선으로 다가오기 때문이다.
'순간에 맞닥뜨리는 일, 섬광처럼 오는 언어 하나가 순간을 살게 하고... 기록하게 하고... 잊게도 한다... 언어는 시공의 바퀴에 묻어 굴러가는 먼지 갚은 것.' (p76)
<최선은 그런 것이에요>
2014년. 시인이 60이 되기 전에 쓴 시들. 거의 내 나이대에 쓴 시들이라 기대가 된다. 그녀의 아포리즘을 읽으면서 시를 읽는 것. 색다른 독서 경험이다.
'<현관문을 나서다가> 현관문을 나서다가 나는 다시 돌아오지요 돌아와선 왜 왔
는지 잊어버려 다지 나가요 나가다가 생각하니 그게 시계였어요 시계를 찾기 위해 내가 뒤지는 곳은 시계가 없는 곳이죠... 깜빡깜빡 잊으므로 여기 또 깜빡깜빡 살아요 현관을 나서다 나를 잃어버리고 빨래통에 벗어놓은 나를 뒤집어쓰고 나아닌 내가 다시 나가요 나가다 생각하니,(p84)' - 쭉쭉 읽어가다가 이 시에서 멈추었다. 깜빡깜빡. 자주 나에게도 일어나는 일. 정작 잊어버리고 사는 것은 '나 자신'임을 던져주는 시인의 부드러운 경종이 나를 깨운다.
두 책을 다 읽었다. 한 작가의 책을 동시에 읽어 본 적은 처음이다. 이렇게 또 한 사람의 귀인을 만났다. 시를 읽을 때마다 느끼는 것이지만 '시는 내 그릇의 크기만큼 담을 수 있다'는 것!. 그래서 시는 쉽지 않다. 그러나 안개가 걷히듯 가끔 보여주는 시 세계의 오묘함이 주는 이끌림이 있기에 오늘도 시를 읽으며 겸손을 배운다.
- 헤리의 반려책 이야기
아물기 직전의 가려움, 그곳을 긁을 때의 쾌감처럼 시의 성감대도 상처 뒤에 왔다.
참말과 거짓말, 두 가지를 반복하다 내성이 생겼다. 참말과 거짓말이 묘하게 섞이는 지점, 합리화
페널티킥 앞에 선 골키퍼의 자리야말로 시인의 자리를 말해주는 듯하다. 어디로 올지 어떻게 될지 모르는 삶의 총체에 대해 시인은 언어라는 감각 하나만을 믿고 받아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