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왜 쓰는가>는 오웰의 에세이집이다. 에세이인데도 꼭 단편소설을 읽는 느낌을 준다. 오웰이 마주한 불편한 진실이 무엇이었고 그게 작가에게 어떤 각성을 주었는지를 알게 해준다. 개인적으로는 <코끼리를 쏘다>가 좋았다.'
<이정일 작가 따라 소설(책) 읽기> 그 세 번째로
이번에는 소설은 아니지만 자전적 소설 같은
조지 오웰의 산문집 <코끼리를 쏘다>(2019)를 읽었다.
이번 산문집으로 인간 조지 오웰을
만날 수 있는 시간이었다.
그의 소설을 다시 읽고 싶어지게 한다.
◆ 책 읽다가 날것 그대로 쓰다
<너무나 즐겁던 시절>(1952, 파티잔 리뷰)
조지 오웰은 지금으로부터 100년도 훨씬 전에 영국의 한 예비학교에 다녔다. 거기에서 교장(삼보)과 그 부인에게 자신을 포함한 가난한 아이들이 극도의 차별과 가스라이팅을 당한다. 그것을 고발하는 자전적 소설 같은 산문이다. 40대 중반의 나이에 30년 전의 이야기를 이렇게도 구체적이고 생생하게 기억해 내다니. 어린 소년, 조지 오웰에게 그때의 일이 그만큼 충격적이었기 때문일 것이다. 그가 풍자 소설 <동물농장>과 디스토피아 소설 <1984>를 쓰는 작가가 될 수밖에 없었던, 어릴 적에 그의 세계관에 큰 영향을 준 그 배경이 담겨 있다. 이게 실화라니... 가히 충격적이다.
<코끼리를 쏘다>(1936, 뉴 라이팅)
이튼 스쿨 졸업한 조지 오웰은 대학 진학을 포기하고 인도 제국경찰에 지원한다. 그 발령지가 미얀마였다. 19세의 나이에. 거기서 일어났던 그의 흑역사를 솔직하게 고백한다. 군중의 의지(힘, 기대) 앞에 허세를 자연스럽게 부리는 자신의 부끄러운 이야기를 담백하게 그려내고 있다.
'무엇보다 나는 녀석을 쏘고 싶은 마음이 손톱만큼도 없었다. 나는 한동안 녀석을 지켜보며 녀석이 다시 흉포해질 낌새가 없는걸 확인한 다음 귀가하기로 작정했다. (p110)... 나를 앞으로 떠미는 2천 명의 의지가 느껴졌다. 거역할 수 없는 힘이었다. 두 손으로 소총을 들고 서 있던 나는 백인의 동양 지배라는 것이 얼마나 공허하고 헛된 것인지 처음으로 실감했다. 총을 든 백인인 내가 무장하지 않은 원주민 무리 앞에 서 있었다. 겉보기에는 내가 연극의 주인공이었지만 실제로는 뒤에 있는 노란 얼굴들의 의지에 이리저리 떠밀리는 우스꽝스러운 꼭두각시에 지나지 않았다. (p111)... 나는 종종 생각해보았다. 내가 그때 코끼리를 쏜 건 그저 바보처럼 보이는 걸 피하기 위해서였다는 걸 눈치 챈 사람이 있을까.(p118)'
<나는 왜 쓰는가>(1946, 갱그럴)
조지 오웰은 대여섯 살 때부터 자신이 작가가 되리라는 걸 알았다고 한다. 그것에 대해 접을까 고민했던 중에도 머지않아 책을 써야 한다는 의식이 있었다고 한다. 그는 글을 쓰는 동기를 크게 네 가지로 나누어 제시한다. 그것들 중 그와는 맞지 않는 '정치적 목적'으로 글을 쓸 수밖에 없었던 그 이유를 말한다. 이미 세상에 내놓은 <동물농장>과 앞으로 내놓을 <1984>를 쓰게 된 작가로서의 사명을.
- 헤리의 반려책 이야기
책을 쓰는 것은 소름끼치게 진 빠지는 투쟁이다. 고통스러운 질병을 한바탕 길게 앓는 것과 같다. 저항할 수도 없고 이해할 수도 없는 무슨 악령에 씌지 않고서는 절대 떠맡지 않을 일이다. 그런데 그 악령은 본능이다. 아기가 관심을 끌기 위해 악을 쓰고 울어대는 것과 같은 본능이다. 그리고 자신의 개성을 지워버리려는 부단한 투쟁 없이는 읽을 만한 글을 단 한 줄도 쓸 수 없다는 것 또한 사실이다. 좋은 산문은 유리창과 같다. 내가 글을 쓰는 동기들 중 가장 강력한 것이 무엇인지 분명하게 말할 수는 없지만, 그중 어느 것이 따를 가치가 있는 것인지는 안다. 내 작업 과정을 돌아보니, 내가 무기력한 책을 쓰고 미사여구와 의미 없는 문장과 장식적 형용사와 객소리에 빠졌을 때는 예외 없이 내게 정치적 목적이 결여됐던 때였다. (p133-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