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강 작가 몰아서 만나기 3>(25-23)
중학교 때는 이광수 선생,
고등학교 때는 이외수 선생의 책들에
한 번씩 빠졌던 것을 제외하고는,
한 작가의 책을
연이어서 읽어보는 것은
처음 있는 일이다.
<빛과 실>에서
한강 작가는 말한다.
'하나의 장편소설을 쓸 때마다 나는 질문들을 견디며 그 안에 산다. 그 질문들의 끝에 다다를 때-대답을 찾아낼 때가 아니라- 그 소설을 완성하게 된다.'라고.
그녀가 5권의 장편소설을 쓰면서
그때마다 내내 품었다던
질문들을 지금 다시 읽어 보고 있다.
내 인생에서는
한 번도 질문해 본 적이 없는
것들이다.
<채식주의자>에서는
다들 아파도 너무 아프다.
그럴만하다는 연민에 빠져들게 한다.
평이하게 살아온
나 같은 사람에게는
그 무게와 깊이를 감히
체감할 수 없을 정도다.
한강은 거기서 다음의 질문을 완성한다.
'한 인간이 완전하게 결백한 존재가 되는 것은 가능한가? 우리는 얼마나 깊게 폭력을 거부할 수 있는가? 그걸 위해 더 이상 인간이라는 종에 속하기를 거부하는 이에게 어떤 일이 일어나는가?'
<바람이 분다, 가라>에서는,
더 이상 잃을 것이 없다며,
절망 속에서 죽음을 곁에 두고
살아가는 정희가
갑자기 살고 싶다는 절규로
한강은 이 소설의 질문을 완성한다.
'마침내 우리는 살아남아야 하지 않는가?'
연이어 그녀는 '이 년 가까운 시간'동안에
또 다른 질문을 품는다.
'우리가 정말로 이 세계에서 살아나가야 한다면, 어떤 지점에서 그것이 가능한가?... 이 소설을 쓰며 나는 묻고 싶었다. 인간의 가장 연한 부분을 들여다보는 것-그 부인할 수 없는 온기를 어루만지는 것 -그것으로 우리는 마침내 살아갈 수 있는 것 아닐까, 이 덧없고 폭력적인 세계 가운데에서?'
그렇게 해서 나온 소설이 바로
그녀의 다섯 번째 장편소설인
<희랍어 시간>이다.
평론가 이소연은
'말을 잃어가는 한 여자의 침묵과
눈을 잃어가는 한 남자의 빛이
만나는 찰나의 이야기'라고 했다.
각자의 고통 속에서 평생 아파하며,
더 이상 헤어 나올 수 없을 것 같은
침묵 가운데 살아가고 있는
한 남자와 한 여자의 조우 이야기!
약하디 약한 그들이
서로에게 힘이 될 수 있다는,
다시 살아갈 희망의 빛과
일상의 언어를 찾아갈 수 있다는
실재의 희망을 보여주고 있다.
이전의 책에서는 볼 수 없었던
한강의 온기도 엿보여서 좋았다.
◆ 책 읽다가 그 몇을 쓰다
. 우리 사이에 칼이 있었네, 라고 자신의 묘비명을 써달라고 보르헤스는 유언했다... 만년의 보르헤스와 세계 사이에 길게 가로놓였던 실명(失明)이 아니라면 무엇이었을까.(p7-9)
이 소설을 다시 펼친다. 찰나의 순간에 남겼던 색인들을 중심으로 하나하나 들여다보고 있다. 중간쯤 가다가 다시 맨 앞 문장으로 온다. 처음 읽었을 때 그냥 지나친 보르헤스가 내 시선을 멈추게 한다. 색인조차 없다. 당연하다. 나는 그를 전혀 모르기 때문이다.
함정임 작가의 문학 에세이에서 얼핏 보았을 수도 있을 것 같은 이름이다. 검색해 보니 역시나 그녀는 <소설가의 여행법>(2012)에서 그를 소개한 적이 있다.
호르헤 루이스 보르헤스(Jorge Luis Borges, 1899.8.24 ~ 1986.6.14)는 아르헨티나의 세계적인 작가이자 시인, 에세이스트라고, 20세기 문학에서 가장 독창적이고 영향력 있는 인물 중 한 사람으로 평가된다고 한다. 한강이 이 소설의 맨 처음을 보르헤스로 시작하는 이유가 연이어 소개된다. 그는 점점 시력이 잃어갔고, 마침내 50대 후반부터 실명 상태에 가까워졌다,라고. 유전병이다. 그의 아버지도 그랬기 때문이다.
여기에 나오는 한 남자도 보르헤스와 같은 처지에 놓여 있다. 성인이 되기도 전에 그의 아버지처럼 실명이 될 것이라는 것을 알게 된다. 실명이라는 '서슬 퍼런' 칼날이 그에게도 시간의 바람을 타고 점점 가까이 오고 있다. 20년 가까이 지나는 동안에 마침내 지금 실명에 다다르고 있다.
또 한 사람의 아픔을 한강은 보게 한다. 그 사람이 이 책을 읽고 있는 당신일 수도 있다고 느닷없이 질문을 던지는 것 같다. 보이는 장애보다 보이지 않는 장애에 갇힌 사람이 더 많다고, 거기에서 당신은 자유롭다고 할 수 있냐고?!
. 모든 언어가 낱낱이 들리고 읽히는데, 입술을 열어 소리를 낼 수 없다. 육체를 잃은 그림자처럼, 죽은 나무의 텅 빈 속처럼, 운석과 운석 사이의 어두운 공간처럼 차고 희박한 침묵이다.(p19)
- '열일곱 살이 되던 겨울... 언어가 갑자기 사라졌다'는 한 여자가 다행히도 '한 개의 평범한 불어 단어'가 그녀를 깨운다. 일시적으로 일어난 일로 여기며 평범한 일상을 살아온다. 그러다가 어떤 원인도 전조도 없이 이십 년 만에 그것이 다시 찾아온다. 모든 일상이 급격히 닫히고 있다.
이번에는 생소한 희랍어가 그 역할을 하지 않을까, 해서 지금 그 수업을 듣고 있다. 일상의 언어가 사라진 침묵 속에서. 이번에는 그것이 아니었다. 잔잔한 물결처럼 다가온 또 다른 장애를 가지고 있는 한 남자였다.
처음에는 이해가 잘되지 않았다. 그녀의 침묵을 깨게 한 사람이 그 남자라는 것이. 다른 많은 경우의 수가 많았을 텐데 왜 굳이 이 남자여야 하는 거지,라는 의문이 들었다. 한강 작가가 이 소설을 쓰는 내내 완성해 나갔다는 질문을 다시 들여다본다. 그제야 그 깊은 의미를 조금은 엿보게 된다.
'이 소설을 쓰며 나는 묻고 싶었다. 인간의 가장 연한 부분을 들여다보는 것-그 부인할 수 없는 온기를 어루만지는 것 -그것으로 우리는 마침내 살아갈 수 있는 것 아닐까, 이 덧없고 폭력적인 세계 가운데에서?'(<빛과 실> 중에서>
이 질문은 나에게 정곡을 찌르게 한다. 나의 약한 부분은 어떻게든 포장하려 하고, 남의 약한 부분은 대놓고 드러내서 우위에 서려는 내 악한 본성들을 대면한 적이 꽤 있었기 때문이다. 대놓고 그렇게 한 것은 아닐지라도 그런 마음을 품었던 것은 사실이다. 자기합리화까지 하면서.
매일 나를 성찰해야 하는 이유다. 이를 위해 매일 말씀 묵상, 필사적 성경읽기, 기도 그리고 책을 읽고 글을 쓰는 시간을 가지고 있다. 부족하지만 이렇게 한 걸음 한걸음 살아가다 보면 지금보다는 더 타인을 존중하고, 상대의 약한 부분을 안아 줄 수 있는 삶이 될 것이다. 그렇게 나를 넘어 타인을 볼 수 있는 시야를 넓혀 갈 것이다. 파이팅!
. 새벽 어스름 속을 걸어본 적 있니. 사람의 육체가 얼마나 따뜻하고 연약한 것인지 실감하며 차가운 공기 속으로 발을 내딛는 벽. 모든 사물의 몸에서 파르스름한 빛이 새어나와, 방금 잠이 씻긴 두 눈 속으로 기적처럼 스며들어오는 새벽.(p72)
- 한강 작가의 문장들을 하나씩 들여다보며 정리하고 있다. 그녀는 어떻게 이런 심미안을 가지게 되었을까?, 놀라움의 연속이다. 이런 시선으로 사람의 마음을, 사물의 내음을 글이라는 인화지로 현상해 내다니, 그것도 8K라는 고해상도로 말이다.
한강이 본 새벽이다. 그냥 글 기술로 적은 것이 아닐 것이다. 헤아릴 수 없는 새벽을 맞이하면서 느끼고, 보고, 사유하면서 글로 남긴 것들이 켜켜이 쌓여오다가 이때를 만난 것일 테다. 그만큼 새벽을 깨우면서 모든 것을 품는 열정의 삶을 살았다는 표징일 것이다.
새벽이라는 단어 앞에 나는 선다. 새벽이 새벽인 줄도 모르고 마치 무조건 반사를 하는 듯 출근을 했던 시절, 몸이 상당히 좋지 않은 상태에서도 40일의 신년 새벽 기도를 이끄신 하용조 목사님의 본을 따라 온 가족이 40일을 그것도 이 년 연속으로 다녔던 때, 직장 생활 후반 6년 정도 혼자 온라인으로 새벽 기도를 하고 출근을 했던 나날들, 그러다 주말을 맞으면 오히려 더 일찍 일어나 한강 주변을 산책하며 책을 읽었던 일들...
지금은 어떠한가? 퇴직 후 가장 빨리 무너진 것이 새벽을 깨우는 삶이다. 갑자기 찾아온 출근 없는 나날들이 얼마나 낯설던지, 그렇게 간절히 원하던 삶이었는데... 베개에 머리만 닿으면 바로 잠들던 내가 불면과 마주치기 시작한다. 이제 새벽은 저 멀리에 있고, 아침을 깨우는 일도 쉽지 않다. 몇 개월 전부터 아침을 깨우려고 몸을 뒤틀고 있는 중인데 지금 이 문장을 만난 것이다. 새벽을 다시 찾아야겠다는 새로운 결의가 생긴다. 녹록지 않을 것이다. 따뜻한 이불 속이 좋아서 더 있고 싶은 겨울이 오기 전에 만들어야 한다. 우선 6시로 해서 도전을 시작할 것이다. '방금 잠이 씻긴 두 눈 속으로 기적처럼 스며들어오는 새벽'을 제대로 맛보며 살고 싶다.
. 안개 속을 나아가는 것 같을 때가 있어요. 그 도시의 겨울에 종종 찾아오던, 새벽에 호수에서 시가지로 밀려온 안개가 저녁까지 걷히지 않던 날처럼... 아무리 더 나아가도 싸늘한 집에 다다를 수 없을 것 같던 밤처럼.(p168)
- 한강 작가의 문장들을 정리하다가 '새벽'이 담긴 문장만으로 멈추려 했다. 그 이후에 있는 몇 개의 문장들을 그대로 필사하듯 담다가, '안개 속을 나아가는 것 같을 때'라는 문장을 만나자 바로 두 마음이 교차한다. 그냥 지나가자와 아니 좀 더 들여다보자가. 이 순간을 놓치지 말자며 몇 자라도 이렇게 적어본다.
내 인생에 이런 때가 언제였지?
대학 4학년 때의 기억이 떠오른다. 취업 전선! 앞에서 그랬던 것 같다. 당시 인문대의 취업문은 다른 경상대나 공대보다 높지 않았다. 나름 학점이 좋아서 학과에서 추천해 주는 몇 곳을 2학기 초에 우선으로 면접을 본 적이 있다. 1년 후에 큰 학원을 열려고 하는데 대기업에서 주는 연봉의 3배는 주겠다는 곳(사기성이 짙어 보였다), 낯선 서울에 최종 면접에 갔더니 면접관이 자기 회사에 오면 곧 그만둘 거라며 말리는 곳(속으로 이게 뭐지 했다)... 그렇게 미취업 상태의 시간은 길어지고 있었다. 녹록지 않은 현실에 심리적인 압박도 상당했던 것 같다. 그렇게 앞 길이 잘 보이 않아 힘들어했던, 내 인생의 안개 낀 나날들이 이렇게도 선명하게 떠오르다니 스스로 놀란다.
지금의 내가 그때의 나에게 뭐라고 말해주면 좋을까? 힘내라, 아직 네 눈에는 보이지 않겠지만 30년을 근속하게 될 회사를 그것도 졸업하기 전에 만나게 될 거야. 그 회사는 네가 입사한 이후로 글로벌한 회사로 계속 성장할 것이고, 너도 거기에 일익을 보태게 될 거야, 그 여정에 하나님도 함께해 주시니 걱정하지 말아... ,라고 격려해 주고 싶다.
은퇴 후에 뒤를 돌아보니 평생을 한 직장에서 무탈하게 지내온 것에 감사한 마음이 가득하다. 반면에 그동안 나를 점점 잃어버리면서 살아왔다는 것과 의외로 나의 내면에 상처가 얼룩져 있었다는 것도 알게 되었다. 한 번도 경험한 적이 없는 대인공포증 같은 것도 생겼던 것 같고, 별것 아닌 일에도 짜증을 내거나 언성을 높이기도 했다. 이제 4년이 다 되어간다. 그 사이 신앙, 책, 가족 그리고 소수의 지인이 곁이 되어 주어 나름 안정화가 되고 있다. 하나 여전히 짙은 안개가 가득 찬 길에 서 있는 것 같은 기분에 가끔 사로잡히곤 한다.
훗날의 내가 지금의 나에게도 격려의 말을 해 주면 좋겠다는 바람이다. 20대 후반의 나에게 말해 준 것처럼. 짙은 안개 위에도 여전히 해는 떠 있다고, 보이는 것이 다가 아니라고, 지금처럼 일상의 루틴을 소중히 여기고 한 걸음 한 걸음 걸어가면 된다고, 감사와 찬양으로 주님과 함께하면 된다고...
- 헤리의 반려책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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