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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만렙백수 윤준혁 May 07. 2019

할배

할배의 선함에 물들고 싶었다.

할배


  ‘할배’라는 별명을 가진 고교시절 친구가 결혼 소식을 알려 전라북도 완주로 향했다. 차 안에서 고등학교 시절을 떠올려본다. 공부를 위해 능주라는 시골로 모여든 탓인지 모두 착했던 것 같다. 서로 간의 경쟁이 일상이 되고, 서로의 불행이 누군가의 안도가 되는 지금과는 달리 그 시절의 우리들은 서로의 까만 얼굴은 놀렸어도 낮은 성적을 놀리지 않았다.


  누가 붙였는지 모르는 그 친구의 ‘할배’라는 별명은 분명 헐뜯기 위함은 아니었을거다. 배추도사를 닮은 외형 때문인지, 걸쭉한 전라도 사투리 때문인지 아니면 할아버지 같은 너털웃음과 인자한 미소 때문인지 몰라도 그 친구와 친해지고 싶은 마음에 또래의 아이들은 괜시리 ‘할배’라는 별명을 붙여 불렀던 것 같다.


  그 친구의 행동 역시 ‘할배’와 닮아있었다. 분명 나이 든 ‘꼰대’의 것이 아닌 이치를 깨우친 ‘어르신’ 같았다. 운동장의 쓰레기를 스스로 줍는 것은 물론 어떤 음식이든 나누는 것을 좋아했다. 한번은 학교 뒤편 음수대 근처에 조그마한 텃밭을 만들더니 참외, 토마토와 같은 과일을 심어 재배하곤 했다. 이것을 본 친구들은 취향마저 할배같다고 놀려댔지만 키워낸 과일들을 나눠 먹을 때면 놀렸던 악동들은 어느새 그 친구의 사람이 되어있었다. 나 또한 그런 악동들 중 한명이었다. ‘할배’와 깊고 많은 이야기를 나눠 본 것은 아니지만 학창시절 언제나 할배의 선함에 물들고 싶었다.


그 친구의  선함에 물들고 싶었다....


  한동안 잊었던 그 친구를 다시 만난 것은 내 아버지의 상을 치를 때였다. 그 친구는 사람들의 죽음을 함께하고 유가족을 위로하는 사람이 되었고, 내 부친상 소식을 듣자마자 내 아버지에게 드릴 화장수의와 유골함을 들고 나를 찾아왔다.


“가시는 길 슬프지만 너무 비싼 것은 할 필요 없어 아버님 드릴 수의랑 유골함 가져왔으니 이것으로 해”     


  상주가 되어 정신이 없는 탓에 유독 그날의 기억은 잘 나지 않지만 내가 부담스러울 까봐 조심스럽게 말하는 친구의 목소리는 아직도 기억난다.      


“할배 답네”

끓어오르는 고마움을 괜한 농담으로 표현했다.


발인을 지켜보던 가족들은 그날 아버지가 입은 옥색 수의가 원래 본인의 옷처럼 너무나 잘 어울린다고 말했다. 얼룩지고 헤질까봐 한평생 어두운 옷만 골라 입었던 아버지였는데 돌아가시고 나서야 아름다운 모습이 된 것에 미안한 마음이 들었던 것인지 그날은 많이도 울었다.


식장에 도착한 나는 오랜만에 보는 할배의 모습에 멋쩍은 웃음을 짓고 있었다. 내 어색함을 읽었는지 씨익 한번 웃더니 날 이리저리 데리고 다니며 인사를 시켰다. 식장에서 가장 바쁠 신랑이 친구의 손을 붙잡고 이것저것 챙겨준다. 어릴적의 선함과 그 옛날의 정이 여전했다.



“여전히 할배구나”



결혼 축하한다 할배!


#허름한 허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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